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진흥청·농촌여성신문 공동기획 - 농업의 성장동력, R&D에서 얻다
②과수화상병 신속 진단·방제기술 개발(노은정 농촌진흥청 작물보호과 연구사)

기후변화에 따른 농업경영의 불안정, 국제적인 식량수급 불안 등은 농업의 지속가능성과 인류생존의 가장 큰 위협요소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열쇠를 농업 R&D(연구개발)에서 찾아야 한다. 최근 과학기술의 발전은 농업생산뿐만 아니라 융․복합을 통해 식품․의약 분야를 넘어 일반 산업으로 확산되는 추세인데, 여기에는 농업 R&D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농업 R&D는 국민의 생명산업 보장과 국가 미래기반의 안정적 조성에 반드시 필요한 투자다. 농촌여성신문은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의 우수 연구성과를 통해 농업 R&D의 중요성을 재조명해본다.

 

화상병 신속진단 ‘리얼타임 PCR’ 기술 개발

화상병예측정보시스템 구축해 민관에 서비스

생물안전 3등급 온실 곧 완공…관련 연구 탄력

노은정 연구사가 화상병 방제제의 원료가 되는 박테리오파지(세균을 죽이는 바이러스) 모형을 설명하고 있다.
노은정 연구사가 화상병 방제제의 원료가 되는 박테리오파지(세균을 죽이는 바이러스) 모형을 설명하고 있다.

 

사과·배농가 가장 큰 위협 ‘화상병’
화상병(과수화상병)은 지난 2015년 국내에서 첫 발생 후 매년 사과와 배 과원에서 지속 발생하며 과수농가에 큰 피해를 입히고 있다. 2015년 43개 농가 42.9㏊에서 발생이 보고된 이후 2020년에는 744개 농가 400여㏊로 확산됐다. 2020년 피해농가에 지급한 손실보상금만 해도 728억원에 달했다.

“2020년에는 특히 사과와 배 생육기인 5~7월에 잦은 비와 늦은 봄서리 피해 등으로 나무가 냉해를 입으면서 화상병 감염이 극심했습니다. 다행히 2021년부터는 화상병 조기차단을 위해 동절기에 궤양 사전 제거 등을 실시해 발생농가 수와 면적이 줄고 있는 추세죠. 다만 화상병 발생지역에서 인접지역으로 확산되고 있어 농가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산물안전성부 작물보호과에서 과수화상병 신속 진단기술 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노은정 연구사의 말이다.

“화상병은 한 번 감염되면 근절하기 어렵습니다. 꽃과 신초에 쉽게 감염되며, 세균이 식물체 안으로 이동하면 약제 처리로도 제거하기 어려워요. 식물체 안으로 들어간 화상병균은 겨울 동안에도 살아남아 봄철 과수의 물오름 시기에 감염원이 되기도 합니다.”

신속진단 위한 기술 제품화 성공
전 세계적으로 화상병 치료제가 없어 사전예찰을 통한 신속한 방제가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다. 노은정 연구사의 연구과제도 그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내에는 화상병과 증상이 매우 유사한 가지검은마름병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어 이를 구분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화상병균과 가지검은마름병균의 유전체 정보를 기반으로 각각의 병원균에 특이적으로 존재하는 유전자를 찾아 진단할 수 있는 리얼타임 PCR(유전자 증폭) 기술을 개발했고, 이를 업체에 기술이전해 제품화를 완료했습니다.”

이 진단기술은 병원균의 DNA를 분리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병이 의심되는 식물 시료의 추출액으로 바로 진단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화상병과 가지검은마름병을 1시간30분 내에 구분할 수 있다. 또한 작물보호과에서는 기존에 3~4일 소요되던 화상병 진단을 새로운 진단기술을 적용하고, 충북 충주, 경기 수원, 경북 등 3곳에 화상병 현장진단센터를 운영해 의뢰 당일에 진단 결과를 답신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

작물보호과 연구진은 현장에서 궤양 부위의 증상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했고, 이를 리얼타임 PCR 기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해 적용하고 있다. 또한 전정가위에 묻어 있는 병원균을 살균할 수 있는 소독약과 약액에 60초 이상 침지해야만 균이 사멸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휴대용 전정가위 소독 거치대’를 개발해 현장에 보급했다.

