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뽀빠이가 만난 최고의 농업연구인

■  기획특집 - 뽀빠이가 만난 최고의 농업연구인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 소장 박 기 훈 박사

글 싣는 순서
①꿈의 광원 LED, 농업을 바꾼다
②곤충도 음식물쓰레기 처리에 동참
③이제 집에서 ‘전통주’ 간편하게 제조
④농업도 이젠 로봇시대
⑤한국, 세계5대 종자강국 꿈꾼다

 

<농업유전자원센터 박기훈(사진 왼쪽) 소장으로부터 저온 보관 중인 종자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이상용 씨.>

 

유전자원 보관시설·관리능력 세계적 수준
해외서 종자 기탁·토종종자 반환 잇따라
국제유전자원협력훈련센터 설치…전문가 양성

지난해 8월에는 FAO/GCDT(세계작물다양성재단)으로부터 ‘세계 종자 안전중복보존소’로 공인받아 동북아의 허브뱅크 역할을 하고 있는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 작년과 올해 외국으로부터 농업유전자원을 기탁받아 보관 중에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유출된 토종종자의 반환도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국제생물다양성연구소(BI)가 지정하는 ‘국제유전자원협력훈련센터’를 설치해 11개국 15명을 훈련 중이다. 2017년까지 유전자원을 34만4천 점까지 확보해 세계 5위 유전자원 강국 달성을 목표로 잡고 활동 중인 농업유전자원센터 박기훈 박사를 농촌진흥청 명예홍보대사인 뽀빠이 이상용 씨가 만나 ‘노아의 방주’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뽀빠이 이상용= 농업유전자원센터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박기훈 박사=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나라 것은 물론 세상의 온갖 종자를 모아 두는 은행이다. 세계적으로 매년 지구상에서는 2만5천 내지는 5만 종의 생물이 멸종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없어지는 종자들이 많다. 이것들을 모아 안전한 장소에 백 년 이백 년 보존하면서 필요할 때 꺼내서 쓰고 후손들도 지속적으로 쓸 수 있게 하는 기관이다.
뽀빠이= 생물종이 그렇게 많이 멸종되는 이유가 뭔가?
박 박사= 눈부시게 발전하는 산업화와 기후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다. 산업화로 산과 바다가 없어지고, 산림이 파괴되고 있다. 거기에 살고 있는 생물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20년 전만 해도 대구에서 유명했던 사과가 지금은 강원도 영월까지 북상해 재배되고 있다. 누군가가 정신 차려서 품종을 보존해 두지 않으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특히 이 땅에서 자생해온 종자들은 수천, 수만 년 동안 적응하며 진화해온 것이라, 그 안에 좋은 유전자가 수없이 들어 있다. 종자는 흐르는 물 같아서 한번 없어지면 재생이 불가능하다.
뽀빠이= 종자들을 어떻게 보존하나?
박 박사= 죽지 않을 정도로 수분을 떨어뜨리고 영하의 환경에 두면 100년 후에도 씨로 쓸 수 있다.
뽀빠이= 보존한 종자는 어떻게 쓰나?
박 박사= 새 품종은 하늘이나 땅에서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미 있었던 종자에서 만들어 낸다. 그래서 옛날 종자도 쓸모가 크다. 1913년부터 2007년까지 우리나라에서 육성한 모든 품종은 총 2천477종인데, 이 중에 국내 품종을 이용해서 육성한 품종은 823종 34%이었고, 외국종을 이용한 것은 1천654종이었다.
뽀빠이= 선조들이 가꿔온 재래종이 무슨 쓸모가 있나?
박 박사= 수십 년, 수백 년 우리 선조들에 의해 재배돼 내려온 작물은 지역의 기후와 풍토에 잘 적응돼 온 품종이라 재해나 병해충에 특별히 강하다. 또한 독특한 맛, 기능성이 있다. 예를 들면 벼 품종의 자광도, 검정콩인 쥐눈이콩, 앉은뱅이밀 등은 수량은 적지만 기능성이나 재해에 아주 강한 품종이다. 이런 재래종은 새 품종을 만들어 내는데 없어서는 안 된다. 또 오랜 세월 우리 조상이 먹어 온 조, 수수, 기장 등은 한동안 수량이 많은 개량품종에 밀려 자취를 감추었다 최근에 웰빙 식품으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농진청은 잡곡프로젝트사업을 수행해서 재래잡곡의 가치를 검증하고 보급할 계획이다.

