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묻어나는 사진 한장

우리 조상들은 아무리 가난해도 씨나락만은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굶어죽어도 씨나락(볍씨)만은 베고 죽어라’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해마나 이맘때면 천장에 매달아 두었던 씨앗을 내려 소금물가리기로 충실한 종자를 고르는 침종과 종자소득을 했습니다. 통일벼가 한창 확대되던 시절, ‘유신벼’라는 다수확 품종이 나와 마을 주민들이 집단재배를 위한 공동 작업으로 볍씨침종과 소독작업을 했습니다. 벼농사의 첫 단계인 종자소독은 풍년농사의 시작이었습니다. 농촌지도소 선생님들이 집집마다 순회하면서 키다리병, 깨씨무늬병 방제를 위해 볍씨소독을 권장했습니다. 기계이앙 모내기가 대중화되면서 못자리도 공장형 육묘장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종자의 소중함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1974년 충북청원/사진=충북도농업기술원 제공/글. 윤병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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