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주도 행정협정으로 국회 비준절차 필요 없어

▲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와 한국수산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IPEF 공청회장 앞에서 졸속추진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석열 정부의 불통농정이 논란이 되고 있다. 농업계가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는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비준 추진에 이어 새로운 틀의 경제협력플랫폼인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 협상에 나서겠다고 하면서다.

IPEF는 지난해 10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인도와 태평양지역의 경제·안보를 아우르는 경제협력플랫폼이다. 14개 참여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피지 등이다. 상품과 서비스 관세를 철폐하는 이전의 통상조약과 달리 ▲무역 ▲공급망 ▲인프라·청정에너지·탈탄소 ▲조세·반부패 등의 현안을 다룬다는 점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국회비준 절차가 필요하지 않는 행정협력으로 새정부 외교통상 기조가 미국과의 경제안보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것인 만큼 추진에 가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농업계는 SPS(동식물 위생·검역)를 포함한 비관세장벽 철폐가 논의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협상과정에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IPEF 민관전략회의’에 농어업계를 배제한 것을 비롯해 일련의 추진과정을 졸속추진하며 성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날선 비판은 지난 8일 추진의 공식적 첫 단계인 공청회가 열린 서울 코엑스 기자회견에서도 이어졌다.

이날 참여단체는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 소속의 한국생활개선중앙연합회,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한국4-H본부, 한국여성농업인중앙연합회, 한국4-H청년농업인연합회와 한국수산업경영인중앙연합회 등이다.

농업계 “농어업분야가 협상대상 아님을 명확히 밝혀라” 요구
식량안보 강화 위해 공급망 구축하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조언도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 이학구 상임대표는 “IPEF는 공정하고 탄력적인 무역 달성이라는 명분하에 농축수산물 비관세장벽 철폐 논의가 이뤄질 수 있어 절대 안심할 수 없다. 일부 의제만 선택하겠다는 다른 참여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적극 참여를 표명하고 주도적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사전에 농어업계와 충분한 이해와 동의를 모두 생략하고 배제했다. 계속된 불통행정으로 일관하는 산자부의 오만한 태도에 항의표시로 공청회에 참석하지 않는다. 이런 소통부재는 국정운영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기억하고, 이른 시일에 농어업분야가 협상대상이 아님을 명확히 하라”고 요구했다.

▲ 산업통상자원부는 IPEF 공청회 이후 본격적인 협상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개방부담 적다지만…
농어업계가 불참의사를 밝혔지만 산자부는 공청회를 정상적으로 진행했다. 산자부 김정회 직무대리 통상교섭실장 전담직무대리는 “인도·태평양지역은 전략적 요충지로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과 특화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내 개방부담이 적은 게 특징”이라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수준으로 결정될지 확정되지 않았고, 참여국에 도움되는 협력방안을 찾는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정부는 국내파급력을 면밀히 살피고 이해관계자와도 성심성의껏 소통해 협상과정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외교부 윤성덕 경제외교조정관은 “대외변수 영향이 국내에 영향을 크게 끼치고 있는 지금, 시장논리에 더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 구축이 중요한 과제가 됐다”면서 “각종 불확실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새정부는 국정과제로 경제안보외교를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그 일환으로 IPEF를 통해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공급망 교란, 디지털 전환, 기후위기 등 글로벌 과제에 대응하고자 한다. 개방성과 투명성, 포용성의 원칙 아래 협력의 틀과 미래도약의 규범을 주도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자부와 외교부 두 고위관계자는 결국 IPEF의 순기능을 강조하면서, 특히 대외협상에서 주고받기식 과정에서 희생물이 돼온 농업계를 안심시키기 위해 국내 개방부담이 적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IPEF가 자국 농수산식품 수출확대를 위해 의회가 시장접근 규정을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고, 핵심의제에 푸드시스템, 농업제도, 농촌탈탄소, SPS 등이 포함된 것이 확인됐다. 기존 통상조약의 비관세장벽 철폐가 협상테이블에서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범정부 추진체계 이미 구축
산업통상자원부 양기욱 FTA정책관은 추진경과를 설명했다. 양 정책관은 “IPEF는 전세계 인구 32%, GDP 41% 규모며, 우리와의 교역액은 3891억 달러로 39.7%의 비중으로 협의를 거쳐 4개 분야별 세부의제를 구체화할 계획”이라면서 “필러(PILLAR)1은 농업 등 무역에 관한 규범과 협력과 논의, 필러2는 공급망 위기대응을 위한 협력, 필러3은 청정에너지 전환 기술개발, 농촌지역 탈탄소화, 필러4는 자금세탁과 뇌물방지 등 반부패 등으로 논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5월27일 통합추진위원회, 6월7일 대외경제장관회의 등을 거쳐 범정부 추진체계를 구축했고, 민간전략회의와 필러별 워킹그룹을 통해 정부와 민간이 원팀으로 추진전략을 논의하게 된다. 양 정책관은 “참여국간 협의에 우리 관심의제를 반영해 실익을 확보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협력사업을 제안하고, 개도국 개발에 우리 기업들이 진출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발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식량안보 강화하는 방향이어야
공청회에 유일하게 농업 전문가로 참여한 전남대학교 농업경제학과 문한필 교수는 잇따른 시장개방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농업계의 우려를 정부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교수는 “필러1에 농업이 들어가 있는데 그보단 필러2에 포함되는 게 낫지 않나 생각한다”며 “사과, 배, 복숭아 등의 신선과일은 개방된 적이 없는데 농업계는 IPEF로 개방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아직 논의수준이 정해지지 않았다는데 CPTPP 수준이라면 농업이 부담해야 할 몫이 너무 크다”고 우려했다. 이어 통상당국이 협상역량을 발휘해 낮은 수준이 될 수 있도록 명문화해야 한다고 문 교수는 당부했다. 문 교수는 “기존 통상조약이 식량안보를 위협하는 것이었다면 IPEF가 참여국들의 식량의 안정적 공급을 가능케 하는 역할을 한다면 기존 통상조약과는 궤를 달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장에서-강현옥 한국생활개선중앙연합회장

농업계 패싱 산자부 규탄

통상조약 추진에 최대 피해산업인 농어업계를 배제한 채 공청회를 졸속 추진한 산업통상자원부를 규탄한다. 농업부문의 시장개방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고 관세 인하를 논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 의견을 듣지 않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산자부는 통상조약을 맺을 때마다 우리 농업계를 줄곧 배제해 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불통행정을 일삼는 산자부 대신 외교부가 통상기능을 맞는 게 여러모로 맞다고 본다. 우리 농업인단체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되 생존권을 침해하는 일에는 강력한 투쟁으로 맞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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