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광역시 무등산평촌반디마을 공동체

마을에 들어서자 담장에 그려진 화사한 해바라기와 반딧불이 모형들이 눈길을 끈다. 어르신들의 취미생활인 화투패 그림은 정겹고 친근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무등산평촌반디마을은 무등산 북쪽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동림, 담안, 우성, 닭뫼 4개의 자연마을로 형성된 아담하고 한적한 농촌마을이다. 설을 앞두고 마을주민들이 한데 모여 달콤한 조청 향을 풍기며 쌀강정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광주광역시 북구 무등산평촌반디마을 공동체에서는 설 명절을 앞두고 주민들이 쌀강정과 부각을 만들어 새해 덕담을 나누며 한 해의 건강을 기원했다.
광주광역시 북구 무등산평촌반디마을 공동체에서는 설 명절을 앞두고 주민들이 쌀강정과 부각을 만들어 새해 덕담을 나누며 한 해의 건강을 기원했다.

 

닭요리로 손님대접하고 차례지내

시끌벅적한 설 명절 가끔 그립기도

핵가족화로 명절 풍속도 간소화돼

쌀강정·부각 만들며 공동체 활성화

 

부엌서 온종일 음식하며 손님 맞는 며느리들
“명절이 예전처럼 북적대거나 시끌벅적하지 않아. 밥 먹고 돌아서면 각자 휴대폰 삼매경에 빠져 온 가족이 다 모여도 썰렁하고 외롭다니까. 몸은 힘들어도 옛 명절이 그리울 때가 있어.”

명절 연휴 내내 세배하러 오는 친지들을 위해 수차례 손님상을 봐왔다는 70대 A어르신. 음식도 한두 가지만 만드는 게 아니었다. 쑥떡, 콩떡, 인절미, 가래떡 등은 기본이고 어·육전, 꼬치전 등 대여섯 가지 이상의 전을 아궁이 불에 정성껏 부쳐 손님상에 내놨다.

“직접 찹쌀을 절구에 찧어 쑥떡을 만들고 가래떡도 집에서 만들었어. 일일이 참기름을 손에 묻혀 가며 길게 늘여서 살짝 굳을 때쯤 얇게 썰어 떡국을 끓였지. 그땐 부엌일은 죄다 며느리들이 도맡아 했는데, 떡메를 칠 때는 힘을 써야 하니 남편들이 거들었지. 손님상 차리다 하루가 다 갔어. 바닥에 궁둥이 붙일 새도 없이 일했다니까.”

광주에선 닭을 활용한 음식을 손님상에 올리거나 차례를 지내는 게 명절 풍속이다. 새해 아침 닭을 삶아서 찢고 닭 육수에 다진 마늘을 넣어 조선간장으로 끓여 낸다.

“옛날에 명절 앞두고 앞뜰에 뛰어 놀던 닭 많이 잡아봤지. 지금까지 잡은 닭만 해도 수백 마리가 될거야. 닭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째로 핏기만 없을 정도로 살짝 익혀 차례상에 올려야 하니 안 할 수가 없었지. 그땐 조상님을 섬기는 일이 우선이었거든. 근데 지금은 차례상에 치킨으로 대신 올리는 곳도 있어. 하하하.”요즘 농촌의 명절은 많이 간소화됐다. 격식을 차려야 하는 차례 음식의 종류는 줄어든 반면, 그 외 음식의 가짓수는 다양해졌다.

“옛날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명절만 기다렸지. 허나 지금은 명절음식을 평소에도 먹을 수 있는 일반식이 됐으니 크게 명절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어. 그게 많이 아쉬워.”

 전통방식으로 정성껏 만든 쌀강정은 명절 차례상과 손님상에 내놓는다.
 전통방식으로 정성껏 만든 쌀강정은 명절 차례상과 손님상에 내놓는다.

