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과 사람 – 전북 김제 ‘고추와육종’ 윤재복 대표

고추재배 시 가장 문제되는 병해는 탄저병이다. 그간 숱한 연구와 품종 개발에도 해결되지 않은 숙제다. 지난 2022년 농촌진흥청 주관의 차세대바이오그린21사업을 통해 세계최초로 고추 탄저병 저항성 품종이 개발됐는데, 민간기업인 고추와육종 윤재복 대표도 그 연구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윤 대표는 최근 농진청 농업유전자원센터를 방문해 그간 육성한 고추 유전자원 2만 점을 유전자은행에 입고했다.
윤 대표는 “20여 년의 고추 육종과정에서 발견한 유전자원을 입고시켰다”며 “최대 10년의 장기보존 기간이 지나면 모든 기업이 활용할 수 있게 개방하겠다”고 선언했다.
전북 김제의 시설하우스 1천 평, 노지 1500평에서 고추 신품종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윤재복 대표를 만나 고추 육종 얘기를 들어봤다.

탄저병 저항성 고추품종 개발 주역 윤재복 대표.
탄저병 저항성 고추품종 개발 주역 윤재복 대표.

탄저병 저항성 고추 개발해 농약·노동력 절감
농촌여성, 기능성 농산물로 부가가치 높여야

- 육종에 관심 갖게 된 계기?
농대에서 육종학을 배웠다. 역병저항성, DNA마커 등 여러 학문 가운데 고추 탄저병 저항성에 집중했다. 그로부터 27년간 고추만 육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소비가 활발하고 기회가 많은 작목이 고추라고 생각한다.

고추와육종에서는 종자회사와 같은 시스템으로 장비를 갖추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인증된 종자연구개발서비스를 하고 있다. 연구·개발에 투입된 직원만 11명이다. 2002년 농진청과 협업한 차세대바이오그린21사업 식물분자육종사업단 연구과제를 통해 탄저병 고추를 최초 개발했다. 2012년 탄저병 저항성 고추 품종을 개발했고, 2015년 농가에 보급해 호응을 얻었다.

- 탄저병 저항성 고추는 어떻게 개발됐나?
우리나라 고추 재배종이 캡시쿰 안눔(Capsicum annuum)이 많다. 안눔과 안눔끼리는 교배가 잘 되지만 자체적으로 탄저병 저항성이 없다보니 고추들이 전부 탄저병에 걸렸다.

전 세계에 분포된 고추종자 1500종을 구해 다 심어서 연구해봤다. 남아메리카에서 구한 고추 몇 종만 캡시쿰 바카툼(Capsicum baccatum) 유전자였다.

수없이 많은 안눔 가운데 바카툼과 교배 가능한 안눔을 찾아 탄저병 저항성 고추를 개발한 것이 ‘AR탄저박사’다. 2015년부터 탄저박사 육묘를 생산했는데, 탄저병이 덜 오는 고추를 생산하게 됐다고 하더라. 탄저병 방제에 평균 10번 정도 농약을 살포해 농약값을 절감시킨다고 했다. 고추와육종에서는 탄저병 저항성이 있는 탄저박사뿐 아니라 오이모자이크바이러스와 칼라병, 역병에 강하고 농업현장에서 검증된 탄저병 저항성 고추 품종을 육종하고 기술이전에 주력하고 있다.

- 고추재배 농촌여성에게 솔깃한 이야기다.
우리 회사는 연구·개발만 하고 영업을 안 한다. 주요고객은 B2B(기업과 기업 사이에 이뤄지는 전자상거래)로 계약한 국내외 종자회사인데, 개인 농업인에게도 직거래를 하고 있다.

B2B로는 국내 종자회사가 많은데, 요청이 들어오면 기술이전을 해주고 있다. 탄저병 저항성 고추종묘를 판매하는 종자회사는 전부 고추와육종에서 기술이전해 갔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를 위해 국립종자원에 직접 개발한 고추품종을 품종보호등록 했고 특허출원도 마쳤다. 일본 등 외국회사에서도 탄저병 저항성 고추품종을 기술이전 받아 판매수익금의 5~15% 로열티를 내고 있다.

개인 농업인들에게는 중간 유통마진을 줄여 시중보다 저렴한 값에 판매한다. 요즘 농업인들은 ‘AR탄저박사’를 종이에 적어 와서 달라고 한다. 충북 음성·괴산, 경북 영양·안동, 전남북 고창·영광 등 전국 농가와 직거래하는데, 판매 목적이 아니라서 많이 판매하려고 하진 않는다.

- 민간육종가로서 품종 개발에 애로점은?
채종을 전문으로 하는 농가가 없어 인도, 중국, 미얀마에서 채종을 해오는 실정이다. 종자연구를 위해 유전자원을 수집하는데 공항 검역단계에막혀 운영이 쉽지 않다. 국내 채종회사를 만들어야 되는데 인프라가 없고 인건비도 비싸다. 국내 채종의 기반을 다지는 사업을 지자체와 기업에서 농가들과 협업해 고추종자를 생산해야 된다. 채종지를 다변화하고 국내 채종산업을 일으키는 게 꼭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인력을 육성해야 하고, 젊은 사람들이 농업계에 들어와야 한다.

- 우수한 품종이 개발되면 수출길도 열린다.
지난해 마무리된 골든시드프로젝트에 거는 기대가 크다. 종자산업도 전 세계 시장을 내다보고 가야 한다. 다만 수출용 품종을 개발하려는데 수출하려는 나라의 종자값이 우리나라 보다 훨씬 저렴한 경우가 있다. 값싼 종자를 개발하면 안 되고, 외국에서도 만들지 못하는 고부가가치 종자를 개발해 비싼 값을 받아야 한다. ‘살리초’라는 품종은 고춧잎을 생산하는 고추다. 일부러 열매가 안 달리게 만들었다. 고춧잎에 당뇨에 효능이 있다는 연구에 주목해 개발한 품종이다.

농촌여성은 먹거리에 관심이 많아 농산물의 기능성도 생각한다. 과거에는 생산만 잘 하면 판매가 됐지만 앞으로는 소비자와 농업인이 양방향으로 소통해야 된다. 같은 상추여도 칼륨이 적은 품종이 신장 기능이 약한 사람에게 좋은 것처럼 소비자는 비싸더라도 기존에 먹던 채소보다 건강에 좋다면 가치를 산다. 농업인들이 기능성 채소작물에 관심 갖고 재배해야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 이러한 트렌드를 감지하고 활용할 수 있는 주역은 농촌여성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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