■ 이완주 박사의 농사에 대한 오해와 진실(76)

“박사님, 옥수수 간에 차이가 보이나요?”

오산농협에서 일생 농민을 지도하고 퇴직한 전 선생은 자신의 옥수수 밭 두 곳으로 나를 안내하며 묻는다.

왼쪽보다 오른쪽이 눈에 띄게 키가 작고 빈약하다. 파종한 날은 비슷한데, 빈약한 쪽 밭에는 파종하고 바로 물을 주었단다. 그는 덜 자란 원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물을 주었더니 싹이 먼저 나오고 초기에는 좋았지만, 뿌리가 얕게 뻗어 가뭄을 더 탄 때문이지요.” 올 여름은 장마도 빈약했고 더위는 과연 기록적이다. 농업인들은 고온에 시달리는 한편으로 물을 들어부어도 속절없이 말라가는 작물을 보는 아픔도 겪고 있다. 작물이 찜통더위와 가뭄을 가볍게 넘기게 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가뭄은 물 부족뿐만 아니라, 양분 부족까지 동반한다. 농작물은 비료를 먹을 때 평균 66%까지, 황의 경우 98%까지 물에 녹은 꼴로 먹는다. 다시 말하자면 뿌려준 비료는 일단 물에 녹아 물을 빨아들일 때 뿌리로 빨려 들어간다. 물이 없으면 식물은 목도 마르고, 못 먹어서 영양실조에 걸린다.

조선 세종(1445년) 때 한글로 쓴 ‘용비어천가’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함으로, 꽃도 좋고 열매도 많다.’

뿌리가 깊게 뻗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깊은 곳의 물을 빨아들일 수 있어서 열매가 많이 달린다는 말이다. 가뭄을 극복하려면 뿌리를 깊게 유도해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뿌리의 성질을 이해해야 한다.

어린아이의 환심을 사려면 사탕을 주면 되듯이, 뿌리를 유혹하려면 그것이 좋아하는 것, ‘물과 양분’으로 꾀야 한다. 물이 부족하면 뿌리는 죽을힘을 다해 뻗어간다. 사막의 가시나무 메스키트 뿌리는 지하 30m까지 뻗는다고 한다. 파종하고 나서 물을 주면 뿌리는 멀리 뻗을 필요가 없다. 마치 해 달라는 것을 척척 사주는 집안의 자식들처럼. 냉정하게 흙을 말려야 한다. 그러면 물을 안 준 옥수수처럼 뿌리가 살려고 깊이 뻗어 가물에도 꿋꿋하게 자란다.

물은 인위적으로 뿌리를 깊게 유도할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단 하나의 무기는 비료다. 당신이 유도하고 싶은 깊이에 비료를 묻어주라. 그때 꼭 명심해야 할 조건은 뿌리 밑에서부터 그 깊이까지 조금씩 비료를 주어야 한다. 그럼 마치 너구리를 잡을 때 덫까지 밑밥을 뿌려두는 것처럼 말이다. 금년은 이미 늦었다. 진정으로 가뭄을 이겨내고 싶다면 가을에 호밀과 헤어리베치를 녹비로 길러보아라.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