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가 FTA 시대, 여성의 창의·협력이 농업·농촌 지킨다

세계 무역환경은 양국 간 FTA(자유무역협정)를 넘어 RCEP, CPTTP 등과 같은 다수 협상국 간 규범을 정하고 이를 활용하는 일명 ‘메가 FTA’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무한경쟁의 글로벌 무역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농업의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력 강화가 시급하다. 정부는 이 같은 변화에 대응하고자 청년농업인 육성에 주력하고 있으며, 특히 최근 들어 참신한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농업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청년 여성농업인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본지는 전국 각지에서 대한민국 농업경쟁력을 높이고 있는 여성, 특히 청년 여성농업인을 찾아 미래 한국농업의 가능성과 희망을 제시한다. 

 

⑤ 강원 평창 토종다래 지킴이 평창연화농원 김정숙·김은솔 모녀

 다래너미길 청산옥 줄기에 펼쳐진 ‘다래별곡’
 트렌드 따른 홍보전략 연구 통해 새 시장 열어
‘평창토종다래연구회’ 이끌며 지역 다래재배 선도

 

오랜 역사의 토종다래 종자를 지켜온 강원 평창연화농원 김정숙(사진 오른쪽)·김은솔 대표는 전 국민 건강 식단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오랜 역사의 토종다래 종자를 지켜온 강원 평창연화농원 김정숙(사진 오른쪽)·김은솔 대표는 전 국민 건강 식단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애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애 살어리랏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청산별곡’의 첫 소절이다. 이 노래는 고려시대 속요로 600년 이상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실 도피의 비애를 노래했지만, 머루와 다래의 등장이 인상에 남는다. 

토종다래 꽃이 개화기에 접어든 6월 초.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다래너미길 청옥산(육백마지기) 줄기에 둘러싸인 해발 1277m 고산지대에 펼쳐진 다래밭을 찾았다. 싱그러운 꽃향기와 함께 김정숙(61)·김은솔(35) 평창연화농원 두 대표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곳이다.  

토종닭? 달래?…토종다래 인지도 낮아 
“토종다래는 수입농산물의 대량 유통에 밀려 재래시장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미미했죠. 최근 건강식단 바람을 타고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습니다.”

김정숙·김은솔 대표는 ‘평창토종다래연구회’를 이끌며, 토종다래종자를 보전하고 이를 활용한 가공식품을 만들어 새 시장을 열었다. 

명이나물 농사를 짓던 김정숙 대표는 교통사고로 몸이 좋지 않아 농업을 포기하려고 했다. 한편으론 바른 먹거리에 미련이 남았다. 마침 강원도농업기술원에서 토종다래 재배기술을 보급하고 있었다. 갈림길에서 큰딸 김은솔 대표에게 토종다래 재배를 권유했다. 

김은솔 대표는 “어릴 때부터 흔하게 접했던 다래이기에 토종다래 역시 별 선입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서 “하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쳤다”고 돌이켰다. 

“토종닭이냐, 달래를 키우냐, 미니 키위냐는 반문에 괜히 힘이 빠지곤 했어요. 그럴 때마다 ‘인지도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며 스스로를 다잡았습니다.” 

다래 재배를 시작한 건 7~8년 전이다. 5년여 전부터 토종다래 알리기에 나섰다. 먼저 체험장을 열어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털이 없고 풋대추만한 크기에 껍질째 먹을 수 있는’ 토종다래가 일반 참다래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소비자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김은솔 대표는 “토종다래는 우리나라 산에서 자생하는 과일로 다래 또는 산다래로 불린다”면서 “참다래 또는 양다래로 불리는 키위는 뉴질랜드에서 개량된 과일”이라고 강조했다. 

평창연화농원은 잼, 숙성청, 수제청 등 가공품을 통해 사계절 내내 소비자들에게 토종다래를 선보인다.
평창연화농원은 잼, 숙성청, 수제청 등 가공품을 통해 사계절 내내 소비자들에게 토종다래를 선보인다.

