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보다 탁월한 일의 성취가 우선
“즐겁게, 잘할 수 있는 일에 최선”
유혹은 교육·철학 부재한 곳 파고들어

■만나봅시다- 안명옥 전 국립중앙의료원 원장

안명옥 전 국립중앙의료원 원장은 가로세로 110㎜ 정사각형 종이에 펜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창조의 세계를 투영한다.
안명옥 전 국립중앙의료원 원장은 가로세로 110㎜ 정사각형 종이에 펜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창조의 세계를 투영한다.

“9월1일은 우리 여성 고유의 한국여성의 날인 ‘여권통문의 날’이에요. 2012년 일생 처음 알게 돼 감동을 받았던 ‘여권통문(女權通文)’이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125년 전 1898년, 300여 여성들이 교육권과 노동권, 사회참여권을 주장하며 각성했다는 생각을 하면 감격스럽습니다. 세계여성의 날이 촉발된 1908년 미국 여성노동자들의 시위보다 10년이나 앞서는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묻혀 있는 여성의 역사를 발굴하고 조명하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일하게 됐지요.” 

사단법인 역사·여성·미래 이사장, 국립여성사박물관 자문위원장, 저출산의료대책포럼 공동대표, 한국·베트남 여성포럼 공동대표, 한국여성의정 10년사 편찬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는 안명옥 전 국립중앙의료원 원장을 만났다. 

50년 만의 수채화. 블로그 ‘안명옥의 무지개 나라, 닥터 아모의 비밀편지’ 캡처
50년 만의 수채화. 블로그 ‘안명옥의 무지개 나라, 닥터 아모의 비밀편지’ 캡처

창의적인 삶 살고자 50년 만에 그림
1995년 여의사회 임원으로서 떠난 봉사활동에서 라이따이한 등 베트남 여성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접하면서 다문화 사회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게 됐다. 이후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초대 이사장을 맡아 여성폭력 방지와 피해자 보호·지원 관련 다문화 가족을 포함해 예외 없이 적용하도록 정관을 만드는 데도 정성을 쏟았다. 

“한국-베트남 수교 30주년 기념의 일환이기도 하고, 지난 12일부터 한국·베트남 여성포럼 10주년을 맞아 한국에서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전·현직 여성 국회의원단체인 한국여성의정 창립을 함께 주도하고, 또 이사로 과거 10년간 일했다. 안 전 원장은 현재 한국여성의정 10년사 발간 작업을 진행 중이다. 

“요즘은 일들을 많이 사양하고 있지만, 지금 맡고 있는 일들은 마음이 몹시 가고 잘할 수 있기에 맡았습니다. 내가 즐겁게 잘할 수 있는 일이 생기면 최선을 다해 임해야지요.” 

그는 국립여성사박물관 자문위원장으로서 “국립여성사전시관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했던 경험도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 매우 늦었지만 국립여성사박물관이 우리 어머니들과 여성들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담고, 한편으로는 질곡의 역사도 담아 온전한 모습으로 개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최근 들어 펜으로 그림 그리는 것을 시작했다. 펜화는 책상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한다. 

“어려서 의대 예과 때까지 미술 활동을 즐겨 했는데, 의대 본과에 들어가며 모든 상황이 달라졌지요. 지난 6월28일 화백인 친구의 독려로 근 50년 만에 수채화 붓을 들었어요. 이참에 오는 10월 말, 11월 초에 세브란스 미술반 미술전에 선보입니다. 새 낙관도 디자인했어요. 50년 만에 출품이라 설렙니다.”

저출산·고령화 해법은 ‘홍익인간’
2014년 12월22일 3대 국립중앙의료원 원장으로 취임했던 당시 아프리카에서는 에볼라가 창궐하고 있어서 원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유입 가능했던 에볼라 준비에 착수했다. 갑작스런, 2015년 높은 치사율의 메르스 유행에 맞서 보건학 박사이며, 예방의학 전공을 한 전문가로서, 또 전국의 공공보건의료를 책임지고 있는 국립중앙의료원 원장으로서 직원들과 함께 진압에 최선을 다했다. 

2020년 우리나라가 선제적으로 코로나19에 잘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메르스 때의 경험과 시스템 확보가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의 개인적인 감회도 남달랐다.

세계적으로 코로나의 창궐 후 우리 사회도 많은 것이 변했다. 양극화는 심화됐고, 젠더 갈등과 마약 등 분열과 파탄의 유혹이 사회를 관통한다. 작금의 사회 현상을 그는 어떻게 바라볼까. 안 전 원장은 ‘교육과 철학의 부재’라고 진단했다. 

그는 5천년 전 단군 이래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자 교육 이념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데 주목한다. 교육기본법 2조에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라고 명시돼 있다. 우리나라 교육의 목적은 ‘홍익인간’이 되는 데 있다. 

“사람은 태어나서 가정교육, 학교(정규)교육, 사회교육, 자기교육 등 4가지 교육을 통해서 성숙합니다. 코로나 사태는 모두가 겪었지만, 교육의 양극화가 미래 세대의 양극화에도 엄청난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 역시 의사로서, 공직자로서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 애썼다. 미국 산부인과의 세부전공 영역인 모태체아학 분야를 한국인으로 처음 세부전공한 그는 미국의 선진 의료시스템을 경험하고 돌아와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의 모성태아학의 발전을 이끌었고, 역시 모자보건 분야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도 집중했다. 

공직자가 돼서도 17대 국회 첫 의안 발의 국회의원으로 기록되는 등 백년대계 좋은 입법 1등 국회의원이 되고자 촌각을 다투며 일했다. 국회의원 임기 동안 그의 방에서 143개의 법안이 나왔고, 54개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그는 17대 국회 법적 활동이 개시된 첫째 날인 2004년 5월31일 같은 당(한나라당) 소속 의원 13명의 서명을 받아 결의안을 제출했다. 그 유명한 ‘저출산및고령화사회대책특별위원회구성안’이다. 선견지명이다. 

“국민의 철학적 신념을 키워 홍익인간에의 열망이 있다면, 우리 사회가 압축 성장으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것 같이 문제들의 압축 해결에도 선봉장이 될 수 있고, 심오한 철학이 있는 품격국가가 될 것입니다. 또한 심각한 저출산·고령화 현상도 해결의 실마리가 지혜롭게 펼쳐질 것입니다.” 

이 결의안을 단초로 같은 해 제정법인 ‘저출산사회기본법’을 발의해 결국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제정, 2005년 5월18일 공포됐다. ‘저출산’을 국가의 어젠다로 만든 장본인이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