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308)

예전에 인터넷에서 한참 화제가 됐던 얘기다. 한 시골 할머니가 버스정류장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그런데 가고자 하는 아들네 아파트 이름이 영판 생각이 나질 않았다. 택시 기사가 “어딜 가시느냐?”고 거듭 묻자, 생각났다는 듯이 불쑥 대꾸했다.

“기사 양반, 나좀 ‘니미××아파트’로 데려가 주시오!‘

그런데, 이 택시 기사가 할머니의 그 쌍욕같은 아리송한 말- ‘니미××아파트’를 기가 막히게 알아듣고는, “예에~(호반)리젠시빌 아파트요...?!” 하고 할머니가 찾는 아파트에 탈 없이 모셔다 주었다는 얘기다.(이 아파트는, 20년 전인 2003년에 준공된 전남 나주시 대호동에 있는 ‘호반리젠시빌아파트’였다.)

# 올해 한 부동산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에서 이름이 제일 긴 아파트는, 전남 나주에 있는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빛가람대방엘리움로얄카운티’(1·2차)로, 모두 25자다.

그 다음은, ‘울산블루마시티서희스타힐스블루원’ 아파트로, 순이름만 19자다. 또한 경기도 화성의 ‘동탄시범다은마을월드메르디앙반도유보라’ 아파트 역시 19자다.

2019년 분양된 전국 아파트의 이름 평균 글자 수는 9.84자로 10자 미만이다. 이는 1990년대 평균 4.2자에서 2배 길어진 것이고, 지금은 20자가 넘는 아파트들도 여럿 등장했다.

서울에서 가장 긴 이름을 가진 아파트는, 서초구 개포동에 있는 ‘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아파트로, 모두 합쳐 12자다.

특히, 대형 건설사들의 아파트 브랜드는 모두 외래어 일색이다. -삼성(래미안), 현대(더 에이치, 힐 스테이트), 대림(e편한 세상, 아크로), GS건설(자이), 포스코건설(더샵), 대우(푸르지오 써밋), 롯데(롯데캐슬, 르엘), SK건설(SK뷰), 두산(위브, 더 제니스), 효성(해링턴 플레이스), 쌍용(더 플래티넘), 서희건설(스타힐스)...등이다.

또한, 주거단지 환경특성을 강조하고, 차별화·고급화를 위해 외래어 애칭(펫 네임;Pet Name)을 붙이기도 한다. 교육환경>에듀, 숲>포레스트, 공원>파크, 친환경>에코, 강변>리버, 호수 근처>레이크 시티 등이고, 흡사 ‘닭장’ 같은 아파트인데도 명칭은 ‘성(캐슬)’이고, ‘궁전(팰리스)’ 이다.

# 이처럼 아파트의 이름들에 하나같이 ‘이해불가’의 고상한 외래어를 가져다 붙이는 것은, 속된 말로 ‘장삿속’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가 촌스럽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이름부터 고급화·차별화를 시도함으로써, 그 자체가 ‘집값’을 크게 좌우한다는 것이다.

순우리말 브랜드를 가지고 있던 오래된 아파트들-사랑으로(부영), 하늘채(코오롱 건설), 어울림(금호산업)이 모두 애시앙, 더 프라우, 리첸시아 등의 외래어 상표를 함께 보유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이런 경향들 모두가 순우리말 브랜드를 천시하는 데서 비롯된 것들이어서 아파트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것이지만, 정부가 나서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것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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