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호 박사의 날씨이야기-14

윤성호 박사의 날씨이야기-14

‘산내린바람 맞으면 잔디 끝도 마른다.’는 속담이 있다. 이 사전에도 없는 산내린바람이 바로 높새다. 높새(綠塞風)는 북동풍의 뱃사람 말이다.
동해에 고기압이 자리 잡고 그 세력을 확장하면 북동풍 또는 동풍이 분다. 이 바람이 습기를 잔뜩 머금은 채 태백산맥의 정상을 향해 불어 올라가면 1,000미터마다 섭씨 5도 가량 기온이 떨어진다. 이 바람이 산의 정상 부근에 이르면 차가워진 공기는 구름을 만들어 비를 쏟고는 건조한 공기로 바뀐다. 이 건조해진 공기가 서쪽 산록을 타고 내리 불면, 이번에는 반대로 1,000미터마다 섭씨 10도 가량 기온이 올라간다. 이렇게 산을 사이에 둔 국지적 기상현상을 유럽에서는 휀(Foen)이라고 하고, 아메리카에서는 치누크(Chinook)라고 한다. 경기, 충청지방에 동풍계열의 바람이 불면 시야가 유난히 맑으며, 기온이 높고 몹시 건조하다. 이런 날 반소매차림으로 동해안으로 여행을 떠난다면 대관령에서는 비를 만날 것이고, 강릉에 도착하면 갠 하늘이지만 사람들이 겨울옷 차림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예로부터 농가에서 샛바람(東風)을 살곡풍(殺穀風)이라고 부르는 데는 그 까닭이 있다. 높새바람이 불면 동해안에는 저온 피해를, 그리고 태백산맥 서쪽지방에는 고온과 더불어 건조공기의 피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럴 때 이삭이 패거나 꽃이 피는 농작물은 결실이 좋지 않게 된다. 꽃가루받이와 결실 과정에서 공기가 너무 건조하면 꽃가루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이 그 원인이다. 또 태풍이 북상할 때는 북동풍이 산을 넘어 불어오기 마련이어서, 이 때 갓 패는 벼이삭이 하얗게 마르는 백수현상도 높새바람 때문이다. 그 때문에 높새바람을 곡식을 죽이는 바람으로 여겨왔다. 그 건조의 정도는 가뭄에 잘 견디는 잔디의 잎 끝마저 마르게 할 정도라고 하지 않던가.
반대로 동해안에 서풍이 불면 기온이 올라가는 것은 높새바람은 아니지만 같은 이치다. 겨울철에 동해안이 서해안보다 기온이 높은 이유도 휀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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