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원 혜윰지속가능연구소 대표

기후위기, 산업화로 

식물종과 동물종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상황...

20세기에 채소 생물종의 

75%를 잃었고, 

가축종 다양성의 33%를 잃어...

생물다양성, 삶의 다양성을 

지킬 수 있도록 맛의 방주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 지역의 

숨은 품목을 발굴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조혜원 혜윰지속가능연구소 대표

농촌지역을 다니며 교육과 컨설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유한 식재료를 접할 기회가 많다. 지난해에 방문했던 경북 의성군 로컬푸드직매장에서는 ‘의성배추’를 발견했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속이 꽉 찬 배추 모양이 아니라 무청과 같이 줄기가 얇고 가는 모양이었다. 지금도 토종의 맛을 기억하는 농민들이 밭에서 키우고 있지만 만약 고령화로 더 이상 농사를 짓지 못한다면 의성배추를 시중에서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충남 당진에서 발견한 ‘베틀콩’도 마찬가지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고유의 식재료다. 베틀콩을 보존하는 것은 소농 보호, 종의 다양성을 넘어 거기에 담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의 고유 품종은 그 지역에 잘 적응된 상태로 적은 물과 화학물질로도 살아갈 수 있는데, 고유 품종의 보존이야말로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문화유산이다. 

기후위기, 산업화로 식물종과 동물종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FAO(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인류는 20세기에 채소 생물종의 75%를 잃었고, 가축종 다양성의 33%를 잃었다. 미국에서는 95%의 작물종이 소멸했다. 

우리나라는 급속한 사회·경제·문화의 변화로 대대로 물려받은 다양한 종자, 식품, 문화의 단절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로 생명의 다양성과 고유의 맛이 사라지게 되면 우리 문명도 그만큼 척박해질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5년에 비해 2000년에는 86%의 토종이 멸종되고 말았다.

생산량과 소득을 추구해 작물을 생산하고, 사람들의 식성과 기호에 맞추다 보니 점점 생산량이 줄어 소멸가능성이 있는 품목들이 늘고 있다. 또 바쁜 현대인의 삶 속에서 더욱 간편하고 편리하게 조리할 수 있는 인스턴트식품, 즉석조리, 밀키트 제품의 호황 속에서 점점 요리하지 않는 트렌드도 한몫하고 있다. 조금 더 있으면 내가 어려서부터 먹었던 음식을 우리 아이는 경험할 수 없는 시기가 올 수도 있다. 

국제슬로푸드협회 생명다양성재단에서 추진하는 ‘맛의 방주(Ark of Taste)’는 기후변화, 산업화, 고령화 등으로 사라져가는 지역의 토종품종과 전통식품을 발굴·기록해 널리 알리고 보존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이러한 생물다양성 보호 활동은 종자, 땅, 문화, 환경과 사회의 지속가능성, 영양과 맛을 보존하는 활동이기도 하지만 삶의 다양성을 보호하는 활동이기도 하다. 

맛의 방주는 ‘생산자’를 발굴하는 게 아니라 ‘품목’의 발굴이고, 지역 고유의 맛을 가진 식재료와 식품을 포함한다. 맛의 방주에 등재되려면 현재 또는 잠재적으로 소멸위기에 있으면서 지역의 전통 조리법과 가공법, 독창적인 맛과 특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더욱 지역의 토양과 지역사회의 기억, 전통적 지식과 연관이 있는 품목이어야 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맛의 방주에 이름을 올린 품목은 6279개, 그중 대한민국 맛의 방주 품목은 111개다. 오랜 역사와 자연과 함께 독특한 문화를 간직한 이 땅에서 우리는 더 많은 맛의 방주 품목을 발굴하고 보존해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맛의 방주에 등재되면 국제적으로 지역음식자원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고 국내외 홍보와 유통, 관광자원화로 지역경제를 지원하게 된다. 제주 푸른콩장이 등재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푸른콩장 고유의 맛과 문화를 알리고 푸른콩과 연계한 미식체험, 관광상품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생물다양성, 삶의 다양성을 지킬 수 있도록 맛의 방주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 지역의 숨은 품목을 발굴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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