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심화에 태아 성별 고지 금지 무의미
작년 출생아 역대 최저치 경신...파격대책 시급

이제부터는 언제든지 임신부나 그 가족 등이 태아의 성별을 알 수 있게 됐다. 임신 32주 이전까지 의료인이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것을 금지한 현행 의료법에 대해 지난달 28일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6:3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기 때문. ‘부모가 태아의 성별을 알고자 하는 것은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욕구로 태아의 성별을 비롯해 태아에 대한 모든 정보에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는 부모로서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라는 게 헌재의 위헌 결정 이유다. 이는 과거 남아선호사상에 따른 여아 낙태를 막기 위해 마련됐던 성별 고지를 금지한 의료법 조항이 저출산이 심해지고 남아선호가 거의 사라진 요즘 세태와는 맞지 않는다는 취지의 결정으로 보인다. 

이러한 헌재의 결정을 뒷받침하듯, 출산율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유례없는 한국의 출산율 하락을 해외에서도 우려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 정도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23년 출생·사망 통계’와 ‘2023년 12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23만명으로 전년보다 1만9200명 줄어 역대 최저기록을 갈아치웠다. 2016년 40만명이 넘던 연간 출생아 수는 이듬해 40만명대, 2020년에는 30만명대가 무너졌다. 합계출산율도 8년째 하락세를 보이고 있고, 하락 폭도 커지는 양상이다. 코로나 엔데믹 이후에는 결혼 건수가 증가해 향후 출산율이 개선될 것으로 정부는 전망하지만 딩크족 증가와 출산기피 현상의 확산으로 낙관만은 할 수 없다. 

저출산과 관련한 경고등이 오래 전부터 켜졌지만 정부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여야의 저출생 공약 중 가장 도움이 되는 정책으로 여성들은 ‘육아휴직 급여 확대’라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조사에서도 부부 육아휴직 의무화와 현금성 지원을 저출생 해결에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 꼽았다. 통계청의 출산율 발표에 맞춰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한국의 여성들은 왜 아이를 낳지 않나’라는 제목으로 지난 1년간 전국의 한국 여성을 인터뷰해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집중 조명했다.

인터뷰에서 한국 여성들은 ‘집안일과 육아를 분담할 남자를 찾기 어렵고 혼자 아이를 가진 여성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육아휴직 후 해고되거나 승진에서 누락된 경우를 본 적이 있다’ 등 출산과 육아, 직장일을 병행하기 힘든 한국사회의 불편한 단면을 고스란히 털어놨다. BBC는 기사 말미에 한국경제가 지난 50년간 고속 발전하면서 여성을 교육과 일터로 밀어 넣었지만 아내와 어머니 역할은 같은 속도로 발전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이전 정부부터 저출산 대응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출산율 반등에 실패했다. 저출산 정책 입안자들이 정작 청년들과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특히 좋은 정책과 대책이 마련된다 하더라도 이 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할 환경을 만드는 게 우선돼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높다. 그간 백약이 무효였던 저출산 대응 정책이 현실을 도외시한 탁상공론의 결과다. 지속되는 저출산 쇼크에 상식적 대응이 아닌 쇼킹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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