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305)

지금까지 전해오는 우리나라의 역사서 중 가장 오래된 사서인, 고려 중기 문신 – 김부식(1075~1151)의 《삼국사기(三國史記)》(국보 제322호) 제1권 < 신라본기 제1>의 기록이다.

“서라벌 고허촌의 촌장 소벌공이 양산 기슭을 바라보니, 나정 옆의 숲 사이에 말이 무릎을 꿇고 울고 있었다. 곧장 가서 보니 말은 보이지 않고 다만 커다란 알이 있었다. 그것을 쪼개자 속에서 어린아이가 나왔기에 거두어 길렀다.

나이 십여 세가 되자 뛰어나고 영리하며 몸가짐이 조신하였다. 6부의 사람들이 그의 출생을 신비롭고 기이하게 여겨 높이 받들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임금으로 삼은 것이다. 진한 사람들은 박[조롱박]을 ‘박(朴)’이라고 하였는데, 처음의 커다란 알이 마치 박의 모양과 비슷하게 생겼으므로 그의 성을 ‘박’으로 한 것이다.(왕호는 ‘거서간’이다) 거서간은 진한의 말로 임금을 뜻한다.”

‘알’에서 태어나 열세 살에 신라 서라벌의 왕(거서간)이 된 신라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 기원전 69~기원후 4, 재위:기원전 57~기원후 4)의 탄생 설화다.

먼 훗날, “그럼 혁거세가 태어난 알은 누가 낳은 알인가?” 또는, “알의 색깔이 자주색이었다....?!” (《삼국유사》) 등등의 의문투성이 기록들이 후세에 전해오지만, 명확히 사료상으로 입증된 바 없이 그저 신비감만을 극대화하는 ‘탄생설화’다.

# 지금으로부터 무려 2400여년 전에 있었던 그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의 탄생설화와 유사하게 ‘알을 닮은 최첨단 인공자궁’에서 인간의 새 생명이 태어난다는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테마를 가진 영국영화가 최근 국내에서 수입 개봉돼 화제다.

<팟 제너레이션(Pod Generation)>이란 영화로, 여성 감독 소피 바르트가 메가폰을 잡고, 에밀리아 클라크, 치웨텔 에지오포가 부부로 열연한, 러닝타임 109분의 12세 관람 가급 SF 멜로/로맨스 코미디물이다.

‘임신/출산 2.0--이제는 팟(Pod)이 대신 낳아드립니다!’가 미래 최첨단 인공자궁센터의 캐치프레이즈다. 거대한 테크회사 임원인 여주인공은 승진과 더불어 모두가 탐내는 최첨단 자궁센터의 예약 기회를 얻게된다. 여성의 몸체를 대리한 인공자궁인 ‘팟(Pod)’을 통해 임신과 출산이 편리해지고, 더불어 남편과 임신·출산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연주의 식물학자인 남편은, 이 부자연스럽고 기괴한 임신·출산 과정에 대해 반기를 들지만, 이내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팟’ 출산을 감행키로 한다...는 스토리다.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의 기조가 강한 지금의 우리 사회 젊은세대들 중에는, 아마도 “사람 대신 최첨단 기계가 아이를 임신하고, 낳아준다... 예쁜 알을 통해 부부가 스마트폰 앱으로 영양을 주고, 태교도 시키고, 출산이 임박해서는 신경강화 워크숍까지....” 영화의 이 모든 설정에 대해 긍정적인 한 표를 던질 사람들이 꽤 될 성싶다.

그러다 보면, ‘더 무서운 미래’가 그들을 기다릴지도 모르는 채로.... “팟(Pod)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제 취향대로 부모를 선택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는, 영화 속 자궁센터 모회사 회장의 섬뜩한 마지막 영상메시지가 그래서 설득력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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