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 충남연구원 연구위원, 베이징대학 방문학자

우리나라 농민단체의 

오랜 경험과 활동은 

중국에도 많은 시사점을 

제시해 준다. 

농민의 마음은 농민이 

더 잘 알 것이다. 

2018년 유엔이 

농민권리선언을 선포했다. 

국제연대를 통한 

농민의 권리 신장은 

이제 농민의 몫이 됐다.

박경철 충남연구원 연구위원, 베이징대학 방문학자

오랫동안 중국농촌을 연구하면서 가져왔던 의문 중에 하나는 중국에는 농민조직이나 단체가 없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다. 중국은 농민의 힘으로 세워진 국가다. 마오쩌둥은 공산혁명이 도시에 있지 않고 대다수의 인구가 거주하는 농촌에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농촌에서부터 혁명을 시작했다. 

그는 고향인 호남지역에 들어가 농민의 실상을 조사하고 농민들의 권리와 역량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이에 동조하는 많은 농민들이 그를 따랐다. 서구열강, 일제, 그리고 국민당이 무서운 기세로 공산당을 압박해 들어올 때 마오쩌둥의 공산당을 도운 사람들은 농민이었다. 

하지만 신중국 성립 이후 마오쩌둥은 낙후된 중국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공업화·도시화 우선 정책을 실시하며 농민과 농촌을 배신했다. 농민들은 다시 ‘식민’과 다름없는 신분이 됐고 농촌은 식민지나 다름없이 수탈됐다. 

식민지 개척으로 잉여자본을 쌓아 산업화를 이룬 대다수 서구와는 달리 중국은 식민지가 없었기 때문에 농민과 농촌을 ‘내부 식민화’해 농촌으로부터 자본을 수탈해 도시와 공업을 육성했다. 

농민은 집단생활을 강요당해야만 했고,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은 정부의 강압에 의해 싸게 수탈됐고, 농민의 거주 이전의 자유는 철저히 배제됐다. 농민은 설사 도시로 이주하더라도 도시의 시민권을 가질 수 없었다. 이것이 이른바 중국의 ‘삼농문제’다.

삼농문제가 중국 정부의 중요정책으로 받아들여진 때는 2000년대 초, 즉 후진타오 정부에서부터다. 중국이 삼농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코 중국이라는 국가가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삼농문제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다. 이른바 삼농에 관한 <중앙1호문건>이 그것이다. 

삼농을 핵심 주제로 한 <중앙1호문건>은 2004년부터 2023년까지, 무려 20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지도자는 바뀌어도 삼농을 중요시하는 정책은 바뀌지 않았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가 20년 동안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농문제를 중시하더라도 중국 농촌이 여전히 어려운 핵심 이유는 농민 스스로의 권리와 역량을 향상시켜줄 자체 조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 농민은 그들을 대변할 조직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땅을 뺏기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디 하소연할 곳이 없다. 정부는 농민들의 분노를 감시와 처벌을 통해 억압하려고만 하지 그들을 잘 대변하려 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다. 농민의 조력으로 세워진 중국이 농민의 조직된 힘을 가장 경계하니 말이다. 

다행히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저명한 삼농문제 전문가인 원톄쥔 교수그룹이 이끄는 중국CSA연맹이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생태유기농민들의 권리와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동체지원농업’으로 번역되고 있는 CSA가 중국에서는 ‘사회생태농업’으로 번역돼 도농상생, 사람과 자연의 공생을 지향하는 농업을 펼치고 있다. 

얼마 전 한국의 한 여성농민단체가 북경에 와 중국CSA연맹의 본부가 소재한 유기농장에서 교류회를 가졌다. 우리나라 농민회, 여성농민회, 생활개선회 등 농민단체의 오랜 경험과 활동은 중국에도 많은 시사점을 제시해 준다. 중국농업이 우리에게도 중요한 만큼 우리도 그들에게 배울 점이 많다. 농민의 마음은 농민이 더 잘 알 것이다. 2018년 유엔이 농민권리선언을 선포했다. 국제연대를 통한 농민의 권리 신장은 이제 농민의 몫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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