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  시론

동 열 모
미국주재 대기자

‘버지니아 공대 사건’이 발생한지 2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오늘에 이르러 되새겨 본 이 사건은 한국사회의 현실과 또렷한 대조를 이루며 더욱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숲은 멀리서 봐야 객관적으로 평가된다는 논리와 같습니다.
2007년 4월 16일에 일어난 이 사건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교내 참사였는데 이 엄청난 사건을 다룬 미국사회의 성숙한 모습이 우리에게 매우 유익한 메시지를 전해 줄듯 싶어 여기에 그 사건 현장을 다시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사건은 32명이나 되는 무고한 동료 학생을 사살하고 자신도 자살한 참사였는데, 이 사건의 범인이 이 학교에 다니는 ‘조승희’라는 한국 출신 학생이라고 일제히 보도되어 우리 동포들은 1992년에 일어난 LA폭동을 연상하면서 혹시라도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안절부절 했습니다. 이렇게 공포에 휩싸였던 우리는 이때에 미국 사회가 보여준 합리적인 사건 처리에 비로소 안도했던 것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 미국 사회와 언론은 순리대로 사건을 처리하고자 애쓰는 한편 불안해하는 한인들을 오히려 안심시키려 했습니다. CNN방송은 “한인들의 근면성과 교육열이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시키고 있다”면서 우리를 위로 했고, LA폭동을 경험한 그곳 언론은 “개인이 일으킨 이 사건을 인종이나 국적과 연관시켜서는 안되며, 이로 인해 한미 간의 우정에 금이 가서는 안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와 같이 미국 언론은 사건을 흥미 위주로 다루거나, 대중을 선동하며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사리를 분명히 하며 차분히 보도하는 모습이 우리나라의 언론과 확연히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사건 현장에서 거행된 추모행사도 우리를 숙연하게 했습니다. 희생자 추모행사에 세워놓은 위패는 32개가 아닌 33개였는데, 그 중에는 ‘2007년 4월 16일 조승희’라고 쓰여진 위패도 나란히 세워졌고, 그 옆에도 성조기와 교기, 그리고 조화도 똑같이 놓여졌으며, 하늘로 띄워 보낸 풍선도 32개가 아닌 33개였다고 합니다. 사실 미국도 사람 사는 곳이기에 어찌 분노와 복수심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면서도 그들이 보여준 이 성숙한 사건처리에서 우리는 ‘용서와 화해’의 진수를 보았고, ‘자제와 이성’의 힘이 얼마나 숭고한지 체험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2002년에 일어난 '의정부 여학생 치사 사건'을 되새겨 봅니다. 의정부 사건은 아시다시피 두 명의 여학생이 공무집행(훈련) 중에 있던 미군 장갑차에 치인 과실치사 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몇 달 동안 반미 촛불 시위를 계속하다가 급기야 훈련 중에 있던 미군 탱크에 기습적으로 올라가 성조기를 불태우기까지 했습니다.
만일 한국에 거주하는 어느 외국인 학생이 여러 우리 학생을 사살했다면 우리 사회는 그 범인의 가정이나 그 나라 사람들이 거주하는 동네를 그냥 놔뒀겠습니까.

이 기회에 우리는 외국에서 시집온 다문화 가정이나 외국 노동자를 현재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기 주장대로 안되면 서슴없이 욕설과 폭력을 휘두르며, 심지어 10만 선량(選良)이라고 자부하는 국회의원까지도 신성한 의사당에서 추태를 부리는 오늘의 우리사회를 이 기회에 뼈저리게 자성해 봅니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