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전문PD ‘푸른별영상’ 윤 동 혁 피디

 

다큐 통해 자연과 사람의 소중함 일깨워
초밥의 뿌리인 한국음식 역사기행 계획

「아침햇살이 내리쬐는 한적한 펜션주택 앞마당. 조그만 접시에 땅콩과 잣 등 새 모이가 담겨있다. 새들이 번갈아 모이를 쪼아 먹는 모습이 앙증스럽다. 이 같은 장면은 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재미와 감동은 준다.
줄에 매단 비계 덩어리를 너구리가 한밤 중에 찾아와 맛있게 먹는다. 너구리는 방해꾼이 없는지 주변을 경계하다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면 낮에도 찾아와 먹이를 먹는다.」
이 내용은 휴먼·자연 다큐멘터리를 연출해온 윤동혁(59·푸른별영상 대표) PD가 제작한 ‘우리집에서 생긴 일’의 한 장면이다. 오랫동안 상큼한 감동을 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윤동혁 PD를 본사로 초청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신문기자, 방송국PD로 데뷔
윤동혁 PD는 일간스포츠 복싱담당 기자였다. 한국일보에서는 방송국 연예기자로 활동했다.
“방송국을 출입하다가 1983년 MBC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방송일을 하게 됐죠. 일찍 결혼해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딸 둘을 둔 33세 늦은 나이에 TV방송에 뛰어들었죠. 생소한 분야라 두려움도 있었지만 발탁됐다는 자부심으로 겁 없이 일을 했어요.
처음 맡은 일이 조감독이었는데, 기술도 가르쳐 주지 않으면서 심부름만 시켰지요. 괄시가 심했지만 새로운 일을 배운다는 생각으로 후회하지 않고 죽어라 일했지요.”
그의 첫 작품 ‘차인태의 출발 새아침’을 시작으로 전영록, 길은정 씨가 진행하던 ‘젊음이 있는 곳에’를 이어 ‘인간시대’ 제작을 통해 다큐멘터리에 눈을 떴다.
윤 PD는 인간시대 44편을 제작하면서 TV방송계에서 알아주는 다큐멘터리 전문PD로 입지를 닦았다. “‘인간시대’는 농어촌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며 인간 승리의 이룬 민초(民草)들의 얘기였습니다. 농어민들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모습을 그리면서 다큐멘터리의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모두 꺼리는 ‘장애인프로’ 제작
1991년 SBS 개국 당시 윤 PD는 윤세영 회장의 영입제의에 “직급, 월급에 관계없이 주1회 장애인프로 제작을 보장해달라”는 약속을 다짐 받고 SBS 개국요원이 됐다.
윤 PD가 장애인프로를 고집한 이유는 과거 한국일보에서 모셨던 선배가 LA 출장 중 교통사고로 척추장애인이 돼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은 식당 출입조차 쉽지 않습니다. 일반인의 시선도 곱지 않구요. 그들은 장애의 고통보다 마음고생이 더 심하죠. TV를 통해 장애인의 서러움을 위로해 주고 돌봐줘야 한다는 사회인식을 일깨울 생각으로 장애인프로 제작에 나섰지요.”
KBS, MBC 등 양대 공영방송도 하지 않는 장애인프로, 게다가 광고주도 꺼리는 프로제작을 기꺼이 허락해준 SBS에서 ‘사랑의 징검다리’라는 장애인프로 방송을 시작했다. 그 인연으로 1986년 한국최초의 ‘장애인복지신문’ 창간을 주도해 지금도 장애인연합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지요.”
그는 SBS-TV에서 장애인프로와 함께 여러 편 자연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신안 천일염, 장흥 드렁허리, 그리고 농촌진흥청의 협찬을 받아 제작된 여러 편의 향토음식 프로와 채식의 힘 18편, 알콩달콩 초밥이야기 등 음식관련 다큐도 여럿 연출했다.
그는 휴먼·자연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꾸미지 않고 자연에 기대어 사는 농어민의 모습에 매료됐다. 농어촌의 삶에 눈을 뜨고 자연과 생명존중 정신도 깨우쳤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제작은 천막을 치고 야외에서 밤을 새워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지요. 제작에 돌입하면 작품에 따라 길게는 몇 달간 집에도 못 들어가지요. 베게를 베는 곳, 숟가락 드는 곳이 내 집이 되는 험한 일이지요.”
그는 MBC-TV에서 모셨던 문화예술연출의 대가 표재순 씨의 지도와 SBS 윤세영 회장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버섯, 그 천의 얼굴’이라는 프로로 방송대상 자연다큐멘터리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윤 PD 개인적으로는 조용한 사찰의 정경과 자연의 신비를 스케치한 ‘선암사의 비밀’이라는 프로에 애착이 가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제주버섯 통해 제주를 알다
그는 1998년 43세 되던 해에 일을 저질렀다. 아내와 상의도 없이 SBS에 사표를 냈다. 당시 그의 직책은 교양부국장으로 억대 연봉을 받는 자리였다. 느닷없는 그의 퇴직에 아내는 보름을 드러누웠다고 한다.
“방송국을 그만두고 서울 양재동 시민공원을 산책하다가 묘하게 생긴 버섯을 보았어요. 그 순간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도 버섯이 자란다는 사실을 영상에 담으면 좋을 것이라 생각했지요. 또 사찰 구경을 갔다가 사찰 부근에서 자라는 식물의 미묘한 모습과 사찰 내 하우스 창틀에 매달린 거미를 자세히 관찰하다가 이런 모든 자연의 모습을 내 마음대로 영상에 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죠. 작품 제작에 있어 자유를 얻고 싶다는 생각으로 미련 없이 자리를 버릴 수 있었어요. 지금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방송국을 나와 연고도 없는 강원도 횡성 산골에 ‘푸른별영상’이란 사무실을 차렸다. 전속 촬영기사를 두고 윤PD 혼자서 작품기획, 작가, 편집 등의 일을 하고 있다.
“수입이 많고 적음을 떠나 창작의 자유를 만끽하는데 행복을 느낍니다.”
그는 현재 16년 전 방송대상 수상작인 ‘버섯, 그 천의 얼굴’을 함께 제작한 농촌진흥청의 버섯팀과 다시 만나 ‘한라산의 버섯’이라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 이 다큐는 제주도에서 자라는 말똥버섯, 소똥버섯 등에 관한 얘기다. 한겨울 눈을 뚫고 나오는 이들 버섯을 통해 제주의 자연을 들여다보려는 게 그의 연출의도다. 그의 고향이 제주도라 더 애착이 크다고….

“좋은 영상을 만들기 위해 틈틈이 내셔널지오그래픽, BBC, NHK 등에서 만든 다큐멘터리를 봅니다. 전문서적도 뒤져보고요. 앞으로 일본의 스시, 즉 초밥 얘기를 제작하고 싶어요. 스시는 원래 한국에서 어부들이 뱃전에서 쉽게 먹기 위해 개발한 음식인데, 일본으로 건너가 스시로 발전했다고 그럽니다. 초밥이 한국음식이라는 사실과 한국에서 건너간 경위, 그리고 스시의 세계화 30년 과정을 추적해 보고 싶어요. 그리고 그 내용을 따로 책으로 출간할 계획도 갖고 있어요.”
그는 농촌진흥청 버섯팀과의 저녁식사 약속이 있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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