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하나 남은 85년 전통의 서커스단 , 동춘서커스 박세환 단장

 

기예실력은 세계 최고지만 마케팅 못해 어려워져


동춘서커스단 사라지면 공연예술 한 장르가 끊겨
“캐나다 태양의 서커스보다 뒤질 게 없는 우리 서커스단입니다. 재주로만 보면 우리 애들이 훨씬 잘합니다.”
몇달 전만 해도 심각한 경영난으로 문 닫을 위기상황이었던 동춘서커스단이 정부당국의 도움으로 명맥은 유지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게  되었고, 동춘서커스의 박세환 단장도 한숨 돌린 상황이어서인지 서커스단에 대한  깊은 애정과 자부심을 드러낸다.
청량리 수산시장 안의 파란 줄무늬 천막의 공연장 앞은 요즘 쌀쌀한 날씨에도 단체 손님들이 줄이어 서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서커스단의 해체 소식이 전해지자, 우리나라에 겨우 하나 남은, 마지막 서커스단의 회생을 돕겠다며 기업체 등에서 연말을 맞아 단체관람을 와주는 경우가 종종 있고 일부러 찾아와서 서커스를 보는 젊은 관객들도 있다. 그래서 박 단장은 오히려 전보다 더 힘을 내 서커스를 홍보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하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재미없으면 입장료 돌려줘
“다른 공연단은 공연때만 임시로 모였다가 흩어지는 시스템이지만 우리는 공연을 안해도, 손님이 없어도 내내 단원이 모두 함께 하기에 모든 걸 다 떠안고 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동안 시설투자와 마케팅에 여력이 없었던 게  아쉬운 부분입니다.”
박 단장은 작년에는 경제위기로 관객이 줄어서, 그리고 올해는 신종플루 때문에 경영난에 시달려 더 버틸 여력이 없을만큼 힘들었다고 하소연한다. 다행히 동춘서커스단 마저 없어지면 우리나라 역사에서 서커스란 장르 자체가 영원히 사라진다는 위기의식과 서커스를 사랑하는 국민들의 성원으로 다행히 명맥은 유지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 운영의 묘를 살려야 하는 게 큰 과제란다.
동춘서커스단의 공연은 국보급이라 할 수 있는 김영희 씨의 대그네 타기와 오토바이 묘기, 2005년 세계서커스 경연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박광원 씨의 저글링공연 등 1시간 40분의 공연시간 내내 스릴과 흥미 만점이라고 소개한다. 오죽 자신이 있으면 공연안내 전단지에 “만약 재미없으면 공연입장료를 돌려드립니다.”란 문구까지 집어넣었을까?

경북 경주의 밀양박씨 종가 출신인 박 단장은 1963년에 동춘서커스에 입단해 사회자겸 배우로 활약했다. 탤런트 장항선 씨가 그의 동기다.
“저 태어날 때 장 닭이 울어서 유명인이 되리라는 기대를 많이 받고 자랐죠. 2대 국회의원을 지낸 조부는 장손에 대한 기대가 많았는데, 경주고등학교 다닐 19살에 노래동아리에서 활동하다가 동춘서커스단이 경주에 공연온 걸 보게된 게 동춘과의 첫 인연이죠.”
까만 양복에 하얀 머플러를 걸치고 많은 사람들을 좌우지 하는 사회자가 그렇게 멋지게 보일 수가 없었단다. 음악을 하겠다고 무작정 서울로 가출을 했지만 음악을 배울 곳은 서커스단에 들어가는 길 밖에 없었다.
“당시는 15개의 서커스단이 우리나라 국악과 연극, 쇼 등 대중예술을 이끌었죠. 코끼리를 비롯 단원 200여 명이 있는 동춘서커스단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당시 동춘서커스 멤버가 되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죠. 내 밥 사먹어 가며 무대에 서보겠다는 일념으로는 심부름부터 시작했습니다.”
‘청춘의 꿈’이란 노래를 불렀던 첫무대를 얘기하며 박 단장의 눈빛은 아스라히 추억에 젖는다. 박 단장은 당시 화려한 입담과 뛰어난 노래 솜씨, 개성 있는 연기로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집안 어른들의 반대에 부딪혀 예인의 꿈을 중도에 포기하고 만다. 그 후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던 박 단장은 동춘 서커스가 파산 직전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1978년에  서커스단을 인수했다.
“리어카를 타고 서커스를 보러오던 할머니, 신문지 한 장 달랑 갖고 와서 막무가내로 들여보내달라고 떼쓰던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서커스단이 사라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죠. 그 당시엔 예술 공연이 흔치 않은 소외지역에서 공연하면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 자식들이 많아 보람이 컸습니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TV 볼거리가 늘면서 서커스단은 쇠락해 갔다.

