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야 팔방미인 - 전남 신안 ‘한길농원’ 윤인자 대표

전남 신안군 압해읍 복룡마을 9900㎡(3천평) 농지에 배를 심기 시작한 건 지난 1990년이었다. 강진에서 나고 자란 윤인자 한길농원 대표가 신안으로 시집오면서부터다. 벼농사와 고추농사로는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남편 전철남씨는 신안군으로부터 배 재배를 추천받았다. 배라고 하면 ‘나주배’를 떠올리는 상황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래서 품질로 승부수를 띄운 윤 대표는 제초제와 화학비료를 사용할 생각을 처음부터 접었다. 대신 땅이 푹신 거릴 정도로 퇴비를 줬고 풍부한 일조량과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배 과육을 더욱 단단하고 당도를 높게 만들었다.

1998년 첫 수확 때 어른 주먹만 한 배 한 개가 고추 한 근 값과 맞먹을 정도로 소득작물로 급부상했다. 마을주민에게 배 재배 동참을 권했고, 한 집 두 집, 가구 수는 점점 늘어 어느덧 150여 농가 150만㎡(150㏊)에 달했다. 재배 농가가 늘고 배 수확량이 많아지자 주민들은 농업인법인회사를 만들어 수출시장에도 발을 내딛었다. 1998년 미국 첫 수출을 시작으로 GAP 인증 등 배 품질관리에 더욱 신경을 썼고 이제는 세계에서 인정한 신안 배로 발돋움했다.

전남 신안군 윤인자 한길농원 대표는 배밭에 제초제 대신 퇴비를 사용했고, 그 우수한 품질을 인정받아 수출시장에도 진출했다.
전남 신안군 윤인자 한길농원 대표는 배밭에 제초제 대신 퇴비를 사용했고, 그 우수한 품질을 인정받아 수출시장에도 진출했다.

 

전국 단위 장류발효대전서 3연속 수상 영예

음식과 시를 접목한 손쉬운 요리책 발간 꿈꿔

여성의원 출신으로 여성권익 향상에도 앞장 

품질 좋은 못난이 배, 고추장과 콜라보
“조류와 태풍피해로 상처 난 배가 꽤 많아요. 친척과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것도 한계가 있고, 품질은 좋은데 상품성이 떨어지니 어디 내놓고 팔기도 어렵고 참 고민이 많았죠.”

윤 대표는 배 소비를 위해 수세미 배즙과 배고추장을 개발했다. 2000년도 생활개선신안군연합회장을 맡으며 진행했던 다양한 체험에선 장 담그기와 도농 교류 김장김치 팜파티가 체험객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면서 배를 활용한 여러 음식과 전통음식, 향토음식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특히 배즙과 생 배를 갈아 넣은 고추장 맛은 일품이었다. 2008년 신안군농업기술센터의 권유로 제조가공 6차 산업을 시작했고 농외소득에 큰 보탬이 됐다.

입소문을 타고 배고추장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났다. 그러면서 배고추장을 활용한 여러 장아찌와 배 김치 등 배 소비 촉진을 위한 다양한 메뉴개발에도 힘을 쏟았다.

신안배고추장은 2021년 ‘대한민국 4대 장류대전’ 고추장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 2022년에는 신안배귀리고추장이 최우수상, 2023년 된장 부문에 선보인 잡곡 된장이 금상을 거머쥐었다. 이로써 대한민국 장류 발효 대전에서 3년 연속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유독 긴 장마로 인해 소금 내기 좋은 시기를 놓쳐 신안 염부들 속은 타들어 가죠. 그래도 2~3년 전에 1만원 미만이던 소금값이 현재 5만원까지 시세가 올랐으니 주머니 사정은 나빠지지 않았다고 해요.”

신안은 소금으로 유명하다. 언론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태로 천일염 품귀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현재까진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다. 윤 대표는 “크게 염전을 운영하는 지인도 소금창고에 아직 많이 쌓여 걱정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오히려 언론이 소금 사재기를 조장하는 게 아니냐”고 일침을 가했다.

윤인자 대표는 시인이자 배고추장 등 다양한 전 통 장을 개발한 명인이다.
윤인자 대표는 시인이자 배고추장 등 다양한 전 통 장을 개발한 명인이다.

70여년 삶을 시집에 담은 문학인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초등학교 시절 웅변, 독후감 여러 글짓기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5학년 때 “너는 문학가가 되거라”는 담임선생님의 응원과 칭찬은 아직도 귀에 선하다. 그 이후에도 시집과 소설책을 읽고, 틈틈이 서평을 기록하며 문학의 꿈을 단 한 번도 접어 본 적이 없다.

엄마가 책을 보고 글을 쓰니 5남매도 스스로 공부했다. 지금까지 “공부해라, 숙제해라”는 잔소리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화장실에서부터 식탁, 방 등 지금도 집안 곳곳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책이 놓여 있다. 따로 시간을 내서 책을 보는 게 아니라 틈날 때마다 단 몇 줄이라도 읽을 수 있도록 책을 가까이 뒀다.

논두렁 밭두렁을 걷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좋은 시어가 떠오르면 바로 메모했다. 순간 잊어 버릴까 두려워 휴대폰이나 노트에 짧은 글을 메모하는 습관을 들였다. 이렇게 모은 시어에 큰 기둥을 세워 살을 붙이면 정성스러운 시 하나가 완성됐다.

“밥이 나오나 옷이 나오나, 참 이해가 안 된다”며 옆에선 남편의 핀잔이 마를 새가 없다. 그 어렵고 머리 아픈 걸 왜 하냐고 나무란다. 그럴 만도 한 게 윤 대표는 혈액암 투병 3년 차다. 아직도 매주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1년 리토피아 문학지에 등단했고 지금까지 3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윤 대표는 “글로 독자를 만나는 게 발가벗고 큰길 한복판에 서 있는 것처럼 부끄럽다”며 수줍은 웃음을 보였다.

윤인자 대표는  2010년 리토피아 문학지에 등단했고 지금까지 3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윤인자 대표는  2010년 리토피아 문학지에 등단했고 지금까지 3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신안 여성을 대표하는 작은 거인
2010년 신안군 최초 군의회 여성의원으로 활동했던 윤 대표는 14개 읍·면과 작은 섬마을까지 신안 곳곳을 살피며 여성지위 향상과 권익신장에 앞장섰다. 성폭력, 아동학대, 다문화가정 등 주민의 애환을 청취하고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치면서 신안 농산물에 대한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윤 대표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며 “배움에는 끝이 없고 늘 자신을 성장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신안군생활개선회원은 700여명. 단체생활도 가정생활도 서로 양보하며 활력 넘치는 학습단체가 되기를 소망했다. “소임을 다한 후 후배에게도 기회를 주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윤 대표는 말한다.

“요즘에 조리하는 부엌이 사라지고, 차리는 부엌이 늘고 있어 안타까워요. 도마소리가 사라지고 불을 지펴 요리하는 부엌이 줄어들면서 인스턴트와 배달음식이 주방을 점령하고 있는 게 현실이죠”

윤 대표는 젊은 세대나 다문화가정에 신안의 농수산물을 활용한 향토음식을 전수하기 위해 ‘슬로푸드 요리조리 동아리’를 만들어 운영할 예정이다. 또 음식과 시를 접목한 문화예술을 아우르는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요리책 출간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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