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활 접고 서른 넘어 
홀로 경남 하동에 내려가 
찻잎·쑥잎 따는 품팔이로
“먹고 살 수 있겠다”… 
귀농·귀촌 시행착오 끝에 
​​​​​​​2020년 다시 괴산에 정착

■ 만나봅시다- 엄유주 작가의 시골살이, 글감이 되다

엄유주 작가는 서른 넘어 모든 것을 멈추고 시골로 들어갔다. 목수인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고, 품팔이하고, 글을 쓰고…, 어느덧 작가는 쉰으로 들어서는 문턱에 서 있다. 

면적으로 보면 서울보다도 큰 충북 괴산이지만, 인구는 3만7천여명으로 서울의 한 개 동보다도 적다. 엄유주 작가의 삶터는 청천면 솔멩이골이다. 작가에게 괴산은 귀농·귀촌 시행착오 끝에 다시 찾은 곳이다. 

작가는 이제 필명이 아닌 ‘엄유주’ 이름으로 책을 펴낸다. 또 출판사 ‘열매문고’의 대표로서 자신의 책을 직접 출간한다. 더불어 괴산책문화네트워크 모임을 통해 괴산의 재미있는 변화를 이끈다. “책은 ‘영혼의 먹거리’입니다. 괴산 한살림 매장과 로컬푸드 매장에서 괴산책문화네트워크 책들을 만나보세요.” 

‘글쓰기는 삶이라는 모험에 스스로 지도를 만들어 가는 일’이라 믿는 엄유주 작가를 만났다. 

엄유주 작가는 시골살이에 대해 ‘인간관계 문법’을 새로 익히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귀농·귀촌한 사람들끼리 모여 살든, 원주민 속에 어울리든 기존 방식을 고집하지 말고, 새롭게 보고 느끼기를 조언한다.
엄유주 작가는 시골살이에 대해 ‘인간관계 문법’을 새로 익히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귀농·귀촌한 사람들끼리 모여 살든, 원주민 속에 어울리든 기존 방식을 고집하지 말고, 새롭게 보고 느끼기를 조언한다.

인터뷰집 ‘괴산으로 귀농했습니다’ 펴내
“잡지사 기자로 일하면서도 시골생활에 대한 향수에 잠기곤 했지요. 초등학생 때부터 서울에서 살았지만 고향은 강원도거든요. 서울생활을 다 정리하고 2010년 홀로 경남 하동으로 내려갔습니다.” 

찻잎, 쑥잎 등을 따는 품팔이를 하면서, 글쓰기 일이 들어오면 프리랜서로 일했다. 몇 달 동안은 ‘이대로 먹고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오래지 않아 괴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그 집에 살던 목수,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미혼 여성이 딱히 하는 일도 없이 시골에 혼자 내려와 있으니 주변에서 관심들이 많았어요. 집도 알아봐 주시고, 사람도 소개해 주시고….”

한옥 목수인 남편은 일을 따라 타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임신과 출산, 육아는 작가의 삶을 변화시켰다. 프리랜서 작가는 어쩔 수 없이 갓난아이와 함께 취재에 나섰다. 

“노산이라 몸도 회복되지 않았지만, 아이를 맡길 데가 없었어요. 인터뷰를 하다 말고, 뒤돌아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곤 했습니다.”

인터뷰집 ‘괴산으로 귀농했습니다’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이 삶이 내가 원하던 삶이었나’ 회의가 생길 때였다. 세를 들어 살던 집 마당에서 자라던 ‘미선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미선나무는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전 세계에 1속 1종뿐이다. 

“마을에 미선나무 군락지가 있었는데, 그때 미선나무에 대해 알게 됐지요. 향기가 너무 좋고, 생김도 특이하다라고만 여겼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스토리텔링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작가는 동화책 ‘미선나무 이야기’를 냈다. 

귀농·귀촌한 이들을 인터뷰하면서 작가는 ‘집’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러나 인구가 줄어 집을 짓지 않는 괴산에서 좋은 집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헌 집을 고쳐 살더라도 추울 수밖에 없다.

