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247)

“짐(순종)이 스스로 결단을 내려 이에 조선의 통치권을 종전부터 친근하게 믿고 의지하던 이웃나라 대일본 황제폐하에게 양여하여 밖으로 동양의 평화를 공고히 하고, 안으로 8역(8도)의 민생을 보전하게 하니, 그대들 대소 신민들은 나라형편을 깊이 살펴서 번거롭게 소란을 일으키지 말고, 일본제국의 문명한 새 정치에 복종하여 행복을 함께 받으리라.”

이 글은 조선조 <순종실록>(순종3.1910)의 8월29일 기사(부분)다. 바로 우리나라가 일본제국에게 국권을 강탈 당하고, ‘치욕을 당한’ 바로 그날 -1910년 경술년 8월29일-의 기록이다.
그래서 정부가 이날을 잊지 말자며 매년 8월29일을 ‘국치일(國恥日)’로 제정해 놓았지만, 나라의 주권이 통째로 일제에 넘어간 그날을, 112년이 지난 오늘날 기억하는 국민은 별로 없다.

# ‘국치일’이란, 말 뜻 그대로 ‘나라가 치욕을 당한 날’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4355년(단군기원)의 오랜 역사를 이어오며 많은 외세의 침략을 받았었다. 저 멀고도 먼 삼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에는 중국의 수·당·위·한나라로부터 50여 차례의 끊임없는 침략을 받았다. 그뒤 고려 때에는 거란, 몽골, 홍건적이 쉼 없이 국경을 침략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 등 크고 작은 외침을 7회 정도 받았다.

특히 임진왜란(1592년) 때는, 왜군에게 한양성이 함락돼 선조임금이 폭우 속에 평안도 의주로 피난을 가야 했으며, 병자호란(1636~1637) 때는 인조임금이 버선발로 송파 삼전도에 나아가 중국의 청태종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삼궤구고두례’(인조임금이 청태종에게 세 번 큰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라는 항복의식을 행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일종의 치욕적인 항복의식이었던 ‘삼전도 굴욕’ 사건이다. 일부 학자들은 그런 크고 작은 외세침략 횟수를 993회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 올해의 국치일은, 나라의 주권을 송두리째 빼앗긴 그때 그날로부터 꼭 112년 되는 날이다. 어쩌면 온 국민이 8.15 해방보다도 더 가슴 속에 되새겨 봐야 할 날이어야 할지도 모른다.

1905년(을사년) 일제는 조선총독 이토 히로부미와 소위 ‘을사5적신’(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이 덕수궁 중명전에서 황제의 승인도 없이 ‘을사보호조약’이라 불리는 ‘을사늑약’을 체결한다.(늑약이란 국제법상 효력이 없는, 강제로 맺어진 조약을 말한다) 이완용이 조선왕실의 모든 권한을 위임받아 을사5적신과 그리고 고종 친형인 흥친왕 이재면이 함께 참석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넘겨준 것이다.

황제의 승인도 없는 이 조약의 체결(1910.8.16)로 조선은 모든 주권을 빼앗기고, 일제식민지화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에 의해 이토 히로부미가 살해되자 후임총독인 데라우치와 이완용 총리대신이 이러한 내용이 담긴 합방조약을 세상에 반포하기에 이르렀으니... 이 날이 바로 1910년 경술년 8월29일이요, 대한제국이 멸망한 날이다.

오늘 바로 경술 국치일(8월29일) 아침, 우리가 따뜻한 한 끼 밥상을 앞에 할 수 있음도,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바로 새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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