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의 꽃으로 본 한국문화(61)

▲ 인고의 세월 ‘해국(海菊)’

꽃과 달이 짝을 이룰 때 시정(詩情)을 더욱 풍부하게 해 주고 있다.
달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떨어져 있을 때 달을 보고 그리움에 젖어든다. 고향을 떠나 있는 사람에게는 향수, 수절한 여인에게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대상이었다.
꽃과 달이 함께 할 때 달의 색깔도 달라진다. 복숭아꽃에 달은 붉게 비추고, 배꽃에 비친 달은 희게, 매화에 비출 때는 차갑고 파리하게 느껴지고 해당화에 비출 때는 맑게 느껴지는 것이다.
‘배꽃 잎은 사립문에 눈처럼 휘날리고/ 달은 구름 속에 얼굴을 가리웠네 /두견새는 새벽까지 밤새워 울건마는/고단한 봄 졸음이 자꾸만 깊어지네’ - 이식, <숙용진림>
으스름달밤에 멀리서 두견새의 애끓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배꽃 잎은 소리 없이 뜰아래 지고 있다. 나그네는 봄날의 밤이 짧아 곤한 잠에 취해 있다. 늦은 봄날 배꽃이 지고 달밤의 정경을 한없이 정겹게 그려내고 있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데/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 인양하여 잠 못 이뤄 하노라’ - 이조년
이 시조는 유명한 이조년의 대표적 시로서 배꽃과 달, 두견을 짝으로 봄날 밤의 애상적인 정회를 함축성 있게 그려 놓았다.
하늘에는 은하수가 가물거리고 멀리서 두견새 울음소리가 메아리진다. 배꽃과 달빛은 밤새는 줄도 모르고 가슴에 쌓였던 정담을 나누고 있는 듯하다.
이조년은 고려 후기 문신으로 충혜왕(忠惠王)의 음탕함을 여러 번 간하였으나 받아들이지 않자 사직하고 나와서 암군(暗君)을 잊지 못하는 애절한 심경을 토로한 시를 지어 고시조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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