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장님 댁 앞에 있는 초록색 논밭을 배경으로 각자의 상징적인 아이템인 우쿨렐레, 젬베, 팔레트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임연준 씨, 양애진 씨, 주별 씨

스물 둘, 스물 셋. 대한민국 청춘남녀 셋이 모여 작당을 벌였다. 반짝이는 눈, 튼튼한 몸, 활짝 연 마음을 지닌 청춘 3인방 양애진(23), 주별(22), 임연준(23)씨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삼오오 찾아간, 골 속에서, 상을 듣고, 니를 때우다’라는 모토로 ‘삼시세끼 프로젝트’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직접 전국 각지의 농가를 찾아가 일손을 돕고, 활동한 사진과 느낀 점들을 페이스북에 올려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당일치기 일정으로 경기도 고양시에서부터 해남 땅끝, 노화도 등에서 ‘삼시세끼 프로젝트’를 해온 그들은 6월 말부터 7월28일까지 약 한 달간 ‘삼시세끼 무전여행’을 떠났다. 지난달 24일 충남 보령 블루베리 농사를 짓는 이장님 댁에서 그들과 조우했다.
 

28박 29일 무전여행…농가에서 일하며 숙식
농사에 대한 편견 깨지고 숨은 가치 깨달아
도-농 잇는 ‘삼시세끼 프로젝트’ 계속 이어갈 터
 

삼시세끼 자급자족 해보자!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휴학 중인 애진 씨는 토익이니 토플이니 한창 취업준비에 바쁠 나이에 한 달간의 무전여행을 기획했다.

“사람들은 다 서울로만 올라오잖아요. 대체 뭘 보려고 이 도시에 오는 걸까 싶었어요. 막상 도시에 오면 취업난으로 허덕이게 되는데 뭘 얻기 위해 저렇게 경쟁하는 걸까? 결국은 돈과 편안한 삶으로 귀결되는데 돈 없이 자급자족하며 살아볼 순 없는 걸까? 그런 생각을 품게 됐어요” 누구나 당연하다고 치부해버린 것들, 그래서 질문조차 하지 않던 우리 사회의 한 단면에 대해 애진 씨는 물음표를 던졌다. 농산물을 키우며 스스로 자립해 살고 있는 사람들, 자연 속에 살고 있는 농부를 만나기 위해 애진 씨는 ‘삼시세끼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다.

▲ 한달간 삼시세끼 무전여행의 여정.

지인을 통해 각 지역의 농가를 소개받고 페이스북을 이용해 농가 일손 돕기, 이벤트에 참여할 게스트를 모집한 것이다.

애진 씨의 ‘삼시세끼 프로젝트’에 공감한 주별 씨와 임연준 씨까지 이렇게 셋이 모여 배낭 하나와 설렘을 안고 여행길에 나섰다.

농사는 몸과 맘의 결합체
경기도 가평의 토마토 농장에서 시작한 여행은 양파밭 멀칭 비닐 제거, 경비 마련을 위한 토마토 판매, 감귤 농장 다공질필름(타이벡) 피복, 경주 폐교의 인테리어 공사 등 많게는 하루 10시간가량 구슬땀을 흘렸다.

‘먹고 사는 데 있어 농사는 필수적’이라고 말한 주별 씨는 “농사일이 힘들긴 하지만 어떻게 농산물을 파느냐에 대한 고민도 정말 중요한 것 같다”며 “토마토 농장에서 일할 때 생산뿐만 아니라 판매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는 걸 보고 농사는 육체적인 노동뿐만 아니라 판매 또한 농부의 기술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치악산국립공원 근처에서 수확한 토마토와 와인을 팔고 있다.

시야는 넓어지고 편견은 깨지고
열혈 청춘 3인방이 농사일만 한 것은 아니다. 제주도의 밤바다에 풍덩 빠져 물놀이를 하거나, 새벽 3시가 넘도록 수다꽃을 피우기도 했다.

