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송광사 금죽헌 
화재로 29년 일순간 소실
보성 계심헌서 13년간 
‘새 옷 입고 부르는 노래’ 
지리산 기슭 새 둥지서
19시간 작품활동 매진
​​​​​​​5시간 꿈 없는 숙면…

■ 만나봅시다- 국가무형문화재 낙죽장 보유자 김기찬
차(茶)와 대나무의 고장 경남 하동. 지리산 기슭의 적량면 서리 구재봉 자연휴양림 인근 삼화실에 낙죽장(烙竹匠) 공방 ‘삼씨방’이 자리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31호 낙죽장 보유자 김기찬 장인이 낙죽을 전승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다. 낙죽은 대나무의 표면을 인두로 지져 무늬나 글씨를 새기는 장식기법이다. 

“낙죽의 매력은 대나무를 소재로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평면이 아니라 입체를 띠고 있어요. 보존도 좋습니다. 화려함 속에는 뜬 맛이 있거든요. 낙죽은 수묵에 가까우면서도 약간의 색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떻게 작품화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김기찬 장인은 2000년 7월22일 낙죽장 기능보유자로 문화재청으로부터 인정받았다. 1대 이동연 선생과 2대 국양문 선생의 뒤를 이은 3대 낙죽장이다.

낙죽은 가죽나무, 박달나무, 도자기, 가구 등과 어우러져 작품이 된다. 김기찬 장인은 올해 역대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선물과 낙죽작품을 연계한 전시회 ‘푸른 기와집에서 내려온 봉황들의 합창’을 기획하고 있다. 
낙죽은 가죽나무, 박달나무, 도자기, 가구 등과 어우러져 작품이 된다. 김기찬 장인은 올해 역대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선물과 낙죽작품을 연계한 전시회 ‘푸른 기와집에서 내려온 봉황들의 합창’을 기획하고 있다. 

한문·서예·그림 공부하다 낙죽과 인연
장인은 지난 1983년 전남 담양에서 이동연 선생으로부터 낙죽을 배우기 시작했다. 

“경기도 광주가 고향인데 전남 순천 송광사 사하촌에 그림공부를 하려고 내려왔다가 결혼도 하고 정착했지요. 한문과 서예, 그림 등을 공부하던 중 낙죽을 전수받았고, 공예를 병행하며 29년 동안 송광사 경내에 ‘금죽헌’ 공예미술관에서 작품활동에 매진했습니다.”

하지만, 장인은 2007년 화재로 일순간 29년간의 작품을 모두 잃었다. 2008년부터 전남 보성군 서재필기념공원의 ‘계심헌’ 공예미술관에서 낙죽에 전념했다.

“금죽헌 시절은 청년기라고 할 수 있지요. 장년기는 계심헌에서 보낸 셈이지요. 계심헌에서 13년 동안 10회의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지금까지 1편의 논문과 단행본 ‘낙죽장’을 저술했지요. 또 두 권의 시집과 17권의 작품집을 발간했습니다.”

낙죽차통
낙죽차통

장인은 하동 삼씨방에 대해 ‘죽을 자리’란다. 한바탕 웃음을 보인 뒤, “열매를 맺는 단계”라고 언급했다. 

“평균 19시간 활동하고 5시간 꿈 없는 숙면으로 피로감 없이 작품활동에 임하고 있습니다. 하동에서 벌써 5번의 전시회를 열었지요.”

장인은 그동안 갈고닦은 일명 ‘기찬글씨’로 삼화실 삼씨방 정원에 나무를 기증한 이들의 이름을 손수 명석에 새긴다. 하동군이 15억여원을 들여 2022년 11월 삼씨방을 건립하고, 이름 붙인 ‘명품정원’에 걸맞게 정원을 조성하는 일에도 직접 나선다. 

지난해 11월15일에는 서예 퍼포먼스, 시낭송, 가야금 병창, 판소리 등의 식전 공연과 장인의 작품설명에 이은 낙죽 시연 등 볼거리를 제공했다. 

장인은 1994년부터 태국 왕비 탄신기념 아·태지역 대나무공예작품 초청전, 미국 15개 도시 순회전, 독일 하노버박람회 참가 등 각국의 작품전시와 함께 다양한 시연회를 통해 낙죽의 멋을 세계에 알리는 데 힘써왔다.

하동녹차와 어우러진 차통·차칙·다관… 
전통기술의 체계적인 전승을 위한 후학양성에 매진한 결과, 현재 1명의 이수자와 4명의 전수자를 배출했다. 이수자는 장인의 막내아들 승혁씨다. 

“제자들이 몰두를 하지 않아요. 태어나 보니까 이미 의식주가 다 돼 있으니, 간절한 게 없는 것이지요. 취미생활로 하고 있으니 큰 발전이 없어요. 우리는 이것이 직업이 되느냐 마느냐 그야말로 가장 노릇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이런 절박함으로 공부를 했단 말이지요.”

장인은 하동에서도 ‘기찬삼씨전(글씨·솜씨·맘씨)’을 주제로 전시회를 연다. 시작은 2015년이다. 계심헌 시절에는 ‘새 옷 입고 부르는 노래’라는 부제로 전시회를 열었다. 

장인의 작품은 얼레빗, 부채, 가구 등에 응용된다. 하동의 특산품인 하동녹차와 어우러진 차통, 차칙, 다관, 수구 등도 계속해서 선보인다. 

다관, 차통, 차칙 등 '2023하동세계차엑스포'에 전시된 김기찬 장인의 낙죽작품들  
다관, 차통, 차칙 등 '2023하동세계차엑스포'에 전시된 김기찬 장인의 낙죽작품들  

“하동은 차와 대나무의 고장이지요. 지난해 ‘세계차엑스포’가 성황리에 열렸습니다. 하동군민과 하동을 찾는 관광객에게 우리 문화를 향유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품격 있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야지요.”

낙죽은 매우 드문 기술이었으나 조선 순조(재위 1800∼1834) 때 박창규에 의해 일제강점기까지 전승됐다. 주로 화살대·침통·칼자루·병풍·담뱃대·부채·대나무필통 등에 쓰였다. 낙죽은 접는 부채의 맨 처음과 마지막에 쓰이는 두꺼운 대나무(합죽선)살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낙죽은 온도를 맞춰 그려야 하고 인두가 식기 전에 하나의 무늬나 글씨를 마무리지어야 하기 때문에 작업 경험과 속력을 필요로 한다. 장인의 시집 ‘반야배에 돛을 올리고-서 말의 구슬을 꾀다’에 실린 시 ‘작업’이 낙죽장의 이 같은 노고를 일깨운다. 

‘여름에는 인두가 식을세라 선풍기도 못 틀고 겨울에는 나뭇가루 많이 날려 큰 선풍기를 틀어놓고 일을 하니 이 일을 어찌합니까!(중략) 감사합니다.’

김기찬 장인은 “만년기에 들어 궁금함이 없어진 자리에 행복과 감사함만 남았다”면서 “마음먹은 것이 현실에서 이뤄지는 이상향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전했다.

김기찬 장인이 손수 새긴 명석. 명석의 주인들이 기증한 나무들이 삼화실 삼씨방 정원을 빙 둘러선 채 자라고 있다.
김기찬 장인이 손수 새긴 명석. 명석의 주인들이 기증한 나무들이 삼화실 삼씨방 정원을 빙 둘러선 채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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