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8군 무대 노래하는 드러머
1978년 MBC 대학가요제 출전
트로트 발라드 직접 작사·작곡     
10·26사건 상징 ‘그때 그사람’
파란 겪은 뒤 해금…재기 성공

■ 박해문 음악감독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디바’

1979년 최현군과 함께 스플릿 앨범으로 제작된 심수봉의 공식 데뷔 앨범. 총 10곡(군가 제외)의 수록곡 중 타이틀곡 ‘그때 그사람’이 A·B면 둘 다 첫 트랙에 실렸다. A면은 오케스트라, B면은 대학가요제 본선 무대처럼 심수봉이 홀로 피아노를 치며 노래한 어쿠스틱(전자 음향 장치를 거치지 않은) 버전이다. 
1979년 최현군과 함께 스플릿 앨범으로 제작된 심수봉의 공식 데뷔 앨범. 총 10곡(군가 제외)의 수록곡 중 타이틀곡 ‘그때 그사람’이 A·B면 둘 다 첫 트랙에 실렸다. A면은 오케스트라, B면은 대학가요제 본선 무대처럼 심수봉이 홀로 피아노를 치며 노래한 어쿠스틱(전자 음향 장치를 거치지 않은) 버전이다. 

트로트 싱어송라이터로서 재능 떨쳐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 사랑의 괴로움을 몰래 감추고 떠난 사람 못 잊어서 울던 그 사람~.’

1978년 제2회 MBC 대학가요제가 발굴한 히트곡, 가수 심수봉의 자작곡 ‘그때 그사람’의 노랫말이다. 당시 무대는 임백천, 노사연, 배철수(밴드 활주로) 등이 겨루는 자리였다. 본명 심민경으로 출전한 이 대회에서 심수봉은 상을 타지 못했다. 심사위원들은 ‘그때 그사람’에 점수를 주지 않았다. 대학생다운 풋풋함이 없고, 너무 프로 같아서였다. 비록 무관에 그쳤지만 심수봉은 이 무대를 통해 트로트 싱어송라이터로서 재능을 보여줬다. 

1955년 8월28일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심수봉은 세 살 때 부모가 헤어지면서 친인척 손에서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자랐다. 이후 어머니를 따라 서울과 인천 등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음악적 소질을 알아본 어머니의 뒷받침으로 심수봉은 어려서부터 피아노, 드럼 등 음악과 가까이 지냈다.

심수봉의 친가는 증조부 때부터 음악을 했던 집안이었다고 한다. 큰아버지, 고모 등도 음악을 했고, 어머니와 헤어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둔 아버지 심재덕은 민요수집가였다. 5촌 당숙 심상건은 가야금 명인으로 황병기의 가야금 스승이다. 

심수봉은 한 방송에서 “4대째 140여개의 앨범을 냈다. ‘민속학의 바흐’ 집안으로 불렸다. 전 세계적으로도 이런 일이 별로 없다더라”고 직접 언급했다. 

훗날 심수봉이 록밴드 논스톱의 노래하는 드러머로서 미8군 무대에 서고, 데뷔와 동시에 명성을 얻은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심수봉은 중학교 때 희귀병을 앓은 탓에 2년 휴학하고, 나이 스물에 대입을 준비하면서 레스토랑에서 피아노 치고 노래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우연히 대타로 피아노 반주를 하러 간 보광동 연회 자리에서 박종규 대통령 경호실장의 눈에 들게 된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 만찬 자리에 불려가기 시작했다. 

1976년 재수 끝에 명지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해 나훈아의 주선으로 데뷔 앨범을 준비하기도 했으나 무산됐다. 그리고 1978년 대학가요제에 출전했다. 당시 모든 대학생들이 록, 발라드, 국악 등의 장르를 선택했지만, 심수봉은 트로트 자작곡 ‘그때 그사람’을 부르며 직접 피아노를 연주했다. 

애절한 가사와 멜로디, 심장 파고들어
가요제 직후 지구레코드와 전속 계약을 맺고 독집 준비에 들어갔다. 1979년 지구레코드에서 심수봉의 첫 독집을 발매했지만, 대학가요제 본선에 함께 출전했으나 입상하지 못한 최현군과 함께 스플릿 앨범으로 제작했다. 

애절한 가사와 멜로디로 심장을 파고드는 ‘그때 그사람’은 심수봉의 공식 데뷔곡이자 출세곡이다. 하지만 10·26사건과 엮이면서 오랫동안 활동 금지라는 좌절을 안긴 곡이기도 하다. 

대학가요제를 발판으로 인기몰이를 하던 중 1979년 10월26일,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그때 그사람’을 불렀다. 이 때문에 이 노래는 10·2사건을 상징하는 노래가 됐다.

방송금지와 출국금지 조치로 힘든 시간을 보내며 자취를 감췄던 심수봉은 해금되던 해인 1984년 재기 앨범을 발표했다. 그의 대표 히트곡 중 하나인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가 수록됐다. 

‘언제나 찾아오는 부두의 이별이 아쉬워 두 손을 꼭 잡았나 눈앞에 바다를 핑계로 헤어지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심수봉의 히트곡들은 대부분 그가 직접 작사·작곡했다. 유명한 트로트 가수더라도 대개 유명 작곡가의 곡을 받아 부르곤 하는데, 심수봉은 이미 악기를 다루는 능력이 탁월했던 터라 트로트와 발라드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곡으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심수봉은 트로트 가수가 아닌 ‘아티스트’로 평가된다. 

직접 작사·작곡한 ‘사랑밖엔 난 몰라’ ‘미워요’ ‘비나리’ ‘무궁화’와 라트비아 가요 번안곡 ‘백만송이 장미’ 등이 큰 사랑을 받았다. 

가수로 데뷔한 지 얼마 안 돼 파란을 겪고 방송활동이 금지되며 수모를 겪어야 했던 가수 심수봉은 보상이라도 받듯 최근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잇고 있다. 

박해문 음악감독이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디바’>는 박 감독의 형이자 오랜 음악적 동지인 박해운 음악감독이 이어갑니다. 

박해문 음악감독은 대중음악 작곡가, 프로듀서, Seagate_DJ로 활동 중이다. 한·중 합작 팩츄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 JTBC 드라마 ‘나의 나라’ 음악 등을 만들었다.
박해문 음악감독은 대중음악 작곡가, 프로듀서, Seagate_DJ로 활동 중이다. 한·중 합작 팩츄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 JTBC 드라마 ‘나의 나라’ 음악 등을 만들었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