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나봅시다 - 개그맨 엄태경의 2막 ‘공연기획 크리에이터’

‘수업시간에 몰래 과자 먹는 유형ㅋㅋㅋㅋ, 학교 쉬는 시간에 꼭 있는 친구 유형ㅋㅋㅋㅋ, 건망증에 걸린 외계인들ㅋㅋㅋㅋ, 몸으로 삼각김밥 만들기ㅋㅋㅋㅋ….’ 뭔 소리인가 싶다. 개그맨 엄태경이 후배 개그맨 복현규와 함께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어쩔지구(UZZL)’에 업로드된 동영상 제목이다. 한 케이블TV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으로 제작된 이 콘텐츠는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소문이 났다. 한동안 공중파에서 볼 수 없었던 개그맨 엄태경을 만나 공연기획 크리에이터로서의 요즘 일상을 들어봤다. 

 

건망증에 걸린 외계인들?…어린이 대상 유튜브 ‘어쩔지구’ 기획
 지역문화 전문가 과정 수료 뒤 전국 30여곳 찾아다니며 공연
‘문화예술 본질은 사람’ 깨닫게 해준 도고면 신언리 주민들에 감사

개그맨 엄태경은 문화소외지역 지원사업에 대해 “10명이 채 안 되는 아이들이라도 공연을 보고 싶어 한다면 어디든 찾아갔다”고 돌이켰다. 
개그맨 엄태경은 문화소외지역 지원사업에 대해 “10명이 채 안 되는 아이들이라도 공연을 보고 싶어 한다면 어디든 찾아갔다”고 돌이켰다. 

아산 코미디홀 관장 맡아 
어쩌면 인생이란 보이지 않는 끈이 우연이란 구실을 내세워 가야할 길로 이끄는 과정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여기 연기자가 꿈이었던 한 미소년이 있다. 1988년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 아역 출연 등 소년은 꿈을 좇아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서울예전(현 서울예대) 입학은 운명의 장난이랄까. 개그동아리에 가입하면서도 장차 개그맨으로서 얼굴을 알리게 될 줄 생각지 못했다. 

당대 최고의 동아리라 불렸던 개그클럽 회장직을 맡게 된 건 그나마 성과였는지도 모른다. 개그맨 엄태경은 그렇게 KBS 공채 개그맨 16기로 본격적인 코미디언 활동을 시작했다. ‘개그콘서트’가 한창 인기 있던 시기인 2000년대 초반부터 4인4색, 충무로, 보디가드, 마이걸, 버퍼링스 등 다양한 개그 코너에 참여하고, 이에 힘입어 방송활동도 했다. 그러던 중 평소 앓던 근골격계질환이 악화하면서 모든 방송 활동을 중단했다. 

“공모를 통해 2014년 충남 아산 코미디홀 관장으로 부임하면서, 30대라는 이른 나이지만 후학양성에 힘을 보태겠다는 뜻을 세우게 됐습니다.” 

코미디 공연날은 주민들 잔칫날
아산 코미디홀은 농협창고를 개조해 만든 코미디 전문 공연장이다. 그는 아직도 처음 도고면에 도착했을 때 직면한 생소한 광경에 적지 않게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고. 당진까지 쭉 펼쳐진 황량한 논밭 위에 덩그러니 세워진 공연장 하나. 대전이 고향인 그에게 시골생활의 추억이란 방학 때 놀러 갔던 외갓집이 전부였다. 

“막연했죠. 과연 내가 이곳에서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컸고요. 전국에서 모인 12명의 개그맨 지망생 친구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만들어 올린 첫 코미디 공연날은 마을 주민들의 잔칫날이었죠. 온 마을 주민들이 모여 함께 웃고 즐기던 그날의 추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가 발굴한 그때 그 친구들은 KBS개그우먼 이가은, SBS개그맨 유재필, 유명 BJ 겸 유튜버 감스트, 기현주, 김예림, 영화배우 김대한, 남태부 등이다.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당시 잊힌 마을을 살려보겠다고 개미 한 마리 얼씬거릴 것 같지 않은 곳에서 버스킹을 했다. 또 간신히 명맥만 잇고 있는 오일장을 한번 살려보겠다고 춤추고 노래했다. 전교생이 10명뿐인 초등학생들을 위해 방과후 방송과 연기체험 교실 등을 운영하기도 했다. 

문화소외지역 공연프로그램 기획 
엄태경은 지역문화에 관심을 두고 전문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인 세종시를 드나들며 전문가 과정을 수료한 뒤에는 문화소외지역에 적합한 공연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집념으로 전국 곳곳 여러 기관들을 찾아다녔다. 그중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진행한 과학융복합공연 지원사업에 선정, 지역 예술인들과 협업해 찾아가는 ‘남극이야기’라는 공연을 만들게 됐다. 

남극이야기는 극지방과학과 예술을 결합한 융복합 공연이다. 과학문화바우처사업을 통해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방과후 돌보미집부터 전남 완도군에서 배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노화도에 자리한 노화초등학교까지, 전국 서른 군데가 넘는 문화소외지역을 찾아다니며 공연을 진행했다. 

“태어나서 공연이라는 것을 처음 보는 친구들이 의외로 많았어요. 놀랍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랬죠. 그래서 더 열정적으로 찾아다녔습니다.” 

아산지역에도 관심을 두고 주변을 돌아봤다. 일제강점기 근대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던, 볼거리 많던 동네는 언젠가부터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아산 도고’ 옛 모습 잃어 씁쓸
지자체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아 지역관광을 다시 활성화시키겠다는 명목 아래 역사적 건물들을 부수고, 깔끔하게 보이겠다며 새시를 새로 달았다. 오래된 건물이 있었던 자리는 주차장 아스팔트로 변했다. 간판정비사업에 40여년 된 간판들이 같은 모양의 새 것으로 갈리고, 도로확장사업에 50년 된 이발소가 새 건물로 옮겨졌다. 

지역문화 전문가로서, 공연기획자로서 엄태경은 다시 팔을 걷어붙였다. 사라져가는 아산과 도고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기록하고,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흑백사진처럼 이곳을 추억하길 바랐다. 이는 도시재생사업에 참여해 예비사업을 진행한 까닭이기도 하다. 

1970년대 후반 최고의 신혼여행지였던 도고온천의 추억을 되살리면서도, 최근 유행하는 레트로 감성을 덧입힌 ‘웨딩 포토 스폿’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코미디홀에서 보낸 지난 7년의 시간, 그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하마터면 공연쟁이로, 행사쟁이로, 코미디기술자로 남을 뻔했는데 공연기획 크리에이터로서 설 수 있도록 원동력이 돼준 건 마을주민들이었죠. ‘문화예술의 본질은 사람들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도고면 신언리 주민들이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