종자빈국, 세계 6대 종자강국으로 발돋움
뽀빠이= 실제로 보존하는 유전자원으로 새 품종을 만든 것은 없나?
박 박사= 최근에 수집하고 보존한 유전자원으로부터 좋은 품종이 많이 나왔다. 우리나라 재래 콩 중에 일제시대에 미국으로 반출된 것이 있다. 이 콩에는 바이러스에 강력한 유전자가 들어 있다. 이 유전자를 찾아내 콩나물용 콩인 ‘소원콩’에 넣어 신품종 ‘신화콩’을 육성했다. 이 콩은 10a당 307㎏이 수확돼 그동안 재배되던 콩보다 11% 이상 더 나오고, 건강기능성 물질인 ‘아이소플라본’ 함량이 기존의 최고 함량 품종보다 24%나 많다. 제주도에서는 이 품종이 콩나물 콩으로 인기가 높다. 이 밖에도 토종 다래로 껍질째 먹는 참다래를 육성하고 있고, 재래종 비파로 식용·약용·화장품 원료 등으로 쓰이는 ‘미황’이라는 새 품종을 만들었다.
뽀빠이= 국고를 쓰면서 외국의 유전자원을 수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박 박사= 세계는 바야흐로 유전자원전쟁 중에 있다. 유전자원이 세상을 바꾸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서거한 미국의 농학자 노먼 볼로그 박사가 난쟁이 밀 유전자를 멕시코 밀에 넣어서 무려 2억4천500만 명의 목숨을 기아에서 건진 공로로 197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아직 공식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재래종 앉은뱅이 밀이 일제시대에 미국으로 건너가 탄생된 ‘소노라 64호’가 볼로그 박사의 녹색혁명의 원동력이라는 주장도 있다. 통일벼만 해도 대만·일본·인도네시아 벼의 피가 섞인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국토도 좁고, 온대지방이라 유전자원 빈국에 속한다. 우리가 기를 쓰고 전 세계의 유전자원을 수집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뽀빠이= 최근에 만들어진 좋은 품종 중에 외국 유전자원을 쓴 것이 있나?
박 박사= 그렇다. 국제밀연구소(CIMMYT)에서 가져온 보리에 우리나라 보리의 유전자를 섞어 만든 유연청보리는 보리에 있는 까락이 없어 부들부들하다. 게다가 일반보리는 대를 씹으면 쌉쌀한데 청보리는 달달해서 일반보리와 함께 주면 소가 청보리만 먹는다. 획기적으로 우수한 사료용 보리라 농촌에서 인기가 대단하다. 마늘은 꽃이 피지 않지만 꽃이 피는 우즈베키스탄 마늘에서 다산이라는 우수한 마늘을 만들었다. 미국과 일본에서 들여온 품종으로 달고 알이 굵은 흑구슬이라는 포도도 만들었다.
뽀빠이= 일제시대 때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종자를 반환받고 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박 박사= 그렇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특히 일제시대에 한반도에서 엄청난 유전자원이 반출됐다. 이것들을 반환받고 있다. 2007년에는 미국에서 1천679점, 지난해는 일본에서 1천546점, 러시아에서 296점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지난 9월 8일 독일 유전자연구소에서 돌아온 씨앗 270여 종 901점은 의미가 깊다. 이것은 일제강점기, 6.25전쟁,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가져간 것이다. 이 중 무려 779점은 대부분 동독이 북한에서 확보한 보리·밀·배추 등 아주 다양한 종자들이다. 북한 종들은 대부분 추위에 강한 것들이라 앞으로 내한성 품종을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일본·독일 등이 우리 원산자원을 선뜻 반환해 준 배경에는 우리 농촌진흥청의 최첨단 시설과 운영능력이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뽀빠이= 우리나라에서는 이곳에서만 보존하고 있나? 만일 여기에 무슨 사고라도 난다면?
박 박사= 수원 종자은행은 예상이 가능한 어떤 사고에도 안전한 보존창고이다. 그러나 만약을 염려해서 전국에 걸쳐 분산해서 보존하고 있다. 지역의 특성을 살려 전국의 지자체, 대학, 민간기관 등 91개 기관에서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선인장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 산채는 강원도농업기술원에서, 세균과 벼 자원은 서울대학교, 경상대학교에서는 콩과 보리, 동국대학교에서는 약용식물 등을 보존·관리하고 있다.
뽀빠이= 종자의 중요성과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종자강국이라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 계속 큰일을 부탁한다.
박 박사= 고맙다.

┃정리=이완주 본지 칼럼니스트/사진=송재선

 

TIP. 종자은행이란…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에 관리하고 있는 종자 50만점, 미생물 5만점을 최장 100년 간 저장할 수 있는 저장고를 말한다. 수원시 서둔동에 위치한 총 2만9천여㎡의 대지 위에 1천59㎡의 유전자원 저장시설과 1천600㎡의 온실 등이 갖춰져 있어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종자를 100년 동안 저장할 수 있는 -18℃의 저장고와 30년 동안 저장할 수 있는 4℃ 저장고, 영양체를 영구 보존할 수 있는 -196℃ 저장고 등이 갖춰져 있다.
여기서는 미생물, 버섯, 유전자 등도 영구 보존이 가능하다. 현재는 식물종자 1천8여 종, 식물영양체 1천여 종, 미생물 5천여 종 등 총 7천592종 26만8천 점이 보관돼 있다. 이런 물량은 미국 51만 종, 중국 39만 종, 인도 34만 종, 러시아 32만 종, 일본 24만 종에 이어 6번째 종자강국을 마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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