태풍 매미로 극장 위기 때도 국민이 성원해
박 단장에게는 잊지 못할 공연이 있다. 2003년 태풍 매미가 여수에 올라 올 때 동춘은 광양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대목인 추석공연을 앞두고 있어 천막을 걷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우물쭈물 하다가 태풍의 공격을 당해서 극장이 다 떠내려간 아픈 기억이다.
하지만 그때도 다시 맨손으로 일어날 수 있었던 건 국민들의 성원 덕분이었다고 박 단장은 말한다. 진주에서 공연할 때 서커스를 보러 하루에 2000~3000명씩의 관객이 보름간 입장했다는 것이다. 동춘이 큰 피해를 보았다는 뉴스 때문이었다.
“동춘에 대한 국민적 사랑은 이렇게 컸습니다. 이 힘으로 지금의 청량리 공연을 할 수 있게된 것이죠.”
요즘은 아이들 손을 잡고 현장견학으로 서커스를 찾는 젊은 엄마들도 종종 눈에 띄여서 박 단장으로서는 고마운 마음과 함께 서커스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한다.
“문광부지원은 아직까지 얘기만 있을 뿐 받지 못하고 있지만 제 소망은 서커스 아카데미나 상설극장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예전의 동춘 서커스가 아니고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85년간 연중무휴로 공연해온 동춘서커스 프로그램도 그동안 많이 쇄신하였습니다. 최신장비의 음향과 조명시설도 갖췄습니다. 저렴한 입장료로 온가족이 함께 해도 결코 후회없이 스릴과 재미를 느끼며 돌아 갈수 있는 공연이 될 것이라 자부합니다.  또 여러분이 내주시는 입장료는 동춘서커스단을 키우는 후원금과 성금이 됩니다. 서커스는 온가족이 함께 보는 것이 제일 재미있지요.”
꺼져가는 서커스의 명맥을 악착같이 이어가고 있는 박 단장이 아니었다면 이땅에 서커스단은  더 이상 없었는지도 모른다. 동춘이 있는 한 우리나라 서커스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동춘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반세기를 이어온 박 단장의 꿈이 꼭 이루어져 상설 서커스 극장에서 태양의서커스 못지않은 무대의상을 입고 조명을 받는 배우들이 박수 받으며 공연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동춘 서커스 공연 안내
▶ 김포 공연 
   -공연기간:12월19일부터 내년 1월 10일까지 
   -장소 : 김포시 사우동 시민회관 실내체육관 
   -공연문의 : 02-452-3112
▶ 수원공연
   -공연기간 : 2010년 1월12일~ 3월 15일 까지 
   -장소 : 수원시 장안구 장안문 옆 드라마세트장
   -공연문의 : 02-452-3112

 


동춘서커스단은
동춘 서커스단은 일본 서커스단에서 활동 하던 박동춘 씨가 우리나라 사람들 30명을 이끌고 독립해 1925년에 만들었다. 공연문화라는 용어조차 없던 그 시절, 동춘 서커스는 전에 본적이 없는 아찔한 공중 곡예와 구성진 판소리, 신기한 마술쇼로 사람들의 혼을 쏙 빼 놓으며 서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대표적인 서커스 쇼로 자리 잡는다.
이후 1960~1970년대 동춘은 최대 호황을 누린다.  별다른 여가가 없던 시절 동춘은 서민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소속 단원들만 250명이 넘었고 당시 최고 스타 배출의 요람이었다. 영화배우 허장강, 코미디언 서영춘, 배삼룡, 백금녀, 남철, 남성남씨 등의 수많은 스타들이 동춘 서커스단을 거쳐 갔다.
하지만 텔레비전 방송의 출현 등 시대 흐름에 따라 내리막을 탄다. TV가 나오면서 동춘서커스단은 더 이상 유일한 볼거리가 아니었다.
뿔뿔히 흩어질 위기에 처한 동춘서커스단을 지금의 박세환 단장이 75년에 인수해 운영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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