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303)

“사흘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첫째 날은,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보겠다. 둘째 날은, 밤이 아침으로 변하는 기적을 보리라. 셋째 날은, 사람들이 오가는 평범한 거리를 보고 싶다. 단언컨대, 본다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다.”

이 말은 미국의 사회운동가이자 장애인 인권운동가였던 헬렌 A.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의 말이다.

미국 앨라배마주 태생인 그녀는, 세상에 태어난 지 19개월 됐을 때, 성홍열과 뇌막염으로 위와 뇌에서 급성출혈을 일으켜 시각과 청각을 잃었다. 그리고, 그 후에 말도 할 수 없는 벙어리가 돼 장님+벙어리+귀머거리의 ‘3중 장애’를 가진 ‘시청각 장애인’으로 87년의 생을 살면서, ‘인간의지의 한계를 뛰어넘어 3중 장애를 극복한 위대한 성녀’로 추앙받았다. 훗날 그녀는 말했다.

“나는 눈과 귀와 혀를 빼앗겼지만, 내 영혼을 잃지 않았기에, 그 모든 것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 캄캄한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살던 헬렌에게 생애 처음으로 ‘빛’이 돼 준 사람은, 그녀의 평생 가정교사였던 앤 설리번(1866~1936)이었다.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헬렌의 부모님은, 평소 친분이 있던 전화기 발명가인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권유로 보스턴에 있는 퍼킨스 맹아학교에서 앤 설리번 선생을 가정교사로 모셔왔다.

이때 헬렌의 나이 7살. 설리번 선생은 첫날부터 단어의 스펠링을 헬렌의 손에 쥐어주는 방식으로 글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맨 처음에는 자신이 처음 가정교사로 오면서 헬렌에게 줄 선물로 가져온 인형(Doll)을 손에 쥐어주며, 그 알파벳을 한 글자씩 ‘D-o-l-l(디-오-엘-엘)~’ 하고 손바닥에 써주기를 반복했다.

# 앤 설리번 선생은, 50년 가까이 헬렌의 눈과 귀, 그리고 손과 발이 돼 그녀의 곁을 지켰다. 훗날 헬렌은, 설리번 선생을 만나기 전까지는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사는 유령이었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손바닥에 쏟아지는 물줄기의 감촉을 느끼며 ‘워터(Water)’라는 단어를 익히던 순간을 회상하면서는, “손으로 보고 손으로 들은 풍요로운 세상!”이라고 추억했다. 그렇게 대학을 나오고, 5개 국어를 구사하며, <나의 생애(The Story of My Life)>(1902) 등 여러 권의 책을 써서 남겼다.

일제강점기였던 1937년과 1950년 6·25전쟁 중에 우리나라를 방문해 서울-평양-개성-대구-부산 등지에서 강연을 한 적도 있는 그녀는, 1968년 코네티컷주 아컨 리지에 있던 그녀의 집에서 심장마비로 87세에 세상을 떴다. “죽기 전에 꼭 3일 동안만 눈을 뜨고 세상을 보는” 유일한 소망을 이루지 못한 채.

11월4일은, 1926년에 반포한 ‘손으로 읽는 훈맹정음’ -우리나라 ‘한글점자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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