집을 목표로 하다 보니 남편의 지인을 통해 전북 무주로 이사를 가게 됐다. 무주 무풍면에 집을 마련해 과수원에서 일을 하고, 계속 글을 썼다. 

옥수수 농사와 글짓기의 공통점은…
산속 평야지대, 유실수가 잘되는 무풍면은 다문화가정이 많은 곳이다. 아이를 통해 필리핀 엄마, 일본 엄마 등을 알게 됐고, 그들과 교류하면서 작가는 또 다른 세상과 만났다. 요리책 ‘맛있다, 다문화집밥’의 탄생 배경이다. 

무점포 가게 ‘무풍상회’를 열어 여름에는 직접 재배한 유기농 옥수수를, 가을에는 고랭지 사과와 오미자를, 겨울에는 앞집 할머니의 청국장 등을 소개했다. ‘무풍상회’는 책으로도 나왔다. 

“글을 쓰는 건 ‘몸을 갈아서’ 하는 일이지요. 하하하.”

두 번의 유산과 고된 시골살이…. 작가는 친정으로 들어갔다. 아이가 막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다. 2년간의 도시생활, 시골생활에 대한 향수는 대물림하는 것이었나 보다. 

“남편도 아이도 도시에서 못살겠다, 내려가자고 하더라고요. 입학식 날 아이가 하굣길에 길을 잃어 지나가던 분이 전화를 주신 적이 있어요. 그 일 이후 아이가 일주일을 꼬박 앓았어요.”

엄유주 작가(사진 맨 왼쪽)는 지난 설 명절을 앞두고 천정한 정한책방 대표, 박희영 ‘문화잇다’ 대표(가운데)와 함께 괴산 한살림 매장 책방 앞에서 ‘설맞이 책 선물세트’ 홍보 공연을 펼쳤다.
엄유주 작가(사진 맨 왼쪽)는 지난 설 명절을 앞두고 천정한 정한책방 대표, 박희영 ‘문화잇다’ 대표(가운데)와 함께 괴산 한살림 매장 책방 앞에서 ‘설맞이 책 선물세트’ 홍보 공연을 펼쳤다.

2020년 다시 괴산을 찾았다. 막 코로나가 창궐했다. 일단 온라인에 글쓰기 수업을 열었다. 옥수수 농사 경험이 도움이 됐다. 농사짓기와 글짓기의 공통점을 찾아 ‘옥수수 밭에서 나온 글짓기’ 강의를 하고, 책으로도 엮었다. 코로나가 끝나면서 작가는 마을에서, 도서관에서 옥수수 책 관련 수업을 한다. 

“부부가 글쓰기를 하면 남편에 대해 쓰는 아내들이 많아요. 따로 정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여자들만의, 아내들만의 글쓰기 ‘부인회’ 수업을 진행했는데요, 그 수업을 바탕으로 한 ‘모란의 수고’ 책이 지난해 나왔습니다.”

‘모란의 수고’는 이제껏 사용하던 ‘이후’라는 필명을 접고, 처음으로 ‘엄유주’ 실명으로 낸 책이다. 

괴산책문화네트워크는 괴산에서 문화콘텐츠 사업을 하는 숲속작은책방, 문화잇다, 열매문고, 쿠쿠루쿠쿠, 자루북스, 정한책방 대표들이 만든 모임이다. 2022년 국내 첫 농촌마을 잡지인 ‘툭’을 창간하고, 잡지사에 근무했던 엄유주 작가가 편집장을 맡아 지난해 두 번째 잡지를 펴냈다.

“‘지방소멸’을 실감합니다. 빈집은 늘고, 학생은 줄고, 마을엔 할머니들, 할아버지들뿐이지요. 향수도 나고 자란 데서 느끼는 것인데, 농촌지역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이 성인이 돼서 도시를 벗어날 수 있을까요. ‘괴산 북페어’ 등 우리들의 작은 노력으로 괴산이 재밌는 곳으로 변화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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