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번 먹자”…밥이 지닌 정서 표현
 함께 밥 먹는 가족 향한 사랑과 염원
20여년 동안 밥 소재 활발한 작품활동

■만나봅시다- ‘밥 속에서 피어나는 꽃’…임영숙 작가에게 의미를 묻다

커다란 밥그릇 위에 쌀밥이 가득 담겼다. 그 안에서 형형색색 꽃들이 위를 향해 피어난다. 목단, 수선화, 민들레, 국화, 나팔꽃 등이 자기만의 빛깔을 뽐내면서 탐스럽게 피어난다.
밥은 생명을 가능하게 해준다. 한국인들은 밥을 먹고 오늘의 삶을 영위하고, 밥을 먹고 내일의 희망을 키워나간다. 삶은 결국 먹고 사는 일이다. 우리는 따뜻한 밥 한 그릇에서 생을 이을 에너지를 얻고,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멀고 긴 길을 본다.
화면 가득 들어찬 밥 위로 다양한 종류의 꽃과 함께 더러 작은 집과 작은 새, 작은 스파이더맨이 올라와 있다. 임영숙 작가의 그림 소재는 ‘밥’이요, 제목도 ‘밥’이다. ‘밥 속에서 피어나는 꽃’, 임영숙 작가를 만나 밥 한 그릇에 담긴 세상에 대해 물었다.
 

임영숙 작가는 밥그릇에 담긴 수북한 밥, 그리고 꽃이 가득 피어난 모습을 통해 밥 먹는 일이 사는 일이고, 생명을 피워내는 일이고, 희망을 키우는 일이라고 말한다. 
임영숙 작가는 밥그릇에 담긴 수북한 밥, 그리고 꽃이 가득 피어난 모습을 통해 밥 먹는 일이 사는 일이고, 생명을 피워내는 일이고, 희망을 키우는 일이라고 말한다. 

먹고 살아가는 인간의 아득한 역사 
임영숙 작가는 20여년 동안 ‘밥’이라는 흔치 않은 소재를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해왔다. 그는 하얀 그릇에 소복이 담긴 밥과 꽃을 그린다. 정갈하고 간략하면서도 화려한 그의 작품에는 먹고 살아가는 인간의 아득한 역사가 담겨 있다. 

밥은 곧 우리의 모습이며 힘든 기억이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위로다. 또 함께 밥을 먹는 가족을 향한 한없는 사랑과 염원이기도 하다. 어느 하나 똑같은 것 없는 밥알들을 받치고 있는 그릇은 우리의 사회를 나타낸다. 

“작품이 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작품마다 이야기를 엮어가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밥상에서 대하는 밥 한 그릇은 보기에 작지만, 그 의미는 너무도 크지요. 힘들고 지칠 때 따뜻한 밥 한 끼 먹으면 기운이 나고, 없던 힘도 생기잖아요. 그래서 어느 날 밥을 보다가 밥이 지닌 정서를 그림으로 한번 표현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밥’(80×110㎝, 장지에 채색, 2023년 作)
‘밥’(80×110㎝, 장지에 채색, 2023년 作)

처음부터 현재의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이야 밥을 그리는 작가나 우리나라 전통 안료를 사용한 진채(진하고 강하게 쓰는 채색, 또는 그것으로 그린 그림)를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임 작가가 밥그릇과 밥알을 그리던 초창기에는 노골적으로 그린 밥알도, 진채도 익숙지 않았다.

“초기에는 은유적으로 밥 그림을 그렸어요. 그림을 열심히 하고 싶고, 그림으로 터전을 일구고 싶고, 그림으로 인정을 받고 싶었던 욕구가 컸어요.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보다가 ‘에라, 모르겠다’며 밥알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마음껏 색깔을 올리면서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게 됐지요.”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물론 스스로에게도 힘을 주고 싶었다. 정을 나누고 싶을 때 ‘밥 한번 먹자’고 하듯이. 

“최근 들어 그릇은 보이지 않고 밥알이 확대된, 커다란 밥알이 배경이 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정원을 표현하고 있어요. 어쩌면 생명의 근원이자 우주일 수도 있죠. 앞으로 밥그릇과 밥알을 뛰어넘는 근원의 힘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기존 작품을 좋아하는 분들은 아직 낯설다고 하더라고요. 하하하.”

밥알 세고 물감 올리기를 수십 번
장지에 채색물감과 먹으로 표현한 그림은 오랜 시간 공들여 그린 그림이다. 밥알을 하나씩 세어가면서, 수십 번 올린 물감이 마를 때까지 원하는 색깔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서 그린다. 

“세 겹이 배접된 한지에 올린 색깔은 시간이 오래 지나도 변색이 없지요. 옛날 궁중 진채를 보세요. 민가 그림은 우리나라 전통 물감인 안료의 재료가 천연이라 비싸서 옅게 칠할 수밖에 없었던 탓에 색이 바라지만, 장지에 여러 번 덧칠한 진채는 오랜 시간 발색도 좋습니다.”

‘밥’(90×120㎝, 장지에 혼합재료, 2018년 作)
‘밥’(90×120㎝, 장지에 혼합재료, 2018년 作)

분채가루를 아교로 개서 덧칠하기를 수십 번, 의도하지 않은 얼룩도 과정 중 하나다. 밥이라는 하나의 주제 아래 똑같은 밥알, 똑같은 꽃 한 송이 찾아볼 수 없는 까닭이다. 그의 밥그릇과 밥알은 대개 하얗고 정갈하지만 옅은 오방색(다섯 방위를 상징하는 색, 동쪽은 청색, 서쪽은 흰색, 남쪽은 적색, 북쪽은 흑색, 가운데는 황색)을 지니고 있다. 

“처음부터 진하게 하는 게 아니라 엷은 색으로 계속 올리고, 또 올려가면서 발색을 내지요. 아크릴처럼 강하게 낼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한국화라고 하면 색보다는 묵을 더 중요시했잖아요. 그래서 색이 들어간 그림을 선호하지 않았지요. 그러다 보니 대학원에서도 채색을 공부할 기회가 없었어요. 묵화만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데도 말이지요. 혼자서 민화 등을 공부했어요. 나한테는 색이 맞았거든요.” 

임영숙 작가는 동덕여자대학교 회화과, 홍익대학교 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1991년 MBC미술대전 장려상을 수상했으며, 수십 차례의 개인전과 여러 차례의 단체전에 참여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잇고 있다. 

‘밥’(140×60㎝, 장지에 채색, 2023년 作)
‘밥’(140×60㎝, 장지에 채색, 2023년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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