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성에 파워풀한 가창력
‘밤차’ 히트로 디스코 열풍 
직접 작사·작곡한 곡으로 
세계가요제 ‘우수가창상’ 
​​​​​​​2023년 데뷔 50주년 맞아 

■ 박해문 음악감독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디바’

만 12세에 데뷔해 성공적인 프로가수의 길을 걸었던 가수 이은하는 1978년 컴필레이션 앨범의 타이틀곡 ‘밤차’로 ‘디스코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만 12세에 데뷔해 성공적인 프로가수의 길을 걸었던 가수 이은하는 1978년 컴필레이션 앨범의 타이틀곡 ‘밤차’로 ‘디스코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처음 작사한 ‘아리송해’도 대박‘
멀리 기적이 우네 나를 두고 멀리 간다네 이젠 잊어야 하네 잊지 못할 사랑이지만 언젠가는 또 만나겠지 헤어졌다 또 만난다네~.’ 

1970~1980년대, 허스키한 목소리와 파워풀한 가창력으로 당대 최고의 댄스 팝 가수로 인기를 누렸던 이은하의 노래 ‘밤차’ 노랫말이다. 이 곡은 1978년 서라벌레코드에서 이은하 등 여러 가수의 노래를 담아 발매한 컴필레이션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은하는 ‘밤차’로 그해 MBC 10대 가수상과 TBC 여자 가수왕을 차지했다. 

이 노래의 인기에는 이은하의 춤도 한몫했다. 노래할 때 손가락을 위아래로 찌르는 디스코 동작은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이은하는 1961년 3월29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효순’이다. 아버지가 유명한 아코디언 연주자였기에 이은하는 어릴 때부터 일찍이 음악을 접했다. 어린 나이에 무대에 오르면서 음악적 능력을 길렀고, 아버지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처음에는 트로트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변성기를 일찍 겪은 터라 허스키한 목소리였던 이은하는 소울 팝으로 전향했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 만 12세 때인 1973년 ‘님마중’으로 데뷔했다. 당시 무명 가수였던 이은하는 나이트클럽 등 밤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미성년자는 방송 무대에 설 수 없었던 탓에 1958년생으로 세 살이나 올려 등록하고, 일부러 짙은 화장을 하면서 20대 아가씨로 위장해 가수활동을 시작했다.

어렵사리 공중파 무대에 출연하게 된 이은하의 첫 히트곡은 1976년 발표한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다. 그해 조영남이 먼저 부른 번안곡 ‘최진사댁 셋째 딸’도 히트했다. 그리고 1978년 발표한 유승엽 작사·작곡의 ‘밤차’로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했다. 이어 1979년, 이은하가 처음으로 작사한 곡 ‘아리송해’ 역시 대박이 나면서 그해 KBS 가수왕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아픔도 겪었다. 1980년 11월, 신군부가 자행한 언론 통폐합으로 당시 이은하의 소속사였던 TBC가 KBS에 강제 통합되면서 가수 인생에 큰 위기를 맞았다. 11월30일 자정을 기해 TBC는 송출 종료 뒤 모든 사업이 KBS로 이관됐다. 

그날 밤 고별 특집 방송으로 편성된 ‘TBC 가족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무대에서 이은하는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을 부르다가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완창하지 못했다. 

연말 가요대상 시상식에서나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방송사고였다. 이은하는 보안사령부의 미움을 사 3개월간 방송 출연이 정지된다. 

건강 회복 뒤 본격 활동 재개
출연이 재개된 이후에는 가수로서 탄탄대로를 걸었다. 파워풀한 가창력을 앞세워 1981년 KBS 세계가요제 그랑프리에 출전, 자신이 직접 작사·작곡한 ‘멀리 있어도’ 곡으로 우수가창상을 받았다.

가수로서 인기에 힘입어 1982년 처음으로 영화 ‘날마다 허물을 벗는 꽃뱀’이라는 성인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은하의 아버지는 이은하의 성인영화 출연을 꺼렸으나 당시 배우 이대근의 설득으로 허락했다고 한다. 

이후 산울림의 김창완이 작곡해 준 ‘사랑도 못해본 사람은’으로 1984년 방송가 가요대상을 휩쓸고, 1985년 김창남이 작곡한 슬로우 팝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와 1986년, 장덕이 작곡해 준 팝 발라드 ‘미소를 띠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으로 대히트를 기록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특히 긴 제목의 ‘미소를 띠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은 이은하가 본인의 첫사랑과의 가슴 아픈 시련의 이야기를 가사로 담은 곡이다. 

고인이 된 장덕이 작곡하고, 이은하가 작사했으며, 백업 밴드이자 노래의 주인공인 남자가 베이시스트로 있던 ‘호랑이’라는 밴드가 반주하고, 장덕이 코러스를 넣었다. 서정적인 노랫말과 성숙기에 접어든 이은하의 절제된 창법이 어우러진 이 노래는 1980년대 명곡으로 꼽힌다. 

1989년, 전영록이 작사·작곡한 ‘돌이키지마’가 마지막으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곡이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공백기가 이어졌다. 1990년대 초 건설회사를 운영했던 아버지가 빚 보증을 이은하 명의로 서면서 그로 인해 20억원에 달하는 빚을 떠안게 됐다고 한다. 

밤무대를 뛰며 수십 년에 걸쳐 결국, 이 빚을 모두 갚기는 했지만 그동안 건강을 챙기지 못한 탓에 최근 몇 년 새 낯선 모습으로 방송 무대에 서기도 했다. 

다행히 많이 회복돼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했다. 2023년 하반기에 예정됐던 데뷔 50주년 콘서트 대신 팬미팅을 진행했다. 

어린 나이에 가수로 데뷔해 팝 발라드, 디스코, 댄스, 팝 음악 등을 선보이며 꽉 찬 무대 매너로 7080세대에게 ‘영원한 디바’로 각인된 가수 이은하의 건강을 기원하고 앞날을 응원한다.

박해문 음악감독은 대중음악 작곡가, 프로듀서, Seagate_DJ로 활동 중이다. 한·중 합작 팩츄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 JTBC 드라마 ‘나의 나라’ 음악 등을 만들었다.
박해문 음악감독은 대중음악 작곡가, 프로듀서, Seagate_DJ로 활동 중이다. 한·중 합작 팩츄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 JTBC 드라마 ‘나의 나라’ 음악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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