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옥임 순천대학교 명예교수/사회학

자신의 존재가치를 깨닫고 

먼저 가족에게 목소리를 내 

설득하고 변화시켜 

삶의 주체자로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얻어...

가정에서 여성의 존재가 

확실하게 자리해 당당하게 

마을 여성들과 공동으로 

연대하고 협력하니 

마을이 부촌으로 탈바꿈

박옥임 순천대학교 명예교수/사회학
박옥임 순천대학교 명예교수/사회학

2023년 노벨 경제학상은 미국 하버드대학의 여성주의 경제학자인 클라우디아 골딘이 받았다. 성별임금격차의 원인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골딘은 이례적으로 노벨상 수상 기념 회견에서 대한민국의 위기 징후로 성별임금격차 문제를 지적했다. 2021년 기준 OECD 평균 성별임금격차는 11.9%인데 비해 한국은 무려 31.1%다. OECD 국가 중 한국의 남녀임금격차가 가장 크다. 남성이 100만원을 벌 때 여성은 68만9천원을 번다는 것이다. 임금의 차별은 일하는 여성들의 자존감과 삶의 의욕을 떨어뜨린다. 

전남 동부지역의 한 여성농민 이야기다.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을 못하고 결혼해서 내내 오이농사에 주력했단다. 30년을 물불 가리지 않고 일만 하고 살았는데 자기한테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피땀 흘려 모은 집과 땅은 모두 남편 이름으로 돼 있고,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것은 땅 한 뙈기도, 저축도 없다 한다. 모양 좋고 싱싱한 오이는 공판장에 내니까 남편 통장에 입금되고, 남편은 돈이 있으니 동창회나 동호회에 신나게 돌아다닌다. 그런데 자기한테는 못난이 오이를 장에 나가 팔라고 하고, 오이 판 돈도 비료나 농약값으로 가져간다는 것이다. 

어느 장날 못난이 오이를 팔러 좌판에 앉아 있는데. 문득 자신의 신세가 바로 이 못난이 오이랑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지 눈물이 펑펑 나더라는 것이다. 시집간 딸 셋에게 전화했더니 하는 말이 “엄마, 이제야 알았어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는데 무엇이 바뀌겠어요? 그냥 사세요.” 하면서 시큰둥한 반응이더란다. ‘아! 내가 못났으니 남편도 딸들도 다 그렇게 못난이로 여기고 있구나. 참으로 잘못 살아온 인생이었구나...’ 라고 한탄을 했다.

그는 이대로 도저히 살 수 없다는 생각에 그날부터 한 달간 부부의 노동시간을 정확하게 기록해보았다. 짐작대로 자신의 노동량이 남편보다 훨씬 더 많았음을 남편에게 증명했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오이 수입금의 절반이 노동 대가로 받게 되니 원예조합에 출자금도 넣고 조합원이 됐다. 오이작목반 여성들을 만나는 기회도 생겼다. 여세를 몰아 자기의 이야기를 허심탄회 말했더니 반응은 두 가지로 갈렸다. 예전의 자기와 같은 여성들과 깨어난 지금의 자기 같은 여성으로 나뉘었다. 시간 나는 대로 사람들을 만나면서 흉금을 터놓게 됐다. 서로가 이 마을로 시집와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이 가까워지니 공감하고 힘이 모아졌다. 그는 현장의 여성농민운동가로 변했다. 

현장은 가방끈과는 무관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의 세상을 본 것이다. 여성농민들과 교류하면서 떠오르는 노랫말이 생각났다고 한다. 88서울올림픽 노래다.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결국 느끼고 행동하니까 되더라는 것이다. 우여곡절이 없지는 않았지만 잘 극복해 낸 농촌여성의 성공담이다. 

이는 직접 만나서 들을 이야기다. 얘기하는 중 에리히 프롬의 <소유인가 존재인가>란 책이 문득 생각났다. 주인공인 여성은 과거에는 의미 없던 대상에 불과했지만, 자신의 존재가치를 깨닫고 먼저 가족에게 목소리를 내 설득하고 변화시켜 삶의 주체자로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얻어냈다. 

사회의 기본단위인 가정에서 여성의 존재가 확실하게 자리해 당당하게 마을 여성들과 공동으로 연대하고 협력하니 그 마을은 부촌으로 탈바꿈했다. 노동에 따른 성별임금차별의 관행을 깨뜨린 한 여성농민의 목소리가 어떻게 파급돼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게 하는 좋은 교육모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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