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과 학생들끼리 존댓말
언어의 질서 속에서 벗어나
3학기째 이름 호칭·평어로 수업
학생들은 “응” “어” “왜 불러”
첫 만남 나이·직위 따른 존대법
다른 어떤 것으로 관계 시작
​​​​​​​“새로운 관계…소통도 잘돼” 

■ 만나봅시다- 반말 수업’ 김진해 경희대학교 교수

“진해 생각은 어때?”수업 중 학생들이 교수 이름을 부르며 반말하는 대학 강의실이 있다. 물론, 한국에 있는 대학교다. 김진해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이른바 ‘반말 수업’을 3학기째 진행하고 있다. 강의 시작 전 김 교수가 출석을 부를 때부터 학생들은 반말로 대답한다. 그리고 반말은 수업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국문학을 전공한 김 교수는 학생들에게 글쓰기와 언어를 가르치면서 언어의 질서와 관계, 그리고 소통에 대해 고민해 왔다고. 
“대학 강의실은 어떤 다른 사회적 공간보다 상대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안전한 공간이잖아요. 그러니까 뭐든 한번 해볼 수 있지요.”

12월의 문턱, 서울 동대문 경희대학교에서 김진해 교수를 만났다. 

김진해 교수는 언어의 질서, 사회적 질서를 조금 벗어나 보는 경험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반말 수업’을 경험한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새로운, 조금은 엉뚱한 아이디어, 엉뚱한 행동으로 겁내지 않고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진해 교수는 언어의 질서, 사회적 질서를 조금 벗어나 보는 경험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반말 수업’을 경험한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새로운, 조금은 엉뚱한 아이디어, 엉뚱한 행동으로 겁내지 않고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출석 호명에 반말로 대답하기 놀이로 시작
김 교수는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글쓰기’와 ‘의미의 탄생’이라는 과목을 가르친다. 후마니타스칼리지는 교양교육을 전담하는 기구, 교양대학이다. 전공의 하위 개념이지만, 교양교육의 기능이나 의미, 역할 등 고유한 영역을 찾으려는 노력의 결과물로 한국에서 경희대가 처음으로 시도했다. 

“지금처럼 직업이 바뀌기도 하고, 앞으로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 줄 모르는데 전공만 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가치 탐색 등 좀 더 근원적인 고민들을 하게 하자 해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교양교육을 체계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의 ‘글쓰기’ 수업에는 20명, ‘의미의 탄생 : 언어’에는 75명의 학생들이 함께한다. 학부부터 경희대에서 쭉 공부한 김 교수도 어느덧 50대 중반, 이제 그의 수업을 듣는 학부생들이 자식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들이 예의가 점점 더 발라지더라고요. 그런데, 그 예의 바름이라는 게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지 않고, 스스로 안전해지려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같은 과 학생들끼리도 존댓말을 쓰는 건 좀… 코로나를 지나면서 두드러졌지요.” 

김진해 교수는 ‘언어의 질서’라고 했다. 우리가 그 질서 속에서 사는데, 그 질서는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의식하지 않으면 그냥 그 말의 질서 속에서 계속 살 수밖에 없다고. 코로나 전에는 출석을 부를 때 반말로 대답하기 놀이를 했다. 김 교수가 이름을 부르면 학생들은 “응” “어” “왜” “왜 불러” 등으로 답했다. 

사회적 질서·약속 쉽게 허물어질 수 있어
“질서, 그 약속이라고 하는 것들이 쉽게 허물어질 수도 있는 것이라고 경험시켜주고자 했지요. 그때는 반말 놀이를 하고 곧바로 존댓말로 강의를 시작했는데,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정말 놀이처럼 받아들였습니다.”

본격적인 ‘반말 수업’은 지난해 9월부터. 1년 반이 지났다. ‘반말 수업’의 원조는 따로 있다. 이름 호칭과 변형 반말을 ‘평어’라고 이름 붙인 이성민 작가다. 서울 을지로 디자인대학(디학)이라는 곳에서 몇 년째 학생들과 사용하고 있다. 

“디학은 소규모 대안학교 같은 곳입니다. 학생 수도 많고, 전 학과 학생들이 참여하는데 가능할까 걱정도 했지요.”

김 교수의 ‘반말 수업’은 반말 놀이 때와 달랐다. 학생들의 반응과 태도가 조금씩 능동적으로 변화해 갔다. 김 교수는 말을 매개로 한 관계에 대해서 이전에는 지식으로 생각했다면, 몸으로 체험하면서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반성적 고찰’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어 존대법에 따라 처음 만나는 사람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그것을 가늠하기 위해 먼저 행색을 관찰하는 게 우리의 일상이라면, 김 교수의 강의실 안에서는 전혀 다른 관계가 시작된다. 

“학생들은 우리가 아는, 지금까지 경험했던 겉모습이나 학번, 서열, 또는 직위에 따른 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도 관계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갑니다. 설령 시작은 기존과 같더라도 ‘반말 수업’을 통해 다른 성격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새로운 관계에서, 또는 관계가 달라지면 소통도 잘될 수 있지요. 이는 나의 문제의식이기도 합니다.”

한국어의 존대법이 소통을 원활하지 못하게 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일부의 시각도 있다. 2002년 월드컵 대표팀 감독을 맡은 거스 히딩크가 선수들에게 상대방을 이름으로 부르고 반말을 사용하라고 지시했다는 건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김 교수 역시 존대법에 길들여진, 유학할 필요가 없는 국문학도였다. 

다른 영역서 다른 방식으로 발현되길…
“유학을 안 갔다 온 게 도리어 다행일 수 있지요. ‘외국에 살다 와서 그렇다’고 이 실험이 왜곡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하하하. 한국어도 하나의 언어입니다. 언어 전공자로서 영어든 뭐든 언어의 질서가 사회에서 어떤 힘으로 작동하는가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지요.”

김 교수는 지난 두 학기를 마치고 학생들에게 수업 소감문을 받았다. ‘자신의 언어 체계가 무너졌다’ ‘진해가 하는 강의 내용에 대해서 안 믿게 됐다’는 학생도 있었다. 

“배움은 이미 내 속에 있는 것을 계속 바꿔 나가는 겁니다. 언어 질서라는 것도 내 속에 들어와 있는 사회적 질서지요. 그런데, 내 속의 사회나 문화의 질서에 대해 ‘꼭 이렇게 해야 돼’라고 되묻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이름 호칭과 ‘반말 수업’이 학생들을 ‘격발’시키면서 김 교수도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경험을 한다. 

김진해 교수는 “교수의 말이 명령이 아니라 생각을 약간 촉진시켜주는 역할로 전환된 것 같다”면서 “한 학기 동안 ‘반말 수업’ 경험이 다른 영역에 갔을 때 다른 방식으로 발현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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