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결성…한국 헤비메탈 부흥기 이끌어
순우리말 ‘나티’ 짐승 모양 신화 속 도깨비

■만나봅시다- 도깨비 같은 밴드 ‘나티(NATY)’
1986년 겨울, 서울에서 고등학교 입학을 기다리는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정통 슬래시 메탈, 헤비메탈을 추구하는 6인조 밴드를 결성했다. 고교에 진학한 뒤에도 연습은 이어졌고, 공연도 하기에 이르렀다. 일대 초·중·고교를 거치며 음악을 잘하는 친구들끼리 어울린 게 고작이었지만,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가 했던가. 불세출의 뮤지션들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공연을 보러 온 이들은 밴드 구성원들의 친구와 친구의 친구들. 1987년 어느 날 신당동 떡볶이집에서 친구의 친구가 ‘나티’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나티는 우리 신화에 나오는 짐승 모양을 한 귀신 혹은 도깨비를 말한다. 

지난 37년간 걸어온 길이 한국 헤비메탈의 새 역사인 밴드 ‘나티’. (왼쪽부터)베이시스트 허준석, 보컬 겸 기타리스트 김상수, 기타리스트 박원신은 드러머 임병섭, 프로듀서 박해문과 함께 새로운 도약에 시동을 건다. 
지난 37년간 걸어온 길이 한국 헤비메탈의 새 역사인 밴드 ‘나티’. (왼쪽부터)베이시스트 허준석, 보컬 겸 기타리스트 김상수, 기타리스트 박원신은 드러머 임병섭, 프로듀서 박해문과 함께 새로운 도약에 시동을 건다. 

콜라보 무대로 신선한 충격
베이시스트 허준석을 주축으로 결성된 나티는 헤비메탈 옴니버스 앨범인 프라이데이 애프터눈 2집(1990년)에 참여하며 공식 데뷔했다. 이후 헤비메탈 부흥기를 이끌며 2006년 첫 정규앨범 ‘Long Time No See’를 세상에 내놓은 이래 디지털 싱글 ‘Truthful Heart’(2010년), 두 번째 정규 앨범 ‘Pride’(2011년)를 발매했다.

국내외 다수 록페스티벌은 물론, 한국 밴드로는 처음으로 2012년 중국 최대 음악 페스티벌 ‘요가 미디 페스티벌’에 초청되기도 했다. 2014년에는 가수 적우가 피처링을 한 ‘주문’이라는 곡을 내놨다. 적우뿐만 아니라 소찬휘 등 여성가수들과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국제 현대 무용제 모다페(MODAFE) 작품인 ‘MIRROR’,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 참가작 ‘낙원을 꿈꾸다’ 등 무용극과의 협연, 게임 OST에도 참여하는 등 활동 영역을 넓혀 왔다. 특히 가수 김수희와 함께한 무대는 메탈과 트로트의 파격적인 만남으로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시장성 없어도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

트로트와 함께 작업 등 메탈 활동영역 넓혀

2019년에는 1990년대부터 여러 가수의 히트곡을 만들며 EDM(Electronic Dance Music)을 바탕으로 드라마 음악, 클럽 음악 등에서 명성을 쌓은 스타 작곡가 박해문과 함께 ‘친구야’ 등 새 곡을 선보이며 공연 무대를 펼쳤다. 

하지만 37년이라는 세월 앞에 장사가 있을까. 원년 멤버인 허준석을 중심으로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하다 2004년 들어 김상수(보컬·기타)가 합류한 뒤 박원신(기타), 임병섭(드럼), 그리고 박해문(프로듀싱) 등 현재의 멤버가 고정됐다. 

허준석은 “김상수씨가 2014년 5월 카레이싱을 하다 서킷에서 큰 사고를 당했는데, 의식이 없는 상황에서 기존 멤버들이 흔들렸다”면서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던 멤버들이 하나둘 흩어졌고, 돌이켜 보면 밴드 활동 중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당시를 떠올리면 뭉클한데요. 한편에선 많은 후배들의 도움이 있었어요. 김상수가 꼭 일어서야 된다, 나티라는 팀이 활동을 멈추면 안 된다면서 객원으로 지원을 많이 해줬어요.”

허준석은 나티를 지키고자 악기 제조·유통·판매부터 세션 활동, 유튜버로서 활동한 지 오래다. 박원신은 서울 삼청동에서 기타 아카데미를 운영한다. 

허준석은 “악기숍에서 박원신씨를 고객으로 만났다”면서 “워낙에 어렸을 때부터 불세출의 실력을 보여주던 동생이었고, 세션으로 이름난 훌륭한 기타리스트인데 우리 팀의 딱한 사정을 알고 두말 않고 합류해줬다”고 언급했다. 

‘나티’는 생활 그 자체...
모두 1970년대 생인 나티 멤버들은 생업과 병행하느라 연습량이 모자라다고 불만이다. 특히 코로나 때는 거의 활동을 하지 못했고, 최근 들어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 홍대 인근 작업실에서 모인다. 

허준석에게 나티는 ‘그냥 생활’이란다. 해외 공연도 많이 했고, 오래되다 보니 과거 품었던 큰 음악에 대한 꿈은 각자의 마음속에 묻고 같이 생활하면서 가는 것이라고.

보컬 겸 기타리스트 김상수는 “처음엔 기타리스트로서 활동을 했는데 김상수라는 뮤지션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나티는 김상수라는 음악인에게 전부가 됐다”고 강조했다. 

“김상수는 나티의 부품입니다. 나티에 있으면 멤버들끼리 챙겨주기도 하고… 돋보이는 존재가 됩니다.”

기타리스트 박원신에게 나티는 ‘로망’이다. 박원신은 “뮤지션들이 나이가 들어가면 같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데, 나티 팬으로 시작해서 지금 멤버로 활동하고 있으니 성공한 셈”이라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대부분 음악을 시작할 때, 또 기타를 처음 알았을 때 남자의 음악, 록을 모티브로 하죠. 그런데 하다 보면 다른 장르로 빠지거나 좀 더 시장성이 있는 쪽으로 기울기도 합니다. 그렇다 해도 결국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음악 자체는 록이거든요.”

박해문 프로듀서는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드라마 음악을 하면서 느낀 좋은 스트링 패턴과 1980년대, 1990년대의 8비트 기타 저음 리프와 EDM이 융합된, 그리고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웅장한 음악을 한 시간짜리 앨범에 담을 계획”이라며 “시간을 두고 면밀하게 진행할 예정인 만큼 대중적인 앨범을 기대해도 좋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나티의 다양한 실험과 도전은 메탈 음악을 하는 동료들에게 약간의 비웃음을 산 적도 있다. 하지만 나티는 배제하거나 배척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메탈 영역을 넓혀가는 데 매진한다. 고집스럽게 자리를 지킬 뿐 소통하고 함께하는 것에 적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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