 

껍질째 먹는 토종다래, 영양가 ‘탁월’
토종다래는 키위와 비슷하지만 당도가 더 높고, 신맛이 적어 젊은 층이 선호한다. 비타민과 무기질, 유기산, 기타 기능성 성분을 다량 함유해 항알레르기와 면역 과민반응, 아토피 등 개선에도 효과가 있다. 풍부한 식이섬유로 변비를 개선하고 레몬보다 많은 비타민C를 함유해 항염, 해열, 비염, 이뇨작용, 소화촉진에도 탁월하다. 

한국의 산에 널리 자생했던 열매인 만큼 기록이 남아있는 문헌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동의보감’에는 ‘성질이 차갑고 맛은 새콤달콤하며 독이 없다. 심한 갈증과 번열증(煩熱症)을 해소하고, 위염과 같은 증상을 치료한다’고 기록돼 있다. 

평창연화농원은 본격적인 수확기에 들어서는 9~10월은 생과로, 11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토종다래로 만든 수제청과 숙성청 등을 통해 사계절 내내 소비자들과 만난다.

김정숙 대표는 “보존제 등 다른 첨가물을 넣지 않고 토종다래 고유의 맛을 고집한다”면서 “현재 잼이나 수제청은 온라인, 직거래 위주지만 해썹(HACCP)인증 평창군가공지원센터를 이용해 생산량을 늘려 기업이나 카페 등으로 유통망을 넓힐 계획”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10만909㎡(3300평) 규모의 평창연화농원에선 ‘청산’ ‘광산’ ‘그린볼’ ‘그린하트’ ‘스키니 그린’ ‘청가람’ ‘대보’ ‘오텀센스’ 등 강원농업기술원과 산림청이 보급한 10여종의 토종다래가 영글고 있다. 연간 수확량만 5~6톤에 달한다. 

“숙성청은 여름엔 얼음 동동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마시면 좋아요. 잼은 플레인요거트에 섞어 먹거나 빵에 발라 먹어도 달달하고 부드럽죠. 수제청은 샐러드나 소스에 사용하면 상큼할 뿐 아니라 겉절이나 열무김치 등에 넣으면 시원하고 개운한 맛이 나요.”

평창연화농원 체험장에서는 수제청 만들기와 스토리텔링 등 다양한 체험활동이 이어진다. 이곳은 김은솔 대표가 회원으로 활동 중인 ‘와우미탄협동조합’ 여행·관광프로그램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역 청년들이 모인 와우미탄협동조합은 농업·농촌 관광 활성화를 위해 체험·관광 등을 연계한 6차 산업화로 여행·관광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평창연화농원은 가까운 미래에 그래놀라에 동결건조한 토종다래를 넣은 간편식 등을 선보일 계획이다. 지난해부터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급식에 최고급 생과를 납품하는 등 공급망을 넓히고 있다. ‘강원다래생산자연합회’ 사무국장인 김정숙 대표는 회원들이 생산하는 다래를 경기도까지 학교급식을 확대할 계획도 세워놓았다.

​국내 육성 품종 자생 다래 특성
​국내 육성 품종 자생 다래 특성

 

기후변화 대응…수확기 다른 다품종 생산
평창연화농원이 다양한 품종의 토종다래를 재배하는 까닭은 수확시기가 달라서다. 또 가을태풍 등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나름의 전략이다. 조생종 다래 ‘청산’ 수확기는 9월초, 중생종 다래 ‘광산’과 ‘그린하트’는 9월 중순, 만생종 다래 ‘그린볼’과 ‘청가람’은 10월 등이다. 

‘청산’은 강원도 대표 품종으로 생산량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높고, 가공식품에도 널리 활용된다. 껍질이 얇고 맛과 향이 좋아서다. 하지만 가을태풍 등 수확시기에 피해가 가장 큰 품종이기도 하다. 그래서 산림청이 개발한, 낙과율이 낮은 ‘오텀센스’ 품종을 도입했다.

