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송지헌

 

사람 냄새 물씬한 방송 그리워…
날선 인터뷰 위해 사사로운 인연은 배제해

선 굵은 아나운서로 손꼽히는 송지헌(59)아나운서, 아나운서로는 최초로 시사대담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교육방송에서 꾸준히 활약해 왔으며 지난번 대선 때는 대통령후보들의 TV토론 진행자로서 매끄러운 진행을 이끌며 역량을 발휘했다. 무게있는 목소리가 방송에 신뢰를 더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송지헌 아나운서를 만나는 게 기자로서는 그닥 마음 편한 일은 아니었다. 세상 사람 누구나가 인정하는 화술의 달인인지라 내 밑천이 드러나는 기분이랄까? 그러나 ‘송지헌 아나운서 역시 주객이 전도된 기분을 느끼겠지’하고 스스로 위안을 만들며 그를 만났다.
신사동 가로수길, 아기자기한 카페와 옷가게로 젊음의 거리로 새롭게 부상한 거리 한편에 송지헌 아나운서가 작년에 새 둥지를 마련했다. 방송프로그램을 직접 제작하는 ‘스토리라인’의 대표가 현재 그의 직함. 지난해 정부의 장차관 스피치교육과 미디어트레이닝을 하던 중에 필요성을 느껴 아예 사무실을 내고 스피치 교육과 방송프로그램 제작까지 겸하고 있단다. 생각보다 더 훤출한 키에 역시 중후한 목소리다.
먼저 기자 개인적인 궁금증이기도 한 ‘인터뷰 잘하는 방법’을 물었다. 대화를 잘 이끌어 가는 나름대로의 특별한 기술을 먼저 전수받고 나서 얘기를 나누고 싶은 이유에서다.

MC…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야
“소리판에서 북 치는 고수의 역할이 바로 MC의 역할이겠지요. 아무리 뛰어난 명창이라 해도 소리북이 제대로 소리길을 열고 쉬고 닫게 하지 않으면 소용없을 만큼 소리북은 중요하죠. 이렇듯 반주자로서의 고수는 사실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그 역할이 너무도 중요하듯 MC의 역할 역시 바로 인터뷰하는 그 사람을 빛나게 하고 자신은 기억조차 되지 않는 존재로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말하는 사람을 신명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진행자의 바른 역할이란 게 송아나운서의 MC관이다.
이런 이유로 그는 자신보다는 항상 인터뷰 대상자가 부각되도록 노력해 왔고, 그래서인지 방송 경력 32년째여도 거리에 나서면 사람들이 자신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며 너털 웃음을 짓는다.
송지헌 아나운서는 1978년 동아방송에 아나운서로 입사한 이후 우리나라에서 방송 프로그램을 제일 많이 진행한 아나운서로 손꼽힌다. 본인 조차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대표작으론 시청률 30%를 넘었던 추적60분, 시사투나잇, 심야토론 등. 무엇보다도 지난번 대선후보토론회 진행은 그로서도 잊지 못할 기억이다.

 

 

활약…대선토론회 진행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대통령후보 합동토론회의 진행은 개인적으론 영광스런 일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토론회의 진행은 워낙 각 후보간 첨예한 대립이 예상되므로 기술적으로 생방송에서 조율 능력이 있는 ‘선수’에게 맡겨지며 방송토론위원회의 투표는 물론 각 정당에서 만장일치 승인이 떨어져야 비로소 맡게 되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래서 이런 복잡한 관문을 통과해 진행을 맡았다는 것은 그 자체가 공정성과 신뢰성을 인정받은 증거가 되는 셈이다.
“아나운서란 직업을 잘 지켜왔고 불편부당한 태도를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죠.”
송지헌 아나운서로는 최초로 시사 대담 프로그램도 진행한 아나운서이기도 하다. 작년에는 포털사이트의 한 프로그램에서 1시간 동안 오직 일대일 대화로만 진행되는 대담 프로그램의 사회를 맡아 주목을 받기도 했다.
송지헌 아나운서가 능수능란하게 사람을 대하고 방송을 원할히 진행하는 밑바탕엔 방송 외의 그의 다채로운 사회생활 경험과 경력이 세상을 이해하고 사람을 아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대학 졸업후 송지헌 아나운서의 첫직장은 무역회사였다.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커 나가는 분야는 무역업이었고, 너도 나도 무역업에 뛰어드는 풍토였습니다. 그래서 75년에 대기업에서 무역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곧 이 길이 제가 가야 할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죠.”
오히려 자신의 미래가 될 방송의 역량을 키운 것은 서울대 재학 시절이었다. ‘상설무대’라는 연극 동아리를 하면서 남 들 앞에 자신 있게 설 수 있었다. ‘아침이슬’로 유명한 김민기 학전 대표, 김지하 시인, 임권택 감독도 ‘상설무대’ 멤버로 인연을 맺었다.

