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246)

1970~80년대에 세계 대중문화-팝의 아이콘 이자 ‘만인의 연인’으로 불린 팝스타 올리비아 뉴튼 존(Olivia Newton John)이 지난 8일,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그녀의 목장에서 30년간 싸워 온 유방암으로 세상을 떴다. 향년 74세.
그녀는 금발에 동그랗고 커다란 눈동자, 파란 하늘에 날리는 것 같은 상큼 발랄한 목소리로 노래해, 1970~80년대 젊은이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었다.

# 올리비아 뉴튼 존은, 1948년 9월26일 영국의 케임브리지에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외할아버지(막스 본), 리고 아버지가 대학장인 내로라 하는 버젓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여섯살 때 가족과 호주로 이주해 성장했다. 그러나 기숙사처럼 엄격한 집안 분위기와 부모님의 이혼으로 받은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음악, 그것도 대중음악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영국으로 다시 건너가 본격적으로 가수활동을 시작했다. 20대 초반에 영국의 유명가수 클리프 리차드의 백보컬리스트로 활동한 그녀는, 1971년 밥 딜런의 원곡을 리메이크 한 노래 ‘이프 낫 포 유(If not for you)’를 히트시키면서, 단숨에 세계 팝계의 주목받는 새별로 떠올랐다.

# 그 이후, 그녀가 연달아 내놓은 컨트리 음악들인 ‘렛 미 비 데어(Let me be there)’, ‘이프 유 러브 미-렛 미 노우(If you love me-Let me know)’등의 곡들은 청순한 그녀의 외모 이미지에 윤기나는 고운 음색과 가창력이 더해져 거침없이 히트 가도를 달렸다.

그 여세를 몰아 1978년 배우 존 트라볼타와 주인공으로 발탁돼 풋풋한 10대의 사랑을 연기한 뮤지컬 영화 <그리스(Grease)>는, 배우로서의 재능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음악형식을 컨트리, 로크 풍에서 팝록, 디스코로까지 확장시키면서 최대의 음악적 성공을 안겨줬다. 그녀의 히트곡 ‘제너두(Xanadu)’와 ‘매직(Magic)’이 이 무렵 나온 노래들이다.

그후 1980년대 마이클 잭슨의 댄스음악 광풍 속에서도 ‘팝의 여왕’으로 꿋꿋하게 살아남아, 1981년 ‘피지컬(Physical)’이란 노래로 “<빌보드>싱글차트 10주간 1위 고수”라는 기네스적 기록을 세우며 건재를 과시하기도 했다. 이 노래는 당시 우리나라 에어로빅 교실의 교과서적인 댄스뮤직이 됐었다.

# 그녀 나이 41세 되던 1989년부터는 음악 외적인 사회분야로 활동영역을 넓혀 유엔 환경운동 민간대사와 아동보호운동가로 활동했다. 특히 자신이 유방암으로 죽을 때까지 30년간 길고 긴 암 투병생활을 이어가며, 호주 멜버른에 <올리비아 뉴튼 존 암 치료 및 연구센터>를 건립, 운영해 왔다. 그래서 전세계 여성들의 ‘승리와 희망의 아이콘’이 됐었다.

그녀는 지난 2000년(8월)과 2016년(12월) 두 차례 내한공연도 펼치며 한국 팬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장례식은 그녀가 가족과 함께 청소년 시절을 보낸 호주 빅토리아주 정부 주관으로 ‘콘서트 장례식’으로 치러질 것으로 알려졌다. 삼가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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