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불문 ‘일단, 달리고 본다’ 압도적 무대 매너
​​​​​​​데뷔 40주년…여전한 가창력에 운동으로 체력 단련

■만나봅시다- 완벽한 무대 뒤 철저한 관리 ‘아! 대한민국’ 국민가수 정수라

“가수는 무대에 섰을 때 힘 있게 노래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기본 체력이 뒷받침돼야죠. 오래전부터 웨이트트레이닝 등으로 단련해 왔어요. 그러나 세월엔 장사가 없더라고요. 하하하.”
1983년 ‘바람이었나’가 실린 가수 정수라의 첫 정식앨범이 나왔다. 40년 전이다. 알 만한 이들은 다 아는 국민가수지만, 최근 들어 방송 활동이 잦아지면서 젊은 세대들에게도 인지도가 쌓여간다. 뛰어난 가창력과 막 추지 않는 막춤을 선보이며 무대를 장악하는 매너. 혹자는 가수 싸이에 빗대 정수라의 지치지 않는 열정에 찬사를 보낸다. 
지난 24일 가요무대 녹화가 한창인 KBS별관에서 가수 정수라를 만났다.

가수 정수라는 새로운 곡으로써 정수라의 또 다른 음악 세계를 전달하고 공유하고 싶은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가수 정수라는 새로운 곡으로써 정수라의 또 다른 음악 세계를 전달하고 공유하고 싶은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
군살 하나 없는 탄탄한 몸매에 큰 키, 짧게 자른 머리카락과 청량한 색감의 셔츠까지. 더불어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반듯한 이목구비와 맑은 목소리에 ‘데뷔 40주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이 무색해진다. 

무대에서 노래 잘해서 박수 받으려면 ‘관리’밖에 없다는 게 정수라의 지론이다. 가수가 기운이 달리면 본인도 느끼겠지만, 대중은 더 빨리 알아챈다고.

“나이는 들었어도 운동으로 최대한 끌어올리고 있어요. 나이가 든다는 것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인 것 같아요.”

원로 가수 패티 김의 공연을 함께하며 존경심을 키워 온 터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설 수 있다는 건 패티 김 스스로 언급했듯이 ‘당당함’이다. 

“관리와 노력의 결과물이 당당함이라고 늘 말씀하셨어요. 라이브 공연이든 TV 방송이든, 세월은 흐르지만 그 변해가는 과정 속에서 제 자신을 잃지 않는 모습에 박수를 쳐 주는 대중 앞에 서고 싶습니다.” 

정점 찍은 뒤 밑도 끝도 없는 각종 루머에 시달려

적극 대응도 못하던 시절…3040대 방송 활동 접어

싸이와 비교되는 것은 고맙긴 하지만, 댄스가수가 아니라서 퍼포먼스가 없다는 게 정수라의 부연이다. ‘환희’를 부를 때도 리듬을 타면서 살짝 몸을 움직이는 수준이라는 것. 

“그것도 이제 나이가 드니까… 전에는 혼자 다녔는데, 요즘은 백댄서들이랑 함께 움직여요.” 

‘아! 대한민국’을 시작으로 외모와 인기, 실력이 절정에 올랐던 1980년대 ‘리즈’ 시절을 보낸 뒤 1990년대 들어 그는 스스로 방송 활동을 접었다. 가수이기 전에 한 여성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각종 루머 때문이었다. 적극적인 대응이나 법적 책임을 묻기에 사회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하지만 TV에 얼굴만 내밀지 않았을 뿐 이른바 ‘밤업소’ 무대를 중심으로 꾸준히 활동해 왔다. 

“3040대에 거의 방송 활동을 하지 않았어요. 지나고 보니 가수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시기였는데, 침체기였다고 봐야죠. 최근 들어 방송 출연이 많아지면서 지난 공백을 채워 간다는 느낌이 들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요제 수상 이후 오란씨 등 다양한 광고음악(CM송) 가수로 활동한 뒤 성년이 되고 나서 정식 데뷔했다. ‘아! 대한민국’ ‘풀잎이슬’ ‘아버지의 의자’ ‘도시의 거리’ ‘환희’ 등이 대표 히트곡이다. 

1980년대 최고의 스타 작사가 고(故) 박건호와 많은 작업을 했는데, 그의 서정적인 가사와 정수라의 탁월한 가창력이 만나 빛을 발했다. 

故 박건호 작사 ‘아버지의 의자’ 애착
“어릴 때 녹음실에서 박건호 선생님이랑 작업을 많이 했어요. 어린 저에게 나중에 커서 꼭 앨범을 같이 만들자고 하셨는데, 현실이 된 거죠.”

‘그 옛날 아버지가 앉아있던 의자에 이렇게 석고처럼 앉아 있으니 즐거웠던 지난날에 모든 추억이 내 가슴 깊이 밀려들어요….’ 

“1985년도에 나온 ‘아버지의 의자’인데요, 김희갑 선생님께서 작곡해 주셨어요. 아버지께서 오래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제 마음을 박건호 선생님께서 그대로 가사에 담아주셨어요. 소중한 곡이고 제 노래 중 가장 애착이 갑니다.”

2008년에는 트로트 앨범 ‘우리 둘이’를 내고 새로운 장르에 도전했다. 2009년에는 ‘정수라 밴드’를 결성해 ‘Beautiful Day’ 앨범을 발표했다. 이후에도 ‘사랑을 다시 한 번’ ‘청춘아 고맙다’ ‘어느 날 문득’ ‘업고! 업고!’ ‘도라지 꽃’ 등 신곡이 이어지고 있다. 

“예전처럼 신곡이 나왔다고 인기몰이를 하고… 그런 것들을 바라는 게 욕심일 수 있어요. 그런 시대는 이제 아니죠.” 

최근에는 故 박정운 추모곡 녹음에 참여했다. 운동을 하며 친해진 동갑내기 가수 ‘기차와 소나무’ 이규석의 제안에 좋은 마음으로 나섰다. 

“박정운씨랑 친분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요, 예전에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라는 프로그램에서 듀엣으로 잭슨 파이브의 ‘I will be there’를 부른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날의 기억은 오늘날 유튜브에 올려져 당대 가창력을 다투던 두 가수의 전설의 무대, 레전드의 만남으로 회자된다. 

“물을 많이 먹어요. 특히 오늘처럼 방송이나 행사 대기 중일 때는 하루 3ℓ는 마시는 것 같아요. 아침 식후에는 꼭 사과를 챙겨 먹습니다. 토마토, 블루베리, 딸기 등도 빼놓을 수 없죠. 또 보양식으로는 흑염소를… 하하하.”

국민가수 정수라의 건강과 미모의 비결이다. 

데뷔 40주년이지만 올해는 따로 계획이 없다는 그는 내년을 기약했다. 35주년인 2018년부터 꾸준히 디너콘서트 등을 열다가 코로나19 확산에 중단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지금까지 이어졌을 터다. 

“40주년이 의미는 있지만 경제 상황도 그렇고요, 올해는 조용히 넘어가려고 합니다. 정수라를 좋아하는 분들과 작은 공연이라도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항상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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