달라진 명절 풍속에 격식도 간소화
9남매인 남편을 만나 20여년 전 평촌마을로 시집온 60대 B씨. 명절에 모두 모이면 30명이 훌쩍 넘는단다. 식사 때마다 밥상 4개를 펼치고 아침 한 끼만 먹더라도 오전 시간이 다 흐른다고.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조촐하게 직계가족들만 모이니 명절 분위기를 내기 어렵다고 했다.

“자식들도 미리 다녀갔어요. 이번 설 연휴에 해외로 여행을 간다더라고요. 조카들도 다 커서 가정 꾸리느라 오기 어렵다 하고, 이러다 남편과 둘이 명절 쇠는 거 아닌가 몰라요. 하늘에 비행기 지나가면 ‘나도 명절에 여행 갈 수 있을까’라는 기대도 해봅니다.”

그러나 잠시 가져본 희망일 뿐. 명절에 갈 곳 잃은 자식들을 생각하니 여행 갈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한단다.

“명절 한 달 전부터 음식 준비를 했어요. 콩나물도 길러내고, 술도 빚고, 쑥도 삶고, 엿기름으로 조청도 직접 달여 쌀강정도 만들고 며느리들이 할 게 많았죠. 근데 지금은 명절음식 해놔도 먹는 사람이 많지 않고, 먹고 싶은 음식은 얼마든지 배달로도 가능해 예전처럼 음식을 많이 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명절 때마다 마을 주민 모여 덕담·강정 나눠
평촌마을은 2005년 광주광역시가 지정한 1호 장수마을이다. 50여 가구가 모여 12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이 마을은 70% 이상 여성이다. 이때부터 마을공동체를 형성해 콩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두부와 메주를 만들어 순창 지역에 판매해 마을 기금을 마련했고 수익금도 나눠 농가의 소득 창출에도 기여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명절 땐 이렇게 마을주민들이 모여 함께 덕담도 하고, 쌀과자도 만들어 나눠 먹기도 하고, 마을 장터에 팔아 용돈도 벌어요. 여기서 명절 분위기를 낸다니까요.”

현재 전통방식으로 만든 쌀강정은 부각, 손두부 등과 함께 마을공동판매장 ‘반디마켓’을 통해 판매되기도 한다. 이렇게 주민들이 한데 모일 수 있었던 것은 마을에 주민공동시설이 있었기 때문. 2019년 광주광역시농업기술센터로부터 보조금 지원을 받아 233㎡(70평) 규모의 폐축사를 리모델링 한 이곳에서 다양한 마을공동체 활동이 추진되고 있다.

“이 마을에 반딧불이가 살고 있어요. 가을밤에 나와보면 가끔 창문에 붙어 있기도 해요. 반딧불이 유충은 1급수에 사는 다슬기를 먹고 사는데 그만큼 이곳이 청정지역이라는 거죠.”

평촌마을은 2016년 국가지정 생태마을로, 2018년에는 농촌체험휴양마을로 지정돼 반딧불이와 다슬기가 서식하는 청정지역임을 자랑한다.

마을 들녘에는 평무뜰이 있어 친환경 우렁이쌀을 재배하고 있으며, 매년 10월에는 반딧축제를 열어 지역의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 또 조선시대에는 분청사기를 만들었던 지역으로 남도의 예술적 혼을 지닌 이 마을에 평촌 도예공방이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마을주민들이 모여 덕담도 하고, 쌀과자도 만들어 나눠 먹으며 설 명절을 맞는다.
마을주민들이 모여 덕담도 하고, 쌀과자도 만들어 나눠 먹으며 설 명절을 맞는다.

설은 시간적으로는 한 해가 시작되는 새해 새 달의 첫날이다. 한 해의 최초 명절이라는 의미도 있고 대보름까지 이어지는 민족 최대의 명절이었다. 세시풍속이 풍성했던 옛 설이 오늘날 조상을 섬기는 차례만이 유일한 명절 의례로 남아 아쉽기만 하다.

광주광역시 북구 무등산평촌반디마을 공동체는 설 명절을 앞두고 주민들이 쌀강정과 부각을 만들며 새해 덕담을 나누고 한 해의 건강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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