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영동 작은 시골마을 유년시절의 기억 
달과 달항아리, 밤하늘이 주는 신비감 표현
​​​​​​​“작품서 위안 얻고 좋다고 느끼면 최고의 가치”

■만나봅시다- 쿠킹호일에 물감을 얹다…화가 장세현의 새로운 발견 ‘은지화’

“화가는 그림을 그리는 시간보다 쳐다보고 생각하는 시간이 훨씬 많아요. 화가로서 성공하려면 하나의 주제를 브랜드화해야 한다는 얘기도 많이 듣지만, 이것저것 눈에 들어오는 것들도 많고 표현하고 싶은 것들도 많습니다.”
지난 2~15일 첫 개인전이자 스스로 개척한 ‘은지화(銀紙畵)’ 전시회를 연 장세현 작가의 말이다. 화가로서 장세현 작가에게 그림 주제란 그가 다뤄 온, 또 앞으로도 계속해서 써 나갈 시와 동화의 주제와도 닿아 있다. 동화작가로서 명성이 높은 그는 그동안 전통적인 것과 일상, 그리고 그림에 대해 말해 왔다. 
지난 9일, ‘은지화의 발견- 선, 빛, 색’이란 이름으로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경기 화성 반도문화재단 아이비라운지에서 장세현 작가를 만났다. 

장세현 작가는 문학을 전공했으나, 미술에 관심이 많아 글도 쓰고 집적 그림도 그리다가 스스로 이름 붙인 ‘은지화’ 그림 양식에 빠져 엄청난 양의 작업을 소화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 작품은 ‘빗살무늬토기의 추억’(33×49.5㎝, 은지에 한지 배접)
장세현 작가는 문학을 전공했으나, 미술에 관심이 많아 글도 쓰고 집적 그림도 그리다가 스스로 이름 붙인 ‘은지화’ 그림 양식에 빠져 엄청난 양의 작업을 소화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 작품은 ‘빗살무늬토기의 추억’(33×49.5㎝, 은지에 한지 배접)

문학 전공 뒤 ‘시’로 등단
고구려 벽화, 민화, 미술사 등이 그가 고민해서 내놓은 문학작품들의 주제다. 서양미술은 물론 한국미술을 포한한 동양미술에도 조예가 깊다. 그림동화책도 냈을 정도다. 

“은지화는 물론, 문학작품에도 동그란 얼굴을 가진 새가 많이 등장하죠. 주변에서 ‘장세현 작가의 새’라면서 ‘장새’라고 부릅니다. 하하하.”

은지화를 말하자면, 그의 손끝이 창세기요 하나의 세계이자 우주다. 따지고 보면, 우주에 대해 품은 그의 이상은 유년시절에서 비롯됐다. 충북 영동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란 그는 면 단위 소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하고 나서야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은지화 속에 담긴 달항아리와 달, 옹기종기 모인 작은 집들 사이 빼쭉 내민 십자가를 떠받친 종탑, 나무와 새, 이름 모를 알록달록 꽃들,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빛깔의 밤하늘. 

“어릴 때나 지금이나, 밤하늘을 보고 있자면 인간이 얼마나 미약하고 작은 존재인지 새삼 느끼곤 하죠. 밤하늘이 지닌 어떤 신비감이라고 할까요.” 

문학을 전공한 뒤 ‘시’로 등단했다. ‘사회평론 길’ 기자 등을 거쳐 먹고살기 위해 당시 호황을 누렸던 아동문학이라는 길을 선택했다고. 

글을 쓰는 작가의 길을 걸으면서도 지난 수십 년간 그림 동호회에서 활동했다. 취미 삼아 수채화를 그리다가 어느 날 화가 이중섭(1916~ 1956)이 은박지에 그린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담뱃갑 은박지’에 그린 그림
평안도 유복한 환경 출신인 이중섭은 6·25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피란민 신세가 되면서 궁핍한 생활을 면치 못했다. 당시 담뱃갑에 들어있던 은박지에 그린 그림 3점이 뉴욕 현대미술관에 걸리면서 ‘이중섭은 은지화’라는 명제가 생겼다. 

이중섭은 은박지에 날카로운 것으로 새긴 뒤에 잉크를 칠하고 닦아내면 파인 곳에만 잉크가 스며든다는 것을 이용했다. 

‘물방울 기법’으로 달을 표현한 작품 ‘달새’(33×44㎝, 은지에 한지 배접)
‘물방울 기법’으로 달을 표현한 작품 ‘달새’(33×44㎝, 은지에 한지 배접)

장세현은 쿠킹호일에 한지를 배접한 뒤 아크릴물감을 여러 번 겹쳐 올린다. 그 기법 또한 다양하다. 

“이중섭은 무엇으로 선을 표현했을까, 여러 가지 궁리를 했어요. 연필로 그리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만, 여러 시행착오 끝에 펜촉에 볼이 장착된, 우리 모두가 써 본 그 볼펜이 최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하하하.” 

하얀 몸체에 검정, 파랑, 빨강 등의 뚜껑이 덮인 그 볼펜이다. 장세현의 은지화에서 선은 호일이 눌려 들어가면서 새겨진다. 음각이다. 그래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특유의 질감이 주는 느낌을 마음속에 새기지 못한다. 

물감을 흡수하지 않는 호일에 색을 입히는 작업이란 무엇일까. ‘물방울 기법’은 색깔이 다른 아크릴물감의 질량을 이용해 표현하는 방식이다. 방울방울 떨어뜨린 뒤 저절로 마를 때까지 기다리고, 다시 반복 작업을 한다. 

스스로 배우고 깨치길 10여년 
“은지화 작업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특히 물방울 기법이 그렇지요. 질량이 다른 색깔의 물감을 한 방울, 한 방울 떨어뜨리되 양을 달리 하면 같은 파란색이라도 방울마다 다른 색깔의 파란색으로 표현이 됩니다. 특히 흰색 물감 활용에 따라 오묘한 차이를 보이죠.”

물방울 기법은 질감 표현에도 탁월하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튀어나온다. 만지고 싶다는 욕망. 특히 물방울 기법은 꽃잎을 얹어 놓은 듯, 물감을 덧칠한 듯, 색종이를 붙여 놓은 듯하다. 이에 손가락이 먼저 반응한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검지가 은지화를 향해 뻗는다. 

은지화의 매력에 빠진 지 10여년. 그는 스스로 배우고 깨치며 작업한다. 장 작가는 은지화 매력을 확산시키고 함께 나누고 싶어 은지화 미술동호회 ‘어울림그림마당’을 운영하고 있다. 

“그림은 갤러리에 걸리면 상품이 됩니다. 작가가 잘 그렸다고 여기는 것과 관객이 보는 시각도 다르겠죠. 은지화를 보고 위안을 얻고 좋다고 느끼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저서로 창작그림책 ‘엉터리 집배원’, 은지화 창작그림책 ‘누구나 처음 엄마가 된다’, 인문교양서 ‘우리 화가 우리 그림’ ‘한눈에 반한 미술관’ 등이 있다. 최근 30년간 써 온 시를 엮어 ‘부끄럽지만 숨을 곳이 없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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