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젠더 기반 폭력 피해지원 축소…
통합지원은 예산삭감 감추려는 핑계” 반발

지자체 통합상담소 전환 조건 
특화상담소 사실상 배제 지침
“전문성 무시한 행정편의주의
상담업무 이관 1년 이상 유예
자격 기준 완화해야” 한목소리

길게는 3년, 짧게는 1년 동안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들의 아픔을 함께한 디지털 성범죄 지역특화상담소(특화상담소)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여성가족부, 특화상담소 등에 따르면 여가부 권익증진국 내년 예산이 53억원 삭감된 가운데 내년부터 디지털 성범죄 특화 프로그램 운영 주체를 여성폭력통합상담소(통합상담소)로 이관한다. 

통합상담소는 가정폭력상담소와 성폭력상담소, 특화상담소 등 기능을 통합하는 형태다. 여가부는 지금까지 특화상담소별 상담원 2명을 기준으로 인건비를 책정하고, 운영비와 사업비도 편성했다. 

경남·경북·광주·대구·대전·부산·인천·전북·제주·충북 등 10개 시·도에 이어 올해 신규로 세종·울산·전남·충남지역을 추가 선정했다.

하지만 여가부 지침에 따라 전국 광역지방자치단체가 세부지침 상 통합상담소 전환 조건을 ▲5명 이상의 상담 인력이 있을 것 ▲가정폭력상담원 자격증이 있는 인원이 2명 이상일 것 등으로 기존 특화상담소가 아닌 가정폭력상담소를 기준으로 정해 특화상담소들이 반발하고 있다. 

대개 디지털 성범죄 특화 프로그램 운영 사업은 지역 성폭력상담소들이 수탁해 왔기 때문이다.

가정폭력보다는 성폭력상담소가 디지털 성폭력 대응에 더 적합하다는 판단과 지자체의 추천 등에 따른 결과였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왼쪽 두 번째)이 지난달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0차 여성폭력방지위원회를 영상회의로 개최해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지원 개선 방안’과 ‘여성폭력방지정책 기본계획 2022년 시행계획 실적 분석·평가 결과’ 등을 논의하고 있다. 이번 회의는 스토킹, 디지털 성범죄, 권력형 성범죄, 가정폭력, 교제폭력 등 5대 폭력 피해자 보호 지원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왼쪽 두 번째)이 지난달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0차 여성폭력방지위원회를 영상회의로 개최해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지원 개선 방안’과 ‘여성폭력방지정책 기본계획 2022년 시행계획 실적 분석·평가 결과’ 등을 논의하고 있다. 이번 회의는 스토킹, 디지털 성범죄, 권력형 성범죄, 가정폭력, 교제폭력 등 5대 폭력 피해자 보호 지원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특화상담소인 광주여성민우회성폭력상담소 박다현 소장은 “성폭력상담소의 경우 인원은 4명인데, 갑자기 지침을 내려 5명 기준으로 한다는 건 특화상담소를 배제하고 현재 5명 체제로 운영 중인 가정폭력·성폭력 통합상담소만 신청하라는 지침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자체 지침이 지난 10월 말에 내려온 데다 신청 기간도 열흘가량으로 짧아 의도적으로 특화상담소를 배제하고 있다는 게 특화상담소들의 주장이다. 

전국 14개 특화상담소는 지난 2021년부터 디지털 성범죄 특화 프로그램을 통해 특화상담소를 운영하며 상담과 캠페인, 정책 제안사업, 성폭력 예방교육사업 등을 수행해 왔다. 

박다현 소장은 “1년씩 공모 방식으로 운영하지만 광주는 2년째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대부분 재수탁을 통해 전문성, 역량 등을 키워 왔는데 이를 무시한 채 갑작스럽게 사업을 중단시킨다는 건 여가부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보호 사업을 축소하는 것과 같다”면서 “정부는 기존 운영 기관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하고 디지털 성범죄 특화 프로그램 운영 방식을 1년 이상 유예하며, 자격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가부는 디지털 성범죄 특화 프로그램 운영의 통합상담소 이관에 대해 매년 사업자를 선정하는 방식에서 탈피해 기존 가정폭력·성폭력 통합상담소와 지자체 디지털 성범죄 피해지원기관 중심으로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운영 방식을 바꿔 피해자에게 보다 안정적인 서비스가 지원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또한 대부분 기간제로 고용돼 있는 지역특화상담소 종사자들이 정규직(보건복지부 사회복지시설)으로 고용 승계됨으로써 내년부터 안정적인 근무 환경에서 전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가부의 이 같은 해명에도 특화상담소뿐만 아니라 민간 여성폭력 상담 활동가들 역시 여가부의 통합상담소 개편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수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문성과 역량을 무시한 이해할 수 없는 조치라는 얘기다. 여기에 더해 “제대로 된 피해자 지원이 이뤄질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여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젠더 폭력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통합상담소를 운영한다는 여가부의 정책방향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과 거기에 따른 상담소들, 즉 가정폭력과 성폭력, 디지털 성폭력 피해지원 체계를 흐트러뜨리면서 피해자를 통합적으로 지원한다는 건 표면적인 이유일 뿐 예산 삭감을 감추기 위한 핑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디지털 성폭력 피해지원을 이용해 현장에서 지금까지 지원하고 있던 피해자 정보를 이관해야 하는지, 내년에 인입될 피해자는 지원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데, 결국 젠더 기반 폭력 지원을 축소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기존에 특화상담소에서 일하던 상담사들이 정부 통합 기조에 맞춰 다른 상담소에 가서 활동하라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덧붙였다. 

여가부 관계자는 “디지털 성범죄는 신종 범죄로 통합상담소가 완성된 대응 체계로 볼 수 없다”면서 “기존 특화상담소들의 불만이 있을 수 있으나,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이라고 언급했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