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더드 팝·컨트리 팝 음악
1950년대 대중화에 큰 기여
‘Changing Partners’ 등
‘올드 팝송’서 빠지지 않아
앨범 50장 발매, 1억장 판매 
그래미 어워드 ‘평생 공로상’

■박해문 음악감독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디바'

‘We were waltzing together to adreamy melody(우린 꿈결 같은 선율에 맞춰 왈츠를 추고 있었죠) When they calledout ‘Change partners’(‘파트너를 바꾸세요’ 하는 소리가 들려서) And you waltzedaway from me(당신은 왈츠를 추면서 내게서 멀어져갔어요)….’누구는 이 노래 ‘Changing Partners’를 그의 대표곡으로 꼽을 것이다.

‘How much is that doggie in thewindow?(창가에 있는 저 강아지 얼마예요?) The one with the waggly tail(꼬리를잘 흔드는 저 강아지요) How much is that doggie in the window?….’이 노래를 빠뜨리면 아쉬워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강아지의 효과음이 인상적인 ‘(How much is) That Doggie in thewindow?’는 노랫말과 상관없이 언제나 그옛날 추억을 소환한다.

패티 페이지는 컨트리 음악 스타일의 곡들을 팝에 접목시켜서 성공을 거둔 아티스트였다.
패티 페이지는 컨트리 음악 스타일의 곡들을 팝에 접목시켜서 성공을 거둔 아티스트였다.

서정적·이지적…우아한 분위기 연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팝송(Pop Song)’은 1950년대 미국의 ‘스탠더드 팝(Standard Pop)’이라는 장르로 시작됐다. 1950년대부터 쭉 컨트리 팝 음악의 선구자였으며, 이후 미국 음악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던 가수를 소개한다.

한국 최고의 디바 ‘패티김’이 이 가수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예명을 ‘패티’로 지었을 정도로 유명한 가수다. 귀에 익숙한 곡 ‘Changing Partners’ ‘Confess’ ‘So In Love’ ‘With My Eyes Open, I'm Dreaming’ 등을 부른 ‘패티 페이지(Patti Page)’다. 

이 노래들은 ‘올드 팝송’에서 빠지지 않는다. 감미로운 목소리와 서정적이고 이지적인 이미지는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패티 페이지는 그 목소리만 들어도 다 알 수 있는 아티스트가 아닌가 싶다.

패티 페이지의 본명은 ‘클라라 앤 파울러(Clara Ann Fowler)’이며, 1927년 미국 오클라호마주에서 태어났다. 1945년 라디오 방송국 KTUL의 15분짜리 프로그램에 가수로 초대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패티 페이지’라는 예명은 출연한 라디오 프로그램의 협찬사였던 페이지 밀크 컴퍼니(Page Milk Company)에서 따왔다고 한다. 

1948년 데뷔, 세 번째 싱글인 ‘Confess’를 발표하며 그해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12위를 차지하며 음반 활동을 시작했다. 1950년부터 발표한 앨범마다 히트를 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히트곡을 내놓았다. 

평생 동안 50장의 앨범을 녹음했으며, 생전 1억장 이상의 앨범을 판매했다. 그중 50만장 이상 팔린 골드레코드 19장, 100만장 이상 판매된 플래티넘 레코드는 14장이나 된다. 금세기 최고의 여가수라는 칭호가 과언이 아니다. 

특히 1952년 발매한 ‘테네시 왈츠(Tennessee Waltz)’는 당시 1천만장이나 팔리며 20세기 싱글 앨범 판매량으로는 가장 많이 팔린 기록을 세웠다. 미국 테네시주에서는 이 노래를 공식 주가로 쓰고 있다. 

오클라호마 음악 명예의 전당에 헌액
1960년 영화 ‘엘머 겐트리(Elmer Gantry)’에 캐스팅, 영화배우로 데뷔했으며 이후에도 몇 편의 영화에 더 출연했다. 

이전까지 스탠더드 팝과 컨트리 팝 음악을 지향했다면, 1970년대 들어 컨트리 팝 음악으로 음악적 방향을 바꾸면서 앨범으로도 성공을 이뤘다.

1997년 오클라호마 음악 명예의 전당(Oklahoma Music Hall Of Fame)에 헌액됐다.

1998년 뉴욕 카네기 홀 실황을 담은 라이브 앨범 ‘Live At Carnegie Hall- The 50th Anniversary Concert)’로 1999년 41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트래디셔널 팝 보컬 퍼포먼스(Best Traditional Pop Vocal Performance) 부문을 수상했다. 

2012년 12월, 패티 페이지는 2013년 2월에 열리는 제55회 그래미 어워드의 ‘평생 공로상’ 수상자로 결정됐으나, 2013년 1월1일 캘리포니아주 엔시니타스(Encinitas)의 한 요양원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패티 페이지는 1963년 서울 대한극장 첫 내한 공연을 시작으로 1979년과 1980년에 방한한 바 있다. 패티 페이지의 노래는 컨트리 팝 음악의 특성상 명료한 주요 멜로디가 반복되고, 빠르지 않으며, 3/4박자의 경쾌한 왈츠풍이라서 한 번 들어도 이해가 어렵지 않다. 또한 빠르지 않기에 영어 노랫말도 귀에 쏙 들어온다. 

전쟁 직후 고달픈 한국인에게 깊은 위로를 준 패티 페이지는 그가 발표한 곡이 아닌 당대 히트곡 중 테미 와이넷(Tammy Wynette)의 ‘Stand By Your Man’, 브로드웨이 뮤지컬 ‘The Fantasticks’의 ‘Try To Remember’, 자니 대럴(Johnny Darrell)이 처음 부른 ‘Green Green Grass Of Home’ 등을 자신의 음색으로 소화해 대중적 사랑을 받았다.

박해문 음악감독은 대중음악 작곡가, 프로듀서,Seagate_DJ로 활동 중이다. 한·중 합작 팩츄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 JTBC 드라마 ‘나의 나라’ 음악등을 만들었다.
박해문 음악감독은 대중음악 작곡가, 프로듀서,Seagate_DJ로 활동 중이다. 한·중 합작 팩츄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 JTBC 드라마 ‘나의 나라’ 음악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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