대구에서 맞이한 애진 씨의 생일파티 때는 페이스북에 초대 이벤트를 공지해 서울과 부산, 미국과 영국에서 귀국한 지인들, 심지어 모르는 사람도 찾아와 흥겨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어떤 이모는 페이스북을 통해 ‘생일 축하한다’며 와인을 선물해 주셨어요”

고성 1리 마을회관, 새마을 문고, 지장암, 동네 교회 등 여행 중 그들이 머문 숙소는 절과 교회를 넘나든다. 다양한 곳을 다니며 그만큼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된 그들은 여행에 함께 참여한 게스트만 해도 서른 명이 넘고, 페이스북으로 그들의 소식을 받아보는 사람도 500명이 넘는다. 애진 씨는 여행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진 것 같다”며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였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만나는 농부님, 어르신의 말씀을 듣게 되면서 ‘인생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구나’를 깨닫게 됐어요”

▲ 무전여행 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남의 차를 빌려 타는 것을 ‘히치하이킹’이라고 한다. 삼시세끼 팀은 밀양에서 4시간이 넘게 히치하이킹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기도 하고, 경주휴게소에서는 3분 만에 좋은 분을 만나 공주시외버스터미널에 당도하기도 했다.

몰랐던 농사의 가치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연준 씨는 '삼시세끼'여행을 떠나기 전까진 농사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사실 여행 전까지 ‘농촌’하면 ‘지루하다’거나 ‘농촌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농사만 짓고 살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직접 농사일을 해보고 농부들을 만나게 되면서 농사는 스스로 일한만큼 결과물이 눈에 보이고, 거기서 자부심과 가치를 느낄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실제로 저도 일하면서 보람을 느낀 적이 있는데 왜 이 분들이 농사를 하시는 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더라고요.”

연준 씨는 “농사가 우리 삶과는 뗄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며 “농부가 없으면 우리가 당장 내일 먹을 쌀과 채소도 없는 거잖아요. 저도 직접 일하기 전엔 몰랐듯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농사일이 얼마나 소중한건지, 우리 삶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행을 떠났기에 깨달을 수 있었던 몸으로 깨우친 농사의 가치다.

▲ 개성만점 매력넘치는 청춘 삼인방

왜 하필 농사고, 시골이니?
어렸을 때부터 시골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는 애진 씨는 교육 쪽에 관심이 있어 농촌처럼 소외받는 지역에서 공부방을 운영하거나 아이들 교육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고 했다. 그러나 도시와 농촌은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거리 또한 멀었다.

“우리 엄마아빠 세대는 농촌과 친숙하지만 우리세대는 농촌에 대해 잘 모르는 부분이나 편견이 많아요. 저도 처음엔 농사가 단순히 육체적 노동이라고 생각했는데 만나본 농부님들은 다 생각도 깊으시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지신 분도 많더라고요.”

농촌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 깨졌다는 애진 씨는 ‘농부도 창의적인 직업이 될 수 있다’ 고 했다.

▲ 농가에서 받은 포도 와인과 토마토를 팔며 제주도 비행기 티켓을 마련한 삼시세끼 팀

“보은에서 만난 대추 이모는 농사와 공부를 병행하시면서 농업에 다양한 부가가치를 깨닫고 계셨어요. 경주에서 만난 분도 시골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이용해 적극적으로 농사를 하셨고요”

‘삼시세끼 무전여행 프로젝트’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도시와 농촌, 청년과 장년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서로의 상생을 꾀할 수 있는 소통의 창구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저희의 페이스북을 통해 여행 중 찍었던 사진이나 느꼈던 점을 보고 많은 분들이 공감대를 형성해주셨으면 해요. 그래서 농업이나 시골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세상을 보기 위해 해외나 도시만 갈 게 아니라 시골에서도 특이하고 다양한 분을 만나고 배울 수 있음을 알리고 싶어요”

도시와 농촌, 함께 잘 살아봐요
도시민에 대한 농사와 농업에 관심을 이야기한 애진 씨는 농민들 또한 도시민과 귀농귀촌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했다.

“여행 중 만났던 할머니 한분이 ”농사는 풀만 뽑는다고 되는 게 아니야. 농사도 배운 사람이 더 잘 지어”라고 말하셨던 게 기억나요. 농사에 뜻이 있어 내려온 귀농귀촌인들에게 기존에 농사를 지으며 살고 계신 분들도 편견이나 부정적인 인식은 허물고 함께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삼시세끼 무전여행’은 28일을 끝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이후로도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한 달에 한 번 농가를 찾아 일손을 돕고 도시와 농촌의 거리를 좁히는데 힘을 보태기로 했다.

앞으로 이 셋은 또 무슨 작당을 벌일 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새로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데미안’의 한 구절처럼 그들은 겨우 하나의 알이자, 한 번의 여행을 끝마쳤을 뿐이다. 다만 무얼하든, 어디에 있든 그들답고 또 그들스럽게 해나갈 것임을 추측해볼 뿐이다.

▲ 삼시세끼의 여행이야기는 페이스북을 통해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 https://www.facebook.com/3M3T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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