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하는 조국이여! 힘을 내소서. 그리고 통일을 이루소서. 늙어가는 실향민이 죽기 전에 뛰놀던 고향땅을 밟아 보게 하소서.’ 북청물장수로 잘 알려진 함경남도 북청군이 고향인 동열모(董㤠模) 선생의 회고록 마지막 쪽에 통일의 염원을 담은 글이다. 

선배님이 지난달 96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했다. 선배는 자신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가족에게 당부해 조문조차 할 수 없었다. 8.15해방이후 북쪽은 공산당이 점령하고 토지개혁이 강행된 후 지주(地主) 반동분자로 몰려 시달림을 받다 동 선생은 1947년 38선을 넘어 남한으로 오게 됐다. 그는 1957년 농사원(농촌진흥청 전신)에 몸담은 이후 남다른 영어실력과 강한 추진력으로 UN저개발국지원사업(UNDP)을 맡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또한 지역사회개발사업과 4-H회원의 미국파견훈련 등 지도사업의 산증인이며 한국 농촌근대화의 주역이었다. 이러한 농촌개발 모델이 이후 새마을운동 추진의 원동력이 됐다. 

선생은 평소 농촌여성신문 애독자로 남다른 애정과 조언도 아끼지 않으셨다. 갑작스런 비보에 애통함을 금할 길 없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평소 글쓰기를 좋아하신 선생은 농촌진흥청 퇴직자 모임인 농진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희망농촌>에 ‘늙어가는 사람의 새해 소망’이란 글을 남기고 한 달 후에 떠나셨다. 늙을수록 ‘낮은 자세로 겸손’을 강조했다. 겸손하면 모든 사물이 긍정적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제 분단 없는 하늘나라에서 북청 고향땅으로 훨훨 날아가 이 봄을 마음껏 즐기시길 빕니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