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322)

“여기까지 왔습니다./한 발, 또 한 발 걸어온 길이 반백년을 훌쩍 넘어 오늘까지 왔습니다/마이크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이렇게 용기가 필요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박수 칠 때 떠나라’라는 쉽고 간단한 말의 깊은 진리의 뜻을 저는 따르고자 합니다...”

‘우리 시대의 가왕(歌王)’, 혹은 ‘트로트의 황제-가황(歌皇)’으로 불린 가수 나훈아가 4월의 지방 순회공연을 끝으로 무대를 떠난다.

그가 마지막으로 세상에 내건 ‘고마웠습니다-라스트 콘서트’가 주는 의미는, 한 가수의 단순한 마지막 공연이 아니라, ‘하나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또 하나의 상징’과도 같다.

나훈아는 분명 대한민국의 모든 가요계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오래되고, 전통적인 커다란 ‘노래 산맥’의 하나임은 부인할 수 없다.

# 그는, ‘대중가요 가수’이면서도, 평소 ‘신비주의 콘셉트’를 강하게 유지하면서, “내 노래를 들으려면, 표를 사서 들고 내 공연에 와라!”라는 ‘견고한 성’ 같은 태도를 유지해 왔다.

나훈아는, 평소 “스타는 저 하늘의 별과 같아야 한다!” “스타는 30%의 안티(Anti-반대의 뜻)가 있어야 한다!”며 어수선한 대중가요 바닥에서 ‘우상’으로서 본인을 자리매김하고, 행사나 방송 섭외 외에는 고의적으로(?) 본인의 몸값을 높였다.

(그럼에도, 팬들은 이에 개의치 않았다.)

나훈아 콘서트의 인기가 매우 높은 데다, 콘서트 예매 자체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인 것도 이 때문이다.

# 나훈아의 본명은 최홍기(崔弘基). 1947년 2월11일생으로 올해 만 77세다.

부산광역시 초량동 출생으로 서라벌예고를 졸업(1969)했다. 2009~2016년까지 7년여를 빼고서는, 1966년에 <천리길>로 데뷔해 2024년까지 활동해왔다.

가족은 가수 출신 부인인 정수경씨와의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으며, 종교는 기독교다.

대표곡으로는 <사랑은 눈물의 씨앗>(1969), <너와 나의 고향>(1969), <강촌에 살고 싶네>(1969), <가지마오>(1971), <머나먼 고향>(1971), <해변의 여인>(1971), <고향역>(1972), <물레방아 도는데>(1972), <잡초>(1982), <땡벌>(1987), <무시로>(1988), <갈무리>(1989), <홍시(울 엄마)>(2004), <고장난 벽시계> (2005), <테스형!>(2020) 등... 그동안 작곡한 노래가 800여곡 이상 된다.

그는, 최근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며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크고 높은 소리로 외쳐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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