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분야 최고 권위자 숭실대학교 배명진 교수

 

웰빙시대, 소리의 중요성 더 부각될 것
‘소리건강체험센터’ 프로젝트도 구상 중

말소리만 가지고도 거짓말인지 아닌지를 가려내고, 유명인 욕설 파문의 사실 여부를 분석해 내고, 유관순열사 등 고인의 목소리를 재생해 내는 등 소리에 관련된 사안에는 꼭 등장하여 속시원히 해결해 주는 소리공학 박사가 바로 배명진 교수다.
약속시간 보다 좀 일찍 숭실대학교 안의 소리공학연구소를 방문했을 때도 배 교수는 연구실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근 채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중이었다. “박사님은 지금 새로운 비밀 연구 프로젝트가 있다”며 안내해 준 다른 연구원이 귀띔했다.
약속한 시간에 맞춰 나타난 배명진 교수가 건넨 명함에는 숭실대학교 정보통신전자공학부 교수와 소리공학연구소 소장이라는 직함이 적혀있었다. 먼저 소리공학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소리를 주제로 분석하고 규명해서 두루 여러 사람에게 유익하게 이득이 되는 실용성을 목적으로 한 학문입니다. 한국음향학회만 하더라도 등록돼 있는 4천여 명의 석박사들이 소리 관련한 연구를 하고 있는데 어쩌다보니 제가 대표로 부각되고 있는 것 뿐입니다.”
배 교수의 겸손한 대답이 뒤따른다.
“우리는 늘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가지요. 소리는 너무나 중요한 존재입니다. 평소에는 잘 지각하지 못하지만 막상 듣지 못한다면 매우 불편해집니다. 특히 소리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지고, 맛보는 오감 중에서 두 개의 감각을 갖고 있습니다. 소리를 청각만으로 생각하는데 촉각도 소리 영역에 해당합니다. 촉각을 통해 진동이 전해지는데 진동에너지는 곧 소리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소리를 가지고 별거 다 연구하는 소리공학연구소에는 유난히 많은 각종 스피커들이 눈에 띈다.>

 

천만관객 영화성공도 ‘소리의 힘’
아바타를 비롯해 요즘 천만 관객을 모으는 영화들의 성공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배 교수가 되물었다. 눈에 보이는 영상 기술의 발전은 당연한 것이지만 음향의 발전이야말로 천만 관객동원의 일등공신이라며 배 교수는 소리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한다.
“한 사람이 많게는 같은 영화를 30번씩 보았기에 천만 관객이 된 것이죠. 그것은 소리에 따른 현장감을 즐기는 매니아층이 있기 때문이고 음향효과야 말로 영화 속으로 빨려들어 동조감을 느끼게 해준 천만 관객 동원의 숨은 일등공신입니다.”
그저 바로 눈에 보이는 그것만이 더 도드라지는 세상이어서 소리는 배경쯤으로 취급당하는 듯하지만 사실 소리의 힘은 무궁무진하며 경이로운 것이라며 배 교수는 힘주어 얘기한다.

유관순 열사 목소리 재현해
몇 해 전 유관순 열사의 목소리를 재현했다고 해서 배 교수가 주목을 받았던 적이 있다. 삼일절을 앞두고 새삼스럽게 유 열사의 목소리가 궁금해서 물었다.
“사실 그것은 한 방송국의 의뢰를 받아 기획한 프로젝트였죠. 재현한 유관순 열사의 목소리는 의외로 맑고 어린 목소리였고, 신장이 170cm로 당시론 보기 드문 장신이었던 유관순 열사의 목소리로는 의외라는 반응들도 있었죠. 하지만 당시 생존해있던 유관순 열사의 친구와 가족들은 ‘목소리가 비슷하다’는 증언을 해주었습니다.  꽤 흥미로운 과제였죠.”
유관순 열사의 목소리 재현은 유 열사와 신체 조건과 비슷한 같은 연령대의 여성 목소리를 추출·분석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했다고 한다. 먼저 서대문 형무소에서 찍은 유 열사의 사진을 통해 유 열사의 키는 5척6촌에 달하고 코가 오똑하며 목이 두껍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는 목소리가 우렁차고 또렷하며 맑은 고음을 낸다는 특징이 있다.
이어 여대생 320명 중 유 열사와 신체 조건이 비슷한 15명을 선정한 뒤 발성 구조 비교를 통해 목소리 모델을 압축했다. 최종 5명의 목소리 중 공통 부분을 기본 음색으로 정한 뒤 목소리 운율 패턴을 적용해서 톤이 높고 고음인 유 열사의 목소리를 재현해 낸 것이다.

