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무대 매너와 넓은 음역대
1960년대 사랑·희망을 노래하다
세종로공원 ‘서울에 찬가 노래비’
‘리사이틀’ 표현 첫 사용한 선구자
뉴욕·라스베이거스 등 미국 진출

■박해문 음악감독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디바’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새들의 노래 웃는 그 얼굴 그리워라 내 사랑아 내 곁을 떠나지 마오 처음 만나고 사랑을 맺은 정다운 거리 마음의 거리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으렵니다.”

6·25전쟁을 격고 난 1960년대, 도시 재건의 분위기와 대중매체들이 줄지어 생겨나면서 TV와 라디오 방송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라디오는 가격이 저렴하고 휴대가 간편해서 어느 곳에서나 들을 수 있었다. 

대체적으로 1950년대 대중가요가 전쟁과 아픔을 노래한 반면, 1960년대에는 사랑과 희망을 염원하는 노래들이 대거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밝고 경쾌하고 희망적인 노래는 단연 패티김(1938~)의 ‘서울의 찬가’(1966)였다. 

1966년 당시 제14대 서울시장 김현옥(1926~1995)이 희망찬 서울의 모습을 담은 곡을 만들어 달라는 특별한 부탁으로 탄생했다. 서울시에서 후원하고 당시 패티김의 남편이었던 길옥윤(1927~1995)이 작사·작곡했다. 

1969년 신세기레코드에서 패티김의 정규앨범 ‘하얀집’을 발매했다. ‘서울의 찬가’는 6번 트랙이다.
1969년 신세기레코드에서 패티김의 정규앨범 ‘하얀집’을 발매했다. ‘서울의 찬가’는 6번 트랙이다.

동아방송에서 녹음과 발표를 했고, 라디오부터 전파를 탔다. ‘서울의 찬가’는 빠르고 경쾌한 희망적인 장조의 행진곡 느낌으로 만들어졌기에, 누구나 들어도 기분이 밝아진다. 시원스러운 패티김의 가창력에 박수를 치면서 따라 부르곤 했다. 

1절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떠나지 마라는, 2절은 헤어진 사람이 다시 내 품에 돌아와서 서울에서 같이 살자는 내용이다. 

패티김의 본명은 ‘김혜자’다. ‘패티’라는 이름은 미국의 유명한 팝·컨트리 가수 겸 배우의 이름에서 따왔다. 당대 최고의 디바였던 ‘패티 페이지(Patti Page)’를 롤 모델 삼아 한국의 디바가 되겠다는 각오로 ‘패티김’이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패티김은 한국 대중가요계의 전설적인 디바이며 아티스트로서 화려한 무대 매너와 넓은 음역대를 구사한다. 

한·일 문화교류의 일환으로 일본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최초 초대한 가수이며, ‘패티김 리사이틀’이란 개인 이름으로 ‘리사이틀’이라는 표현을 최초로 내걸고 공연한 가수다. 또 1963년 뉴욕, 라스베이거스 등 미국에 진출한 한류스타 가수다. 

1966년 최초의 한국 창작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에서 주연(애랑 역)을 맡았고, 1967년 TBC TV ‘패티김 쇼’라는 개인 이름을 최초 타이틀화한 쇼 프로그램 진행자이기도 했다. 

1978년 대중가수로서는 처음으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공연했고, 1989년 미국 ‘카네기 홀’ 콘서트를 열었다.

노래 속 남녀의 사랑이 맺어졌던 아름다운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 ‘서울의 찬가 노래비’는 서울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를 기리기 위해 건립됐다.(사진출처 : 서울시) 
노래 속 남녀의 사랑이 맺어졌던 아름다운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 ‘서울의 찬가 노래비’는 서울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를 기리기 위해 건립됐다.(사진출처 : 서울시) 

1996년에는 문화훈장 5등급을 받기도 했고, 2008년 대중가수로는 처음으로 ‘세계를 빛낸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패티김은 ‘최초’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 다녔던 이 시대 ‘최고의 디바’라 할 수 있다. 더는 나열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다. 

사실, 당시에 발매된 곡을 지금의 녹음환경과 비교한다는 게 무의미하지만, 패티김의 앨범이 오늘날 들어도 손색이 없는 것은 곡과 가수가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못잊어’ ‘초우’ ‘이별’ ‘가시나무새’ ‘누가 이사람을 모르시나요’ ‘그대 없이는 못살아’ 등 수많은 히트곡을 냈다. 

1995년 ‘서울의 찬가 노래비’가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에 세워졌다. 

패티김은 1966년 작곡가 길옥윤과 결혼했지만 1972년 이혼, 슬하에 정아, 카밀라 두 딸을 두고 있다. 

박해문 음악감독은 대중음악 작곡가, 프로듀서, Seagate_DJ로 활동 중이다. 한·중 합작 팩츄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 JTBC 드라마 ‘나의 나라’ 음악 등을 만들었다. 
박해문 음악감독은 대중음악 작곡가, 프로듀서, Seagate_DJ로 활동 중이다. 한·중 합작 팩츄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 JTBC 드라마 ‘나의 나라’ 음악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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