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의 꽃으로 본 한국문화(78)

▲ ‘당신은 내 마음의 불꽃’ 동백꽃

다산(茶山) 정약용은 정치·경제학자 뿐 아니라 문학의 대가였다. 특히 그는 식물에 조예가 깊어 조선시대의 원림(園林)을 조경했던 조경가이기도 했다. 그는 어린 시절 지방관인 아버지의 부임지를 따라 다니면서 각 지방의 수려한 산수경관과 식물에 대한 식견을 넓히고 언제나 자연을 사랑하고 꽃을 가까이 하면서 살았다.
그의 시문에는 산다화(山茶花) 즉 동백나무가 많이 등장한다. 그것은 그가 강진에서 17년간 유배생활을 하면서 각별히 인상에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다산초당(茶山草堂)이 있는 만덕산은 동백나무 숲으로 유명한데 현재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다음 시는 유배지에서 애상의 나날을 보내는 그에게 동백꽃이 수심을 삭일 수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옷이야 남녘이라 겨울에도 덜 입지만/ 술이야 근심 많아 밤마다 더욱 마시네.
한 가지 유배객의 시름을 덜어주는 것은/ 섣달 전에 붉게 핀 동백꽃이라네.’
다산은 자기 집 정원에 다양한 꽃을 심어놓고 그 꽃을 몹시도 사랑했다. 다음 시는 이러한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
‘백가지 꽃 다 꺾어서 봐도/ 우리 집 꽃만은 못하네
그것은 꽃이 달라서가 아니라/ 다만 우리집에 있기 때문일세 ’
다산이 꽃을 그렇게 사랑했던 것은 그가 중심이 되어 결성된 죽란시사(竹欄詩社)의 활동에서 잘 나타나 있다.
시사(詩社)는 시인이 모여 시작활동을 하며 우정을 교환하는 모임이다.
이 시사의 동인들은 ‘살구꽃이 피면 한번 모인다. 복숭아꽃이 피면 한번 모인다.’ 등 꽃피는 때를 정기모임 시기로 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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