공부 잘되는 소리는 자연의 소리
공부할 때 가장 알맞은 소리는 자연의 소리라고 배 교수는 말한다.
“공부할 때 오감 가운데 가장 자극이 없는 곳은 청각이죠. 이러한 적막감을 해소하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다른 곳에서 들리는 소리에 관여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죠.  따라서 학습 효과를 높이려면 오감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비오는 소리, 폭포수 소리, 파도치는 소리, 나뭇가지에 바람 스치는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는 뇌가 평상시에 듣고 지내는 일상적인 소리로 인식하기 때문에 별로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안정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따라서 공부할 때나 뭔가에 집중해야 할 때는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사용하지 말고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 학습 효과를 높일 수 있습니다.”
청각은 정보 습득의 방향성에 한계가 없으며, 일상적인 생활에서는 말 그대로 사방에서 들려오는 청각자극에 노출되게 마련이어서 주변의 소음에 노출된 청각은 주의력을 분산시키고 집중력 저하의 원인이 된다는 것.  하지만 물소리, 바람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는 청각의 안정을 줘 집중력을 향상시켜준다고 배 교수는 말한다.
건강에 있어서 소리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고, 이제 인간은 즐거운 소리,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좀 더 편안하게 사는 법에 관심을 기울일 때가 됐다고 배 교수는 주장한다. 웰빙의 개념에 단지 먹을거리만이 아닌 귀로 듣는 소리의 즐거움까지를 적극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소리 테마파크’ 계획이란다.
도시에서도 숲 속을 거니는 것처럼 새소리, 폭포소리, 시냇물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산책할 수 있는 체험공간을 생각해낸 것이다.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살아있는 생생한 박물관이 소리테마파크로 탄생되는 것이란다.

소리테마파크 곧 개장
“박물관을 찾아가 관람하는 소리가 아니라 생활 주변에서 직접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살아있는 생생한 소리 공간을 고민하던 중 야외공원과 소리를 접목하는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가을 숭실대학교 캠퍼스 안에 시범적으로 소리테마파크를 조성했다. 실내가 아닌 실외의 공간에서 이처럼 다양한 소리를 체험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은 세계 처음이다.
‘건강한 소리가 있는 캠퍼스’란 주제의 캠퍼스 소리테마파크는 바람, 물 등 자연의 소리를 이용해 학업에 지친 학생들의 심신을 달래주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한 예로 도서관과 강의실에는 집중력을 높이고 공부가 잘되는 소리를 틀어주고 동작감지기를 이용해 학생들이 졸음에 빠지면 잠이 깨는 소리를 들려준다.
또 목소리 등을 분석해 건강상태를 측정하는 장치를 설치하고 캠퍼스 뒤편의 오솔길은 계곡물 소리와 새소리, 산사의 종소리 등이 들리는 휴식 공간으로 조성했다.
이러한 장치에는 지향성 스피커가 있어 센서를 밟은 사람 외에 주변 사람에게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했다.
올봄에는 보라매공원 안에 소리테마파크 개장을 목표로 한창 마무리 작업 중에 있고, 가을 쯤에는 한강 노을공원 안에도 사운드테마파크가 설치된다.

소리건강체험센터도 구상 중
앞으로 국방과 해양관련으로 한 소리 공학연구에도 큰 가능성과 시장이 있다고 배 교수는 얘기한다.
“바닷 속에서는 소리가 물을 매개체로 하여 커뮤니케이션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의 쓰나미의 발생 근원지, 잠수함의 이동 등 물속 깊숙한 곳의 상황을 소리를 이용해 알 수 있기 때문이죠.”
단지 소리 연구를 넘어 일상의 영역에서 실용화하고, 나아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시킬 가능성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그 중 하나가 소리건강체험센터다.
소리건강체험센터란 촉감으로 느끼는 소리를 이용해서 건강체험을 해보는 프로젝트다. 즉 소리의 공명효과를 이용해 피부를 탄력 있게, 눈을 밝게 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5분 정도의 음악 한 곡을 얼굴에 듣려주면, 얼굴 피부도 부드러워지고, 얼굴 해충도 제거된다고.
지금은 이에 대한 연구를 마치고 임상실험을 진행 중인데 앞으로 몇 달 후엔 임상실험을 마치고 소리공명 효과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건강체험 센터를 열 계획이란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가 궁금해 그 속 부품들을 분해하며 놀이를 삼던 호기심 가득했던 소년. 그로부터 쭉 계속해서 전자공학에 소리를 접목시키는 연구만으로 30여년 세월을 보냈다. 어느새 나이는 50줄을 훌쩍 지났지만 호기심 가득한 눈빛은 아직도 여전하고, 소리에 대한 연구 집념은 부풀어져 갈 뿐이다. 메아리가 산 계곡 구비를 돌며 울려퍼지듯 배명진 교수의 소리에 대한 연구 역시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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