김정숙 대표는 “다래는 기후 변화에만 잘 대응한다면 친환경으로 키울 수 있고 병해충에 강해서 재배하기 수월하다”며 “게다가 서서 할 수 있는 농작업이라 몸에 큰 무리가 없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강원도, 경기도를 넘어 제주도까지 전 국민이 싱싱한 토종다래를 맛보는 날이 곧 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정숙 대표는 1989년 결혼 이후 평창군농업기술센터를 자주 오가며 정보를 습득하고, 농업인단체에도 가입해 활동했다. 더 나아가 여성농업인단체를 이끌며 여성농업인으로서 역량을 발휘했다. 오랫동안 쌓아온 농업기술과 리더십 역량은 평창토종다래연구회장을 맡음으로써 빛을 발하고 있다.  

김정숙 대표는 “5년 전 강원농업기술원에서 강소농교육을 받고 전국강소농대전에 참석해 다래 제품을 완판하면서 당시 강소농담당 선생님의 응원이 다래 재배에 대한 자부심과 제품개발에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강원도 다래 재배는 전국 생산량의 77%를 차지한다. 2008년부터 품종육성, 재배기술, 가공·상품화 연구와 보급을 통해 강원도의 새로운 소득작목으로 육성해 오고 있다.

강원도농업기술원이 2021년 강원다래생산자연합회’를 결성, 통합 브랜드를 개발해 평창, 원주 등 지역특화 생산단지를 중심으로 고품질 재배기술, 분말·청·잼 등 가공 상품화, 유통 전반에 걸쳐 컨설팅을 추진한 결과, 생산량과 소득이 50~60% 증가했다.

정햇님 강원도농업기술원 토종다래담당연구사는 “최근 아이들의 아토피와 면역조절, 변비해소 등 기능적인 측면을 보고 토종다래를 찾는 소비자들이 많아졌다”며 “학교급식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면 향후 토종다래 시장은 점차 확대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 미니 인터뷰 - 김용운 강원다래생산자연합회장

“강원 토종다래 유통체계화 필요”

-토종다래 수확 후 관리 주의점은.
복숭아도 한 나무에 수확하더라도 맛이 다르다. 그 이유는 일조량 때문인데 토종다래도 식별은 어렵지만 당도가 8Brix 이상일 때 수확해야 16Brix 이상의 맛좋은 토종다래가 된다. 이때 덜 익은 다래는 저온저장고 10℃에서 후숙과정을 거치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온전한 후숙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수확시기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재배 농가들끼리 수확시기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수확시기 판정교육을 꾸준히 받고 있다

-강원다래 전망은.
토종다래가 전국적으로 신소득 작물로 호평을 받으며 농가소득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충북 충주에서 과수 화상병이 발생했을 때 대체소득작물로 다래를 식재하게 했다. 사과로 이미 유통인프라가 구축돼 다래 유통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던 반면 강원도는 10여년 전에 이미 토종다래 재배가 시작됐지만 체계적인 유통 시스템이 부족한 실정이다. 

토종다래는 수확기 낙과 방지를 위해 퇴비를 액비로 만들어 한 달에 2번씩 양분을 공급해야 한다. 품질 좋은 다래를 위해 퇴비차(유기물 퇴비를 물과 섞어 유용한 미생물을 배양해 만든 액비)를 평창지역까지 확대 공급할 예정이다.

-평창연화농원과 인연은.
김정숙·김은솔 대표와 강원농업마이스터대학을 함께 다니며 ‘생과시장을 선점해 보자’는 취지로 토종다래 브랜드화에 힘을 모았다. 

연구회는 생산 농가들의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자 결성했다. 토종다래 주생산지의 균등한 발전을 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평창지역에 이론수업과 현장교육을 병행한 재배기술을 전수했다.

평창연화농원에서 개발한 음료의 맛은 단연 으뜸이다. 

앞서 맛과 향이 좋은 ‘청연’ 품종을 권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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