충전…아르헨티나로
10년간 방송에서 활약하던 그는 87년 아르헨티나를 향해 불쑥 짐을 꾸렸다. 방송에 대한 열망은 살아 있었지만 끊임없이 부족하게만 느껴진 탓이었다.
“제일 괴로웠던게 인터뷰였습니다. 사람이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사람을 읽으려면 밑바닥을 봐야한다는 지인의 조언이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밑바닥 세상을 모르는 나의 약점을 이민의 어려움을 겪으며 채워나갔죠.”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자연스레 사람이 보이게 되었고, 표정도 보이고 상대방의 진심을 읽는 법을 깨우치게 되었다고.
“재충전이었죠. 몸도 마음도 지치고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기도 했죠.”
그때 익힌 사업 감각 덕분에 사회를 보는 눈도 한층 긍정적으로 변했단다.
송지헌 아나운서에게 화창한 봄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간암이란 모진 풍파와 역경을 이겨낸 인물이기도 하다. 2004년  간암 진단을 받고 모든 방송을 중단했다.
그는 대학시절 큰 교통사고를 당해 생사의 갈림길을 헤맨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수혈이 잘못되어 B형 간염이 생겼고, 그것이 간암으로 발전, 간 이식 수술의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정기적인 검진과 관리를 통해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고 방송 활동을 계속해 간질환 극복의 성공 케이스로 환자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간암 판정을 받았을 때는 정말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기분이랄까요.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살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식 수술 후 7년째이지만 관리를 잘하고 있고 보험회사 광고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다.
“정말 인생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초긍정 마인드를 처세법에서 강조하지만 정말 맞는 말입니다. 특히 자녀교육에 있어서는 항상 긍정적으로 얘기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식(移植)과 이민(移民)
아나운서로서 그는 말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한다.
“말도 역시 심은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저 자신 이식 받은 간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제게 잘 자리 잡을 수 있게 했듯이 말 역시 씨앗을 잘 심어야 심은대로 거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가족과 이웃에게 사랑의 말, 긍정의 말의 씨앗을 잘 뿌려줘야 그 말이 고스란히 부메랑이 되어 본인에게 돌아옵니다.”
또 자신의 이민 경험에서 배운 삶의 자세와 철학을 펼쳐 보인다.
“세상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쓸데없는 욕심이 많아서겠지요. 다른 나라로 이민 간 이민자의 삶의 자세로 살아보면 어떨까요? 저도 이민 갔을 당시 그 나라에 맞춰 보려 애쓰던 그 마음으로 서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살려고 노력합니다. 또 가까운 사람일수록 남과 인터뷰하는 그런 자세로 대하면 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겁니다.”
대기업 회장, 장관, 국회의원, 도지사 등 정재계의 굵직굵직한 인사들과 인터뷰를 많이 해온 송지헌 아나운서지만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은 없단다. 사사로운 인연은 만들지 않는다는 그의 소신 때문이다.
“한번도 어느 누구에게도 전화하거나 만난 적이 없습니다. 사적인 인연이 생기면 더 이상 공격적 질문을 할 수 없단 생각에서죠. 앞으로 계획은 진짜 프로그램을 한번 진행해 보고 싶습니다. 상대방을 시청자에게 여실히 드러나게 할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이요. 요즘 방송은 예능만 있지 정말 살아있는 얘기가 없습니다. 정말 사람 냄새 물씬한 그런 방송을 하고 싶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끄집어내 바르게 전달할 줄 아는 아나운서란 평가를 받는 송지헌 아나운서, 상대방을 진실로 마주보며 하는 그의 참된 얘기를 우리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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