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여농이 뛴다 - 전북 남원 김민지 ‘포도청’ 대표

전북 남원 김민지 포도청 대표는 3년 전 귀농해 한국의 전통미를 살린 한국인에게 적합한 맛과 향의 와인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전북 남원 김민지 포도청 대표는 3년 전 귀농해 한국의 전통미를 살린 한국인에게 적합한 맛과 향의 와인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알싸한 단맛이 입안을 머금다 안개처럼 사라진다”

저알코올 아이스와인을 마셔 본 소비자들의 평이다. 지난해 ‘전라북도 청년농업인 농산업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김민지(34) ‘포도청’ 대표는 샤인머스캣을 이용한 기능성 저알코올 양조방법 아이디어로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그는 전북 익산에서 부모님과 지내다 우연히 남원으로 여행 온 것이 제2의 삶의 터전이 됐다. 포도를 직접 재배해 와인을 만들겠다는 신념 하나로 포도농사를 시작한 지 어느덧 3년째. 사실 처음부터 귀농을 결심하고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다. 농업보다는 ‘김민지’라는 이름을 걸고 와인을 개발해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저알코올 아이스와인 공법 특허

지리산 자락서 청수·머루포도 재배

LED설비 갖춰 고당도 포도 생산

스토리텔링 입혀 한국와인 재해석

‘나만의 와인 만들다’…신념 강한 청여농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포도농사를 짓겠다고 하니 처음에는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어요. 어찌 보면 당연한 거죠.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와인을 만들겠다고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고 남원으로 귀농한 줄 아는데 나에게도 나름 계획이 있었습니다. 하하하”

대학 시절 식품공학을 전공한 김 대표는 한국농업기술진흥원 연구원으로 4년간 농촌진흥청 연구과제를 분석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그 당시 많은 농업인을 상대했고 자연스레 농산업 분야에 호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실현되는 과정을 지켜본 그는 초기 자금 5천만원을 들고 과감히 귀농을 선택한 것. 그러나 연고도 없는 남원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포도농사는 너무 막연한 일이었다.

먼저 포도에 대한 이해와 농법을 익혀야겠단 생각에 김제 로컬랜드 이대훈 포도명인을 찾아가 2년간 이론과 실습을 병행했다.

“포도나무도 자식과 같다는 거예요. 한 뱃속에서 태어난 자식들이 다 다르듯이 묘목도 달라서 개체별로 관리해줘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빨리 키워 수익을 내기보다는 천천히 단단하게 키워 건강한 묘목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어요. 초기 1~2년을 어떻게 키우는지가 앞으로 50년 후를 내다볼 수 있다네요.”

김 대표는 지리산 해발 500m, 2975㎡(900평) 규모의 경사진 땅에 청수와 머루포도 등 300여 포도 묘목을 심었다. 주기별로 퇴비와 일조량을 조절하면서 고품질의 포도를 생산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주력했다. 포도 당도를 높이기 위해 흐린 날에도 광합성을 할 수 있도록 2천만원을 들여 LED 설비를 갖췄다. 청수 포도는 한국에서 재배되는 포도 품종 중 하나로, 녹색 빛깔과 상큼하고 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못난이 포도를 수매해 지역농가와 상생
“한국인에게 맞는 와인 개발에 관심이 많았어요. 전에 하던 일이 성분 분석 쪽이다 보니 231㎡(70평) 남짓 이 공간을 연구파트와 양조파트로 나눠 필요한 설비들을 들였죠. 새 장비들은 워낙 고가라서 조금 저렴한 중고 분석 장비로 시작했는데 성능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요.”

김 대표는 학창시절 와인과 관련된 연구 프로젝트를 꾸준히 해왔던 경험으로 저알코올 아이스와인 공법을 연구하고 특허를 출원하는 일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보통 식품은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주류는 국세청에서 주류제조업면허를 추가로 받아야 한다. 주류의 제조방법, 알코올 도수와 원료사용량에 대해서는 국세청이 전담하고, 주류위생과 함유물질의 유해 여부 등 안전관리업무는 식약처가 전담하는 체계다.

와인 소믈리에 자격을 갖춘 김 대표는 국내산 포도 품종으로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향과 맛을 더하는 양조방법을 터득해 저알코올 아이스와인을 처음 출시했다.

“저알코올 아이스와인은 포도 안에 있는 수분을 얼려 착즙해서 당분만 남아있죠. 보통 와인의 도수는 12~13%인데 아이스와인은 7%에 맞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했죠. 부족한 양은 지역 농가에서 상품성이 떨어지는 못난이 샤인머스캣을 1.2톤 정도 수매하고 있습니다.”

설탕을 첨가하지 않고 포도 자체 당분으로만 제조한 아이스와인은 독자적인 방법으로 후발효(병입 발효) 억제를 위해 사용되는 첨가제를 넣지 않아 맛과 향을 지켜냈다. 저알코올 아이스와인 한 병 가격은 3만9천원. 올해는 500병만 출시해 로컬매장에 선보일 예정이며, 추후 스마트스토어 온라인 매장을 통해 판로를 확장할 계획이다.

저알코올 와인 ‘변샤또’는 포도청이 특허출원한 아이스와인 공법으로 탄생했다.

한국 정서에 맞는 레시피 개발
“여성 혼자 농사를 짓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학교동기들과 품앗이를 해봤는데 일이 훨씬 수월하고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서로 농작업도 이해하고 일손이 필요할 때 언제든 손쉽게 인력을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죠.”

그래서 김 대표는 농촌 인력 공유 플랫폼도 개발했다. 선조들의 미풍양속을 따서 지은 이름인 ‘품앗이’로 지난해 농촌진흥청이 주관한 아이디어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남원하면 뭐가 생각나세요? 춘향이와 이몽룡의 사랑이야기로 유명하죠. 그러면 또 변사또가 생각나고, 변사또하면 포도청이 그려지는... 한국의 와인으로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는 서양의 와인 이미지가 아니라 한국의 전통미를 결합해 한국의 와인을 재해석했다. 올해 로제 와인과 캠벨 와인, 샤인머스캣을 활용한 드라이와인 등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레시피 개발에도 한창이다. 저알코올 아이스와인을 출시하기까지 꼬박 1년 걸렸다. 와인 한 병에 포도 2송이가 필요한 것을 감안하면 그동안 연구용으로 쓰인 포도의 양 만해도 어마어마하다.

“나만의 특별함을 넣고 싶어서 연구·개발에 노력하고 있지만, 저알코올로 하려면 미생물을 제어하기가 더 어려워요. 시시각각 변하는 미생물의 상태를 관찰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거든요. 미생물의 먹이인 효모를 넣는 양과 시간이 중요하기 때문에 밤낮이 따로 없습니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