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시작인 입동(立冬)이 지났는데 집 앞의 은행나무가 단풍이 들지 않았다. 왜 그럴까 했는데 지난 밤 갑작스런 한파로 단풍으로 미처 변하기도 전에 푸른 낙엽이 돼 길을 덮어 버린 것이다. 푸른 잎이 단풍으로 물들지 못한 것은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고온’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나무는 기온이 낮아지면 잎으로 드나들던 영양과 수분을 차단하면서 엽록소가 생성되지 않으며, 엽록소는 햇빛에 분해돼 녹색에 가려 보이지 않던 붉은색 등을 띤다. 그게 단풍이다. 나무들이 겨울나기를 위해 수분, 영양 등을 저장하기 위한 생존방식인 셈이다. 사계절이 사라진 듯 변화무쌍한 생태환경 속에서 파란 잎을 떨구지 않으면 안 될 나무의 밤새 몸부림을 생각하면 길에 쌓인 파란 은행잎을 밟기가 미안한 마음이 든다. 

문득 불가에서 유래된 ‘낙엽귀근(落葉歸根)’이란 고사성어가 생각난다. 선종(禪宗)의 육조대사인 혜능스님이 돌아가시려 하자 대중이 슬퍼하며 “지금 가면 언제 오시냐”고 묻는다. 이에 스님은 “나뭇잎이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가고, 돌아올 때는 아무 말이 없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낙엽이 썩어야 땅을 기름지게 하고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듯이, 만물은 그 생명을 다하면 근본으로 돌아감을 비유한 말이다.

나뭇잎이 썩어서 뿌리로 돌아가 자양분이 되는 것은 자기희생이 아닌 부모나무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된다. 겨울의 초입에서 낙엽귀근의 위대한 자연의 질서와 섭리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 그래서 자연은 인간의 ‘가장 위대한 교과서’라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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