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례 광주여성가족재단 대표이사

가사노동의 가치 존중과 

가사·돌봄 분담 문화 확산은 

개인․개별가정 문제가 아니라 

‘평등’이라는 가치 실현

공동체․사회 지속가능성 문제…       

기계․기술을 활용하고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더라도 

가족구성원이 직접 수행해야 할 

가사노동의 영역은 남아있어…

김경례 광주여성가족재단 대표이사
김경례 광주여성가족재단 대표이사

흔히 임금 노동을 하지 않으면 ‘집에서 논다’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집에서 노는 것이 가능한가?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는 요리, 청소, 세탁 등의 가사노동을 수행해야 하고 자녀, 부모, 반려동·식물 등 돌봄을 필요로 하는 가족구성원이 있을 경우에는 가사노동의 부담과 강도가 가중된다. 가사노동은 가족구성원 삶의 기획과 가정생활 전반의 운영, 관리 활동이라는 점에서 ‘살림’을 하는 것이며 가정의 경계를 넘어 공동체와 사회의 유지, 재생산에 기여하는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맞벌이 가구의 증가로 부부의 가사와 육아 분담의 필요성과 인식 수준은 높아졌으나 여전히 젊은 세대에서조차 여성 주도의 가사와 양육 노동이 수행되고 있다. 이는 여전한 성별 고정관념을 보여주는 것이며 여성의 이중 노동부담으로 인해 비혼 또는 결혼의 지연, 저출생, 경력단절 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때문에 가사노동의 가치 존중과 가사·돌봄 분담 문화 확산은 ‘평등’이라는 인류보편의 가치 실현, 공동체와 사회의 지속가능성의 문제다.       

가사수당은 말 그대로 가사노동에 대한 수당을 지급함으로써 가정 내 가사노동의 공익적 가치를 존중하고자 하는 정책적 의지의 표현이다. 혹자는 가전제품의 활용, 가사서비스 지원 등을 통해 가정 내 가사노동을 최소화해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되자고 한다. 세탁기, 청소기 등의 가전제품이 주부의 가사노동 시간을 줄여주지 못한다는 것을 루쓰 코완 등의 학자들이 이미 입증했고, 가전제품 소비와 가사·돌봄노동자의 고용을 통해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계층은 중산층 이상의 부유층이다. 

무엇보다도 기계, 기술을 활용하고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더라도 여전히 가족구성원이 직접 수행해야 할 가사노동의 영역은 남아있고 가정 내 가사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정책적 방향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컨대 홀로 계신 부모님과 대화를 나눠주는 기계가 실제 자녀가 연락해 안부를 묻는 것을 대체할 수 없다. 아이돌보미가 부모의 돌봄을 온전히 대체할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가정 내 가사노동은 가족이라는 특수한 관계에서 이뤄지는 관계노동이자 정서노동이다. 

물론, 공적 가사서비스 지원과 돌봄의 공공성 강화는 필요하다. 저소득층, 맞벌이, 한부모, 임신출산가정 등 가구의 특성에 따라 가사·돌봄서비스를 지원하고 마을과 지역사회, 국가가 함께 키우고 돌보는 돌봄시스템 구축은 반드시 필요하고, 현재 많은 정책과 제도들이 시행되고 있다. 다만 이러한 공적 서비스 지원이 가정 내에서 수행하고 있는 다양한 가사노동의 노고와 가치를 충분히 보상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직접 수행하는 가사노동 자체의 가치를 존중하는 방향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광주광역시 민선 8기 강기정 시장은 가사수당을 포함해 농민수당, 시민참여수당을 3대 공익가치 수당으로 공약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고소득이 보장되지 않는 먹거리를 묵묵히 생산해 내는 1차 산업활동의 공익적 가치, 적자생존과 각자도생 시대에 공동체 복원과 기후위기 대응 등의 활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공익적 가치, 가사노동이 공동체와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한다고 바라보는 전환적 시각에 근거해 시민들의 공익적 활동을 독려하고 그에 대한 정책적 보상을 시도해 보겠다는 것이다. 

가사수당 도입은 가사노동을 공익적 가치를 지닌 활동으로 재정의하고 그 자체의 가치를 존중하는 정책적 보상으로서의 상징성을 갖는 제도라는 점에서 ‘전국 최초’라는 수사여구와 수혜 대상과 지급액 규모와 별개로 그 의의를 갖는다. 광주광역시의 가사수당의 도입 계획이 전국적으로 담론화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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