한편, 과수 꽃 개화기에 효과적으로 화상병을 방제하기 위해서는 화상병균이 꽃을 통해 감염될 수 있는 시기에 약제를 살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 농진청 연구진은 미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Maryblyt(메리블라이트)라는 예측 모형에 우리나라 습도 조건을 반영해 ‘K-Maryblyt’ 모델을 개발했다. 이 모델로 예측한 결과를 토대로 화상병예측정보시스템(http://fireblight.org)을 구축했고, 이를 활용해 농진청과 시·군 농업기술센터에서는 농가에 방제적기 문자서비스를 보내고 있다. 누구라도 이 시스템에 접속해 현재 위치의 화상병 예측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농진청이 개발한 신속진단기술을 통해 화상병 진단기간을 기존 3~4일에서 당일로 획기적으로 줄임에 따라 화상병 발생에 따른 과수원 폐원 등의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신고 후 3일 만에도 폐원작업이 가능하게 돼 화상병 발생농가뿐만 아니라 인근 농가의 반응도 매우 긍정적입니다.”

고위험 병해충 연구 탄력받을 듯
화상병은 법에서 정한 검역세균이어서 원칙적으로 감염된 식물 시료뿐만 아니라 진단을 위해 분리한 세균도 사멸해야 한다. 다만 진단과 방제기술 연구개발 임무를 갖고 있는 국립농업과학원 작물보호과 화상병 연구실은 생물안전 2등급의 단독 연구동에서 시료의 진단과 방제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생물안전 2등급 연구실에는 연구자만 출입할 수 있고 접수된 식물 시료를 포함해 세균과 접촉한 모든 것을 멸균처리해 외부 유출을 막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발 중인 방제기술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식물을 이용한 실험이 필수적인 상황입니다. 이를 위해 국립농업과학원은 고위험식물병해충 격리시험연구동(BL3)을 건축 중이며 12월 중 준공을 마치고 내년 상반기 중에 식물실험이 가능한 생물안전 3등급 온실을 운영할 예정입니다. 생물안전 3등급 온실은 국내 최초의 시설로 앞으로 다양한 고위험 병해충 연구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농촌진흥청은 화상병 방제제 개발을 위해 여러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주목할 만한 효과를 보인 후보들을 선발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까지 미생물 3종과 합성물질 2종, 박테리오파지 칵테일 2종에 대한 연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것.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는 세균포식자라는 뜻으로, 목표 세균에만 침입하고 세균의 내부에서 증식한 후 세균을 터뜨려 죽이는 바이러스입니다. 박테리오파지는 지구상에서 가장 풍부한 유기체로 환경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사람이나 동식물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항생제내성균의 등장으로 항생제를 이용한 병원성 세균과의 싸움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데, 최근엔 많은 박테리오파지가 의료, 농축산업, 반려동물 치료, 식품안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사용되고 있습니다.”

현재 작물보호과에서는 국내 화상병균에 더 효과가 뛰어난 박테리오파지들을 다수 분리하고 화상병균을 효과적으로 방제할 수 있는 박테리오파지 칵테일 2종을 개발해 특허출원을 완료한 상태다. 

화상병이 국내에 들어온 지 이미 8년이 넘었다. 외국 사례를 보면 국내 어디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사례를 보면 발생 초기에만 발견해 바로 공적방제를 실시하면서 더 이상 화상병이 확산되지 않고 있다. 

“농가들이 자신의 지역에서 화상병이 아직 발생하지 않고 있더라도 농업기술센터 등에서 시행하는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이를 통해 화상병 증상을 눈에 익혀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증상이 있으면 바로 가까운 농업 관련 기관에 신고해서 확인해야 합니다.”

농가들의 세심한 예찰과 주의, 관계 기관의 신속한 진단·방제, 궁극적으로는 치료제 개발 등 3박자가 제대로 맞아 돌아가야 화상병 발생과 확산을 예방할 수 있다. 관련 연구자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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