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243)

올해는 7월16일(음력 6월18일)에 초복이 들었고, 7월26일이 중복, 그리고 말복(8월15일) 전에 ‘가을에 들어선다’는 절기 입추가 8월7일이다.
예부터 복더위에는 보양식으로 흔히 개나 닭을 잡아먹었다. 이른바 ‘복달임’이다.
왜, 꼭 개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집에서 기르는 가축 중에서 가장 손쉽게 손질해 고단백의 영양가 있는 고기를 취할 수 있는 게 개나 닭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 저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은, 무더위에 고단한 농삿일을 잠시 놓고 가까운 시냇가나 강에서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으로 더위를 식히며, 물고기를 잡아 얼큰한 탕을 끓여 보양식으로 먹었다.
‘앞내에 물이 주니/천렵을 하여 보세/해 길고 잔풍 하니/오늘 놀이 잘 되겠다/.../촉고를 둘러치고/은린 옥척 후려내어/반석에 노구 걸고/솟구쳐 끓여내니/팔진미 오후청을/이 맛과 바꿀소냐.’

조선조 때 사람 정학유(1786~1855)의 <농가월령가> 4월령이다. 270년 전, 천렵의 재미를 노래하고 있다. 천렵이란, 말 그대로 냇가에서의 물고기 사냥이다.
어렸을 적, 평택쌀의 주산지로 아산만이 지척인 고향마을에서는 한여름이면 초등학교 다니는 코흘리개들이 ‘수리개 똘’이라 불린 농수로를 김밥 토막내듯 4~5m 길이로 막고, 배꼽까지 차오르는 농수로의 물을 씨근덕거리며 양푼으로 퍼낸 다음 물고기를 잡았다. 산과 개울이 없는 농촌마을 아이들의 천렵 방식이었다.

은빛 나는 자잘한 피라미는 버리고, 손바닥만한 참붕어와 미꾸라지, 메기와 어쩌다 재수좋은 날이면 횡재하듯 가물치나 민물장어를 잡았다. 미끈한 메기의 투실한 감촉이라니....

# 이젠 본격적인 요리시간. 천렵 도구라고 해봐야 이렇다 하게 갖춰진 게 없이 가까운 미군부대에서 얻은 엠 제이 비(MJB) 커피깡통과 집 장독대에서 어머니 몰래 퍼온 찹쌀고추장이다.
먼저, 큰 돌 두 개로 논둑 위에 아궁이를 만들고, 그 위에 물을 가득 퍼담은 커피깡통을 올린 뒤 장작불을 지펴 물을 끓인다. 고추장을 듬뿍 푼 다음, 잡은 물고기들을 비늘을 벗기고, 내장을 빼낸 뒤 토막을 내어 깡통 속에 투하하면 끝이다! 달큰하면서도 졸깃한 메기, 가물치, 장어고기의 맛을 그 어디에 견줄까...

집에서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아산만 바닷가에 가면, 폴짝폴짝 부산하게 개펄 위를 돌아다니는 갯망둥어와 참게들이 지천이었는데, 마을사람들은 퉁방울 눈에 촐싹거리는 모양새와 우중충한 피부색이 “재수없다!” 해 잡히는 대로 버렸다.

그 갯망둥어가 아랫녘에서는 ‘짱뚱어 탕’이라는 별미 여름보양식으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제 고향마을의 논배미들은 미군기지로 수용되고, ‘수리개 똘’ 천렵의 기억은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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