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의 꽃으로 본 한국문화(79)

▲ 청초한 아름다움 란(蘭)

시조시인이자 국문학자인 가람 이병기 선생이 서울 계동에 살고 있을때 동네 사람들은 그의 집을 ‘난초병원’이라 불렀다고 한다.
매화옥(梅花屋) 서재를 춘하추동 두드리면 마치 언제나 난초 전시회 같았다고 한다.
크고 작은 화분위엔 난초꽃이 청초한 향기를 뱉어 방안 가득하였다 한다. 가람은 이미 그때 난초를 기르는데 익숙해 있었고 난초의 멋을 터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피검되어 2년간 옥살이를 하는 동안 6·25사변으로 피난을 떠났던 동안에 그토록 사랑했던 난들이 고사해 버린 쓰라림을 맛보아야 했다.
그가 원고를 쓰다가 왕왕 밤을 새우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난 향기는 시상을 떠오르게 하였다고 한다.
그가 몹시도 사랑했던 풍란에 하이얀 꽃이 몇 송이 피어서 향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는 자다가 깨어서 등불을 켜고 그 향을 맡으며 노트에 다음과 같은 시를 적어 내려갔다.
‘잎이 빳빳하고도 오히려 영롱하다/ 썩은 향나무 껍질에 옥 같은 뿌리를 서려두고/ 청량한 물줄기를 머금고 바람으로 사노니.
꽃은 하얗고도 여린 자연(紫煙)빛이다/ 높고 조촐한 그 품(品)이며 그 향을/ 숲속에 숨겨 있어도 아는 이는 아느니’
그는 난을 기르는 정성을 부모님께 다 쏟았다면 만고의 효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갖은 정성을 다 쏟은 나머지 비로소 그 잎과 꽃의 향의 품을 깨달았고 한다. 그는 스스로 난과 인연이 있었고 난복(蘭福)이 있었다고 자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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