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320)

한 달 전, 70년을 함께 산 동갑내기 부인과 고향집에서 ‘동반 안락사’로 세상을 뜬 드리스 판 아흐트 전 네덜란드 총리 얘기가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세상을 분분하게 흘러 다닌다.

아마도 흔치 않은 ‘동반 안락사’ 얘기라서 일까.

변호사 출신인 판 아흐트 총리는, 1977 ~1982년(6년간) 네덜란드 총리를 지냈다. 그는 2019년 팔레스타인 추모행사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계속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네덜란드 언론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항상 학생 시절부터 만난 부인-외제니 여사를 ‘내 여인(my baby girl)’이라고 부르며, 23세에 결혼해 70년을 함께 산 동갑내기 아내와 함께 93세에 자신들만의 길을 마지막으로 선택했다.

고향인 네이메헌 자택에서 함께 나란히 손을 잡고 ‘한 날 한 시’에 죽음을 맞이했는데, “부부가 모두 매우 아팠고, 서로가 없이는 혼자서는 떠날 수 없었다”고 측근이 전했다.

# 네덜란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적극적 안락사>를 합법화 한 나라다.

1)환자의 숙고와 자발적 요청이 있고, 2)환자의 고통이 견딜 수 없으며, 좋아질 가능성이 없고, 3)환자의 현재 상황과 예후에 대하여 잘 알고 있으며, 4)다른 적절한 해결책이 없고, 5)두 명 이상의 독립적인 의사와 상의했고, 6)위의 내용을 서면으로 제공한 경우, 합법적으로 약물투여를 받고, 안락사를 실시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현재 네덜란드 국민 전체 사망자의 약 5%가 안락사다. 안락사는 임박한 죽음 없이 환자와 보호자 요청으로 약물 등을 사용해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인 ‘적극적 안락사’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는 ‘소극적 안락사’로 나뉜다.

유럽에서는 네덜란드 외에 스위스, 벨기에, 스페인 등의 나라에서 안락사가 합법화 돼 있다.

지난해인 2023년까지 10여명의 한국인들이 ‘적극적 안락사’가 허용된 스위스에 찾아가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드리스 판 아흐트 전 네덜란드 총리의 경우와 같은 ‘동반 안락사’는, 네덜란드에서도 흔치 않은 사례로 꼽힌다. 2020년 26명(13쌍), 2021년 32명(16쌍), 2022년 58명(29쌍)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2월부터 시행된 연명의료결정제도에 따라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체외생명유지술, 수혈, 혈압상승제 투여 등의 연명치료를 거부할 권리만 있어, ‘마지막 선택’의 길까지.... 아직 갈 길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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