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MBC 협찬 ‘마당놀이’
하루 무료 공연 성황리 열려
연 1회 유료 전환에도 미어터져
춘향전·방자전…5400여회 무대
“잘생겨도 식상한 사람 있듯이
겸손하게 생겼어도 같이 있고
​​​​​​​보고 싶은 배우 되려고 노력”

■만나봅시다- 마당놀이 대부 윤문식의 여든두 번째 계단

서울 성동구 금호역 인근 한 연극 연습실에서 배우 윤문식을 만났다. 지난 1981년부터 마당놀이 5400여회 공연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운 그의 새해 첫 출연 작품은 ‘폐차장 블루스’. 제8회 늘푸른연극제 선정 연극이다. 윤문식을 비롯해 중앙대학교 동문들이 대거 참여한다.
“원제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인 폐차장 블루스는 중앙대 선배이자 작고하신 김상열 작가의 작품이지요. 연출을 맡은 주호성과 그의 아들 장성원, 그리고 최주봉, 이승호 등… 동문이 8명이나 참여하다 보니 동문회를 하러 나온 기분이 듭니다.”

중앙대 연영과 6기인 윤문식과 42기 후배가 한 무대에 선다. 새해 여든두 살이 되는 그는 요즘 하루도 빠짐없이 지하철을 타고 연습실을 찾는다.
연극 연습을 하기 전까지 ‘싸가지 흥부전’ ‘뺑파 게이트’ 등 무대에 섰다. 윤문식은 ‘1세대’ ‘권위자’ ‘전문가’ ‘인간문화재’ ‘꾼’ ‘대부’ 등 마당놀이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배우다.

배우 윤문식은 연기에 대해 “그 맛을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면서 “별 볼 일 없는 사람은 제 능력만을 어쩌고저쩌고 주장하는데, 현명한 사람은 상대방의 실력을 이용한다고 한다. 모방이라 해도 그것을 자기화한다면 재창조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배우 윤문식은 연기에 대해 “그 맛을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면서 “별 볼 일 없는 사람은 제 능력만을 어쩌고저쩌고 주장하는데, 현명한 사람은 상대방의 실력을 이용한다고 한다. 모방이라 해도 그것을 자기화한다면 재창조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첫 마당놀이 ‘허생전’ 공연에 난리
“1960년대 연극을 할 때 서양 작품을 많이 했지요. 심오한 작품이라고 하지만, 보는 관객도 연기하는 배우도 알쏭달쏭했어요. 우리나라는 놀이문화잖아요. 양주 별산대, 봉산탈춤, 농악 등이 그렇지요.”

당시 공연할 수 있는 극장도 딱 하나, 명동예술극장이 전부였다. 하지만 봄에 몇 달, 가을에 몇 달만 문을 열었다. 마당에서 춤추고, 노래하던 놀이문화를 끌어와서 연극을 만들어 보자고 시작한 게 마당놀이다.

1981년 MBC 협찬으로 ‘허생전’을 올린 게 출발이다. 시작은 하루 무료 공연이었지만,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국민적 성원에 힘입어 1년에 한 번이 됐고, 유료 전환 이후에도 미어터졌다. ‘별주부전’ ‘놀부전’ ‘이춘풍전’ ‘방자전’ ‘봉이선달전’ ‘배비장전’ ‘심청전’ ‘구운몽’ ‘춘향전’ ‘흥부전’ 등 작품도 다양하다. 윤문식과 김종엽, 김성녀가 무대에 섰고, 손진책이 연출을 맡았다.

“손진책씨가 ‘마당정신’을 연극에 넣었지요. 우리가 태어나면 탯줄을 잘라서 태운 데가 마당이잖아요. 애들이 뛰어놀던 곳도 마당이지요. 걔들이 성장해서 연애하고 결혼식을 치른 곳이 마당이고, 죽어서 상여가 나간 데가 또 마당이지요.”

공간적 의미의 마당에 시간적 의미의 마당을 더했다. 옛날과 오늘, 통틀어서 종과 행이다. 여기에 마당정신을 넣은 것이 마당놀이다.

선조들 마당정신 마당놀이에 담아
“마당정신이 뭐냐, 마당에서 타작할 때 다 같이 도와서 하잖아요. 상여 나갈 때도 다 같이 돌아가면서 메지요. 선조들은 힘이 세든 약하든 협동하고, 공동으로 생활을 했지요. 손진책씨가 마당정신을 알게 모르게 집어넣으려고 애를 썼어요.”

윤문식은 15년 전부터 그들과 마당놀이를 함께하지 않는다. 마당놀이를 소품(규모가 작은 예술 작품)화 한 ‘싸가지 흥부전’ ‘뺑파 게이트’ 등은 후배들과 함께한다.

“후배들이 잘하지요. 나도 이제 나이도 들고, 그만 서야 하는데… 또 없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도 있고요. 영원한 문화 자산이잖아요. 그래서 외국 공연도 많이 다녔지요. 개인적으로 마당놀이는 윤문식이라는 배우가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했습니다.”

고전에서 출발한 마당놀이는 배우들의 맛깔난 대사와 연기, 재담과 익살을 발판 삼아 한바탕 어울리는 연극이다. 관객과 배우는 서로 흥을 돋우며 하나가 된다. 서로의 호흡이 중요하고, 배우는 관객의 감정을 확인하고 공감하면서 극을 이끌어간다.

윤문식이 마당놀이를 하게 된 계기라 하면 중앙대 연영과 동기 배우 박인환과 최주봉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동기지만 내가 두 살 많지요. 우리 셋의 관계는 좀 복잡해요. 같이 극단 ‘가교’에 있었는데 내가 하도 술 먹고 싸가지 없는 짓을 하니까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손진책씨가 있는, 민속극을 많이 하던 극단 ‘민예’로 들어가게 됐지요. 민속극이 나랑 잘 맞았어요. 6기 동기들 중 우리 셋만 현역 배우로 활동하고 있지요.”

‘곡마단’ 공연 보며 배우 꿈 키워
충남 서산에 내려온 ‘곡마단’ 공연을 보며 배우의 꿈을 품었다. 홀어머니의 반대에 집을 나와 미군부대에서 구두닦이 등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끈을 놓지 않았다.

“하우스보이를 했지요. 모은 돈을 가지고 서산에 내려가서 어머니를 찾아뵙고 입학등록금만 내달라며 연영과에 시험을 보겠다고 했어요. 어머니는 아들을 이길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결국, 삼수를 한 셈이 됐습니다.”

TV와 영화, 연극 무대에서 걸쭉한 말솜씨로 흥을 돋우길 60여년. 누룽지를 끊인다고 다 구수한 게 아니듯이, 충청도 사투리를 쓴다고 다 입담이 구성진 것은 아니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진중한 한국의 아버지상이 있다면, 배우 윤문식은 또 다른 아버지상을 제시했다. 삶은 또 다르다. 결혼생활 30년 중 15년을 투병했던 첫 번째 아내와 사별했다. 60대 후반 재혼한 지금의 아내와는 열여덟 살 차이. 고비도 있었다. 폐암 3기, 7개월 시한부라는 청천벽력 소식에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했다. 아내의 간절한 부탁에 다른 병원에 갔더니 1기 진단이 나왔다. 수술을 받고 지난해 10월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아무리 예쁘고, 잘생겼어도 보다 보면 식상한 사람이 있잖아요. 그런데, 겸손하게 생겼어도 같이 있고 싶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지요. 그런 배우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연극 ‘폐차장 블루스’는 새해 1월18일부터 21일까지